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벗어라!! 0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원 이치운 Aug 14. 2023

어화

어화(魚火) 1

     

   불이 몰려든다. 기름이 심지를 타고 올라가 불꽃을 만들어 내듯 바다 속에서 물위로 하나 둘 모여 이글거리는 횃불이 피어오른다. 파도 따라 일렁이는 바닷바람에 쓸려 요동친다.

   도시어부들 중에 엄지손가락만한 전구를 그물에 달아 물고기를 유혹하는 경우가 있지만 물고기로 생계를 이어가는 섬어부들은 그물에 불빛을 달아 물고기의 씨를 말리는 파렴치한 짓은 하지 않는다. 어화(漁火)는 물고기들에게 저승사자와 같다. 그물에 달린 불빛은 살기가 느껴진다. 그 불빛은 살아있는 바다생물을 죽음으로 유혹하는 사악한 불빛이다. 전구에 불이 켜지면 플랑크톤, 작은 물고기, 큰 물고기가 떼 지어 차례로 몰려든다. 불빛이 있는 곳에 먹이가 있고, 칠흑 같은 밤바다는 죽음의 축제가 열린다. 그물코를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친 주검들이 혼불이 된다. 

   다른 기운이 느껴지는 불도 있다. 기름을 채워주지 않아도 강풍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전깃불은 따뜻한 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호롱불은 어머니가 고된 시집살이에 어둑새벽 몰래 눈물을 훔칠 때 콧김만으로도 꺼져주는 인정머리가 있다. 아기가 말아 쥔 주먹만 한 등잔에서 나오는 쌀 한 톨 만큼 작은 등잔불은 손주의 등을 쓸어주는 할머니의 정이 있어 마음이 따뜻하다. 


이전 04화 슴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