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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Sep 23. 2024

부메랑 원칙

암울함을 대하는 태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을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찾아보니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는 속담들이 있더군요. 말뿐만 아니라 생각이나 행동, 잘못 등으로 표현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좋은 생각'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좋은 생각'을 하면 그 생각에 걸맞은 결과가 되돌아온다는 의미로 말입니다. '좋은 생각'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겪기 어려운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세 군데 직장을 다녀 보았는데요. 제가 다녔던 회사는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운이 엄청나게 나빴거나 그게 아니라면 마치 망할만한 회사를 골라서 들어간 것처럼 말이죠. 세 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 저는 직장 동료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자주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신기하게 제가 가는 회사마다 망해요. 여기도 곧 망할 수도 있어요.” 

    실제로 그랬습니다. 첫 번째 회사는 신혼여행에서 복귀했을 때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고, 그 이후 두 번째 회사도 입사한 지 1년이 안되어 문을 닫았습니다. 당시 제가 일하던 분야의 산업이 쇠퇴하던 시기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죠. 결국 세 번째 회사도 문을 닫았습니다. 이곳은 국가 연구비로 운영되는 비영리 기관이었는데 핵심 인물들이 연구비를 횡령한 사건이 일어나 결국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항상 비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게다가 비관적인 관점이 비판적 사고를 통한 가장 논리적이고 올바른 관점이라고 믿고 있었죠. 이러한 믿음은 다른 사람 또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인하여 제 자신이 피해를 받는다는 생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건들은 이러한 믿음을 뒷받침해 주는 든든한 증거였습니다. 인기 있는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은 부정부패의 중심이 되지 않던가요? 성공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분명 어떤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았죠. 질투심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세상은 비관적으로 돌아가는 슬픈 쳇바퀴였던 것이죠.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못해. 그 사람들은 돈이 있으니까 하는 거야.”

    “걔는 서울대 나왔잖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안돼.” 

    “내 인생은 어차피 꼬였어.”

    “이번 생은 틀렸어. 대충 살다 가는 거지 뭐.” 

    그것이 굉장히 합리적인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논리적이었죠. 재미있는 사실은 제 주변의 그 누구도 위와 같은 이유에 대해서 반박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동의했고, 우린 우리네 인생을 비관하거나 슬퍼하며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난 돈이 없으니까.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으니까. 내 인생은 원래 꼬였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한 틀 안에 자신을 가두어 놓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그 틀에 맞는 사람으로 살아가죠. 틀은 곧 생각입니다. 언제든 쉽게 바꿀 수 있다고 알고 있는 생각이 오히려 우리 자신을 가두는 꼴이죠. 놀라운 것은 이러한 생각을 능동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주 접하는 콘텐츠를 통해서도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죠. 자신의 생각이 부정적이라면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나 즐겨 보는 콘텐츠의 내용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세요. 원인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자신의 생각이 결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집니다. 받아들이는 것은 쉽습니다. 받아들이던 관성을 거슬러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어렵게 느껴지죠. 그렇기 때문에 수동적인 삶의 태도를 유지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틀은 견고해집니다. 그리고 한평생 그 틀 안에서 살아가게 되죠. 

 

    우리 몸의 세포는 1초에 1000만 개를 교체한다고 합니다. 과장을 조금 더하면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물리적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몸이 된다는 건데요. 반면 많은 이들의 생각과 관념은 일평생 변하지 않습니다. 몸은 변하고 있는데 생각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죠. 새 그릇에는 먹던 음식을 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 몸과 어울리지 않는 오래된 생각을 담아두고 썩히고 있죠. 이것이 진정한 모순이 아닐까요?  


    새우와 같은 갑각류와 인간은 진화론적 측면으로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새우는 인간의 뼈라고 할 수 있는 껍데기가 겉을 감싸고 근육이 그 내부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근육을 키워도 모양과 크기가 거의 일정하죠. 하지만 인간은 기본 뼈대 위에 근육이 붙어 있어 원하는 대로 몸의 모양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도 기본 뼈대 위에 자유롭게 붙여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을 깨닫는 순간 저의 불행이 어디부터 시작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 또한 유연하고 신선합니다. 매 순간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이 머릿속에 자신의 목표를 그리죠. 그래서 그들은 일평생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회의 한 사람으로 역할을 할 때도 보다 높은 만족감을 얻습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 과의 관계도 좋죠.


    누구나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실행하지 않아 지식으로만 저장해 놓을 뿐이죠. 지혜는 가지고 있는 지식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지식을 가지고만 있어서는 그것이 가진 어떠한 혜택도 누리지 못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지식을 쌓아 두기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노력해서 얻은 지식은 반드시 실행을 통해 지혜로 발전시켜야 비로소 그것의 가치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지혜는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내면에서 점점 더 견고 해지니까요.  



    

    우리는 매 순간에 올바른 선택을 통하여 스스로의 위안과 행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주변의 사물과 사건, 인물들을 하나의 고정된 것으로 인식하지 말고 자신의 목표, 의미, 행복을 위해 시시각각 다르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껏 삶의 태도가 수동적이었다면 이제 능동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삶은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자신을 위해 생각을 능동적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생각을 단속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모든 일은 생각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좋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고운 말과 좋은 행동이 나옵니다. 언제나 문제와 해결책은 우리 안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불행한 삶이 싫다면 행복한 삶을 생각하세요. 지금 처한 상황이 힘겹더라도 무엇이든 배울 점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 배움이 미래에 더 즐거운 결과로 되돌아올 것을 상상해 보세요. 이렇게 '좋은 생각'을 하는 훈련은 반드시 우리 자신에게 보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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