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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Oct 11. 2023

팔레스타인의 영원한 수도, 예루살렘

이 글은 2023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인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의 제1장에서 발췌하였습니다.


3.2. 팔레스타인의 영원한 수도, 예루살렘


이스라엘이 1967년에 새롭게 만들어낸 동예루살렘의 경계는 괴상할 정도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인구는 적게, 땅은 최대한 넓히는 방법으로 경계를 정했기 때문이다.(1) 마치 아프리카의 국경선을 보는 것처럼 작위적인 경계선을 따라 남쪽으로 쭉 뻗은 도로를 걷다 보면 이질적인 것을 보게 된다. 팔레스타인 주거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유대인 정착촌이다.


다른 서안지구에서와는 달리 동예루살렘의 정착촌은 도시 내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비록 경제적 경계선은 뚜렷하지만 출입을 관장하는 검문소는 없으므로 두 민족이 서로 이웃하며 어느 정도는 평화롭게 산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착촌은 동예루살렘 전체의 3분의 1이나 차지하고, 토지의 대부분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사유지를 수용해 지어진 것이다. 그러니 정착촌을 보면 울분을 토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지도. 동예루살렘의 경계와 정착촌


정착촌을 지나 다시 팔레스타인 동네로 들어섰을 때 갑자기 예닐곱 명의 10대 소년들이 주위를 완전히 둘러쌌다. 아이들이라곤 해도 포위하듯이 둘러싸인 적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고, 동예루살렘의 아이들이라 더욱 긴장했다. 그중 하나가 아랍어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한국인이라고 답하니 중구난방으로 아랍어로 떠들기 시작했다. 영어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아랍어로 들려왔다.


한 아이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지나가던 다른 소년을 데려왔다. 그 소년은 유창한 영어로 자신이 통역을 해주겠다고 말한 후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한여름의 땡볕 아래서 아이들한테 에워싸인 채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처지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1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통역 소년이 입을 열었다. 그는 아이들이 한국 여자는 어떤가, 여자랑 자 본 적은 있냐는 등의 헛소리를 하고 있다며 상대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이며 아이들을 밀치고 빠져나왔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긴장했던 것은 동예루살렘에서 외국인들이 다치는 사건·사고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것이 외국인이 탄 차에다 돌을 던지는 경우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이 돌을 던진다고 하면 조약돌 같은 작은 돌을 상상하겠지만 여기서는 주먹만 한 크기의 돌을 던지기 때문에 상당히 위협적이다. 반년 전에는 한국인 교민이 아이들이 던진 돌에 맞아 차창이 깨지고 부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다. 관광객을 노리는 소매치기범도 있어 한국지폐가 환전소에서 암암리에 싸게 팔리기도 한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다른 서안지구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다.


[다른 서안지구에서도 정착촌 인근의 도로를 지나는 차량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무차별 공격이 아니라 이스라엘 차량으로 오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같은 팔레스타인 사람인데도 어떻게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답은 동예루살렘 주민들이 처한 특수한 환경에 있다. 이스라엘에 병합된 이후 대부분의 주민들은 영주권을 발급받았으나 실질적인 권리는 인정받지 못했다. 해외에 오래 체류하면 영주권이 취소되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영주권이 없는 사람과 결혼한 경우에는 배우자와 자식들이 범죄자처럼 숨어 살아야 한다.(2)


정착촌에 빼앗기지 않은 3분의 2의 땅들은 대부분 개발이 금지되어 있어 주거환경이 열악해지고 경제활동이 위축된다. 학교를 짓거나 교실을 증설하는 것조차 제한된다. 다른 C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허가 없이 지은 건물들은 철거당한다. 2014년까지 ‘불법’ 주택 2천여 채가 강제 철거당했고 지금도 1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2만 채의 ‘불법건축물’에서 불안에 떨며 살고 있다. 허가 없이 증축한 교실도 철거당하고 학교는 벌금을 부과받았다.(3)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점령하에서 벌어진 온갖 억압적인 정책은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예루살렘의 진정한 특수성은 유대인들의 차별을 눈앞에서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 어려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출생, 결혼, 주소지 이전 신고와 같은 단순한 민원 업무를 받으려면 전기료, 수도세, 지방세 납부서 등 자신이 실제로 동예루살렘에 살고 있다고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무더기로 들고 내무부 관청을 찾아가 몇 시간을 기다리며 줄을 서야 한다.


유대인 동네에서와는 달리 관청은 아침에만 운영되고 운영시간을 제대로 안내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시간을 기다렸는데도 갑자기 업무 시간이 종료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게다가 아랍어가 이스라엘의 두 번째 공식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히브리어만 사용하거나 문서가 히브리어로만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아 필요한 정보를 안내받지 못한다.(4)


그 밖에도 유대인 공무원들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고 무례하게 굴거나 도로에서 경찰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아무 이유 없이 멈춰 세우고 검문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러니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와의 전쟁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세상에 불만을 품고 거친 유년기를 보내게 되는 것은 결코 놀랍지 않다.


2시간에 걸친 남하 끝에 드디어 동예루살렘의 심장부인 구시가지에 도착했다. 구시가지는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웅장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안에는 유대교의 첫 번째 성지인 성전산(Temple Mount)과 서쪽벽, 기독교의 첫 번째 성지인 성묘교회(Holy Sepulchre), 그리고 이슬람의 세 번째 성지인 알아크사(al-Aqsa) 모스크가 있다. 여의도 면적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이 작은 곳(0.9㎢)에 세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종교들의 정수가 있는 것이다.


사진. 라마단 기간에 찍은 구시가지의 다마스쿠스 게이트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유대교와 이슬람의 성지가 같은 장소라는 점이다. 고대에 성전산에는 유대인들이 세운 ‘성스러운 신전’(Holy Temple, 이하 성전으로 표기)이 있었다. 하지만 기원후 70년에 로마가 성전을 파괴하고 135년에 유대인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하면서 성전산은 폐허가 되었다. 그로부터 5백 년 후에 무슬림들은 예루살렘을 정복했고 아무것도 없는 성전산에 알아크사 모스크를 세웠다. 무슬림들은 성전산을 고귀한 성역이라는 뜻의 하람 알샤리프(al-Haram al-Sharif, 이하 하람으로 표기)라고 부른다.     


사진. 알아크사 모스크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좁게는 사진의 모스크를 의미하지만, 넓게는 하람에 세워진 모든 건물과 부지(compound) 전체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비무슬림권에서는 전자의 의미로 널리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후자의 의미가 정확하다. 팔레스타인 정부를 비롯해 무슬림들은 전자를 공식적으로 키블리(Qibli) 모스크라고 부른다.


사진. 바위돔(Dome of the Rock)의 모습. 알아크사 모스크에서 가장 상징적이며 이곳을 성지로 거듭나게 한 건물이다. 우리말로 ‘황금돔 사원’으로 번역되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표현이다. 바위돔이 중요한 이유는 황금이 아니라 ‘바위’에 있고 이곳은 기도드리는 사원(즉, 모스크)도 아니다.


사진. 성전산의 서쪽벽 광장의 모습. 서쪽벽이 고대 성전의 잔해 위에 지어졌다는 믿음(5) 등으로 유대인들은 이곳을 신성하게 생각한다. 유대인들이 기도를 드리며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딴 “통곡의 벽(Wailing Wall)”이란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원래 서쪽벽 앞에는 좁은 통로밖에 없었으나 1967년 전쟁 직후에 이스라엘이 아랍 주거지를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135가구(약 650 – 1,000명)를 추방해 광장을 만들었다.(6)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불법 병합한 지 벌써 반세기가 넘게 흘렀지만, 팔레스타인은 평화협상에서 어떤 조건으로도 동예루살렘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현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그저 종교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동예루살렘은 단순히 알아크사 모스크나 성묘교회로 가치가 매겨지는 곳이 아니다.


다른 아랍인들과 구분되는 팔레스타인 민족만의 정체성은 향토에 대한 애착과 수난의 역사, 그리고 성지에서 태어나 자란 주민이라는 종교적 자긍심으로 구성된다.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중심지이자, 민족의 재앙이었던 1948년 전쟁에서 가장 격렬한 사투 끝에 지켜낸 땅이고,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성스러운 땅이므로 그 정체성의 핵심을 이룬다.(7)


그러므로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민족의 ‘영원한 수도’일 수밖에 없다. 세속적인 무슬림 친구조차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생각하지 않는 팔레스타인인은 반역자라고 말했다. 적지 않은 수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세속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쩌면 종교적 의미보다 민족적 의미가 더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원래는 구시가지에 잠깐 들어갔다 나올 계획이었으나 수많은 인파를 보니 엄두가 안 났다. 성벽을 감상하며 쉬고 있으니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해발고도 750m 고산지대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어느새 땀이 다 식고 한기마저 느껴졌다. 발길을 돌려 식당을 향했다.


가볍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걸 찾다 KFC를 발견하고 들어갔는데 주문을 하려고 보니 메뉴가 달랐다. 식당 이름을 다시 보니 실소가 나왔다. KFC가 키위 프라이드 치킨의 약자였다. 이왕 온 김에 주문을 했는데 의외로 정말 맛있었다. 오랫동안 걷다 보니 시장해서 더 맛있게 느낀 걸지도 모르겠다.


식당을 나와서 다시 남하를 계속했다. 오늘의 최종목적지인 베들레헴까지 빠르게 가는 길은 유대인들이 사는 서예루살렘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다. 서예루살렘에 접어들면 두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난다. 중동의 유럽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번화한 거리가 나타나고 보행자 우선의 교통문화를 보게 된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신호등이 거의 없고 유지관리도 잘되지 않는 데다가 차량 우선주의라 길을 건널 때마다 긴장해야 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정반대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의 근처에 가면 지나가던 차들이 무조건 멈춰 선다. 그러니 마음 편히 걸어 다닐 수 있다.


이제 오늘의 여정도 마지막을 앞두고 있었다. 밤 9시가 되어 주위는 어둠에 잠겼고 가로등 불빛이 길을 인도했다. 베들레헴은 앞으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다리가 정상적으로 움직여지기만 한다면 말이다. 통증이 절정에 달해 더 이상 왼쪽 발목을 굽힐 수가 없었다. 왼발을 질질 끌어서 10m를 이동한 뒤 잠깐 쉬고, 다시 또 10m를 움직인 뒤 쉬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사투를 벌여 30분 거리를 2시간 만에 걸어왔다.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검문소가 보였을 때는 인간 승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밤 11시에 깜깜한 검문소를 홀로 통과해 숙소까지 간신히 들어왔다. 검문소에서 가까운 곳에 숙소를 예약해 둬서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 내일은 걷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지만, 오늘은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일정을 마쳤다는 사실에 흐뭇해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1) BIMKOM, Trapped by Planning, 2014.

2) HaMoked and B'Tselem, The Quiet Deportation Continues: Revocation of Residency and Denial of Social Rights of East Jerusalem Residents; B’Tselem, "Statistics on Revocation of Residency in East Jerusalem."

3) Bimkom, Trapped, 2014, 65-82; ACRI, East Jerusalem 2015.

4) Ibid, 2011, 19.

5) 실제로는 성전의 잔해가 아니라 성전산의 비탈에 쌓은 옹벽의 잔해다. 본문 2장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6) Masalha, The Politics of Denial, 189-94.

7) Rashid Khalidi, Palestinian Identity: The Construction of Modern National Consciousnes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0), 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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