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 녀석과 술자리를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약 30여 년 지내오다 보니 서로의 관심사를 잘 아는 사이입니다. 20, 30대를 거쳐 40대를 넘어오면서 우리의 관심사는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학교 문제, 연애 문제, 취업 문제, 눈앞에 보이지 않는 먼 미래의 문제들까지. 당시 마주한 상황에서 생겨난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치 정답이 있는 듯 그 답을 찾으려 애써왔었죠. 언젠가부터 우리의 대화 주제는 주로 자식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야, 요즘 우리 애 때문에 미치겠다."
친구 녀석이 '후~'하고 한숨을 내쉽니다.
"왜 또. 무슨 일 있어?"
저는 대수롭지 않은 듯 물었습니다.
"이노무시키가 게임에 미쳐가지고. 새벽에 잠도 안 자고 아주 그냥 폰을 들고 살아."
"하하하. 야. 사춘기 애들 다 그렇지. 너는 뭐 안 그랬냐?"
그렇게 저는 친구 녀석의 학창 시절 모습을 상기시키며, 사춘기 때 애들에게는 자존감을 살려줘야 한다는 둥, 부모가 애를 믿어줘야지 누가 믿겠냐는 둥의 말로 안심을 시켰습니다. 알코올이 몸을 적셔나갈수록 친구 녀석의 아량은 덩달아 넓어졌고, 문제를 해결했다고 판단한 우리는 또 다른 문제의 정답을 찾아 나서는 모험을 시작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조금 전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사춘기 애들이 다 그렇지.'라는 말 말입니다. 단순히 친구 녀석을 안심시키려 둘러댄 말은 확실히 아니었습니다.정말 그 나이 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동들이니까요. 사춘기란 그런 것이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왜 그런 이해심과 넓은 아량이 정작 제 아이를 향해서는 생겨나지않을까요? 피곤한 두 다리를 옮기며 서둘러 쉬고 싶다는 욕구가 밀려왔습니다. 터벅터벅 걸음소리에 다시 그 궁금증이 밀려듭니다.약간은 멍한듯한 기분이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하늘에는 유난히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두 다리는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저 반짝이는 것이 별일까? 위성일까?라는 궁금증이 잠시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는 무언가가 명확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의 것. 내가 소유한다고 생각하는 대상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집착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마찬가지죠. 나의 소유이므로 자신의 어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불안해지거나 화를 내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겁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무척이나 깔끔한 성격의 사람이 있다고 해보죠. 이 사람은 자신의 차를 항상 깨끗하게 유지합니다. 어디에 오물이 묻어있지는 않은지 항상 신경을 쓰고 있죠. 그래서 매일 차를 살피고 닦습니다. 그런데 만약 사고라도 나서 임시로 다른 차를 타야 한다면 어떨까요? 그 차도 열심히 살피고 닦을까요? 그렇지 않겠죠. 자신이 타고 다니더라도 나의 소유냐 아니냐에 따라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겁니다.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에서는 먼 미래의 문명세계가 그려지는데요. 책 속의 문명인들은 자신의 신체까지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소유로 인한 집착적인 감정이 일어나지 않을뿐더러 만약 일어나더라도 그 감정이 잘못되었다고 느끼도록 구역질 같은 신체반응이 나타나게 프로그래밍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행복한 삶을 살아가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소유에 관한 집착적인 어떤 감정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소유 그 자체로는 우리에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습니다. 단지 소유에 따른 부차적인 감정들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죠. 어쩌면 소유라는 개념 자체를 재정의 하는 것이 쉬울 수도 있겠네요. 어찌 됐건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를 보다 더 행복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니까요.
소유에 관한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더 좋은 일들이 생길 겁니다. 우선은 가족 간의 관계가 더 좋아지겠네요. 나의 아내, 나의 자식이 아닌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할 수 있을 테니 말이죠. 서로 상처를 주거나 받는 일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더 나아가서는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줄어들겠네요. 누군가로부터 거절당하더라도 그 거절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이 밖에도 여러 상황에 적용해 보면 새로운 통찰을 더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소유에 관한 시각을 조금 바꾸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