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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Oct 11. 2023

예수 탄생지 베들레헴

이 글은 2023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인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의 제1장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베들레헴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기 위해 검색으로 들어오신 분들은 이 글보다는  <크리스마스에 예수탄생지 베들레헴에서는 ...>을 봐주세요.)


3.3. 예수 탄생지 베들레헴


드디어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고단하긴 했는지 정신없이 푹 자고 상쾌하게 일어났다. 오늘 여정은 첫날의 절반밖에 안 되니 시간은 넉넉했다. 느긋하게 호텔에서 식사까지 마치고 정오 무렵에 길을 나섰다. 다행히 다리가 어제보다 많이 나아져 걷는 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숙소 근처에 탄신교회(Nativity Church)가 있어 기념 삼아 잠깐 들렀다. 2천 년 전에 예수가 태어난 곳이라 믿어지던 장소에 지어진 교회이며 지하에는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수유했다고 전해지는 동굴(the Milk Grotto)이 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무렵에는 성경의 이야기를 그저 종교적 신화로 간주하고 흘려들었다. 그러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니 생각을 고치지 않을 수 없었다.


베들레헴에서 동쪽으로 2km만 가면 천사들이 예수의 탄생을 양치기들에게 알려줬다는 목자들의 들판(Shepherds’ Field)이 있었고, 동북쪽으로 더 올라간 여리고(Jericho)에는 마귀가 예수를 40일간 시험했다는 시험산(Mount of Temptation)이 나온다. 나블루스에는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과 만났던 야곱의 우물(Jacob’s Well)이 있고, 제닌에서 서쪽으로 5km 떨어진 부르킨(Burqin) 마을은 예수가 나병 환자를 치료한 곳이다.


그 외에도 성경이나 꾸란(Qur’an)에 등장하는 여러 선지자의 행적이 온 동네에 무수하게 기록되어 있으니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결코 딴 세상의 이야기로 들릴 수가 없다. 즉, 역사적 사실인지 허구인지와는 관계없이 성경과 꾸란의 기록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관념적 역사의 불가결한 일부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사진. 탄신교회. 연중 내내 기독교 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성탄절 전야제에는 교황이 방문해 기념행사를 주관하는 곳이다.


동예루살렘이 이스라엘에 병합된 지금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정부가 개발할 수 있는 최고의 관광명소다. 그런데 이런 매력적인 관광 자원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관광객 수는 미미하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이스라엘과의 분쟁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3년 8월에 팔레스타인에는 83,000명의 관광객이 방문했으나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있었던 이듬해 8월에는 17,000명으로 급감했다. 서안지구가 전쟁의 무대가 아니었는데도 이렇게나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평시에도 이스라엘로부터 위협을 느끼는 무슬림의 발걸음은 더욱 뜸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메카(Mecca)로 성지순례를 나서는 무슬림들이 중간에 예루살렘을 들르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스라엘은 여러 무슬림 국가들과 상호 간 입국을 금지하고 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을 찾아오는 관광객의 대부분은 기독교도들이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도들이 예루살렘을 보고 난 뒤 베들레헴은 들르지 않고 돌아간다. 고작 10km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검문소를 통과해서 ‘테러리스트 국가’인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간다는 사실 때문에 주저하는 것이다.


여행사들도 검문소 통과에 걸리는 시간과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일정에 포함하기를 꺼린다. 설령 베들레헴으로 들어오더라도 탄신교회와 목자들의 들판 정도만 방문하고 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왕복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시험산은 인적이 드물다. 관광객의 체류 시간이 이렇게 짧으니 관광수입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2015년 기준으로 팔레스타인 GDP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1.9%에 그친다.(1)


이스라엘에 의해 관광지 개발이 제한되고 있는 점도 관광업의 근본적인 한계를 만들고 있다. 팔레스타인에는 종교 유적지 외에도 3천 개 이상의 고고학 유적지가 있고 천혜의 자연 관광지도 무수히 많다. 하지만 대부분이 C 지역에 위치해 있어 개발이 금지되고 일부는 이스라엘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물에 뜨는 바다로 유명한 사해(Dead Sea)도 서안지구에 접해있으나 팔레스타인 기업은 호텔이나 리조트 하나 건설할 수 없다. 세계은행은 팔레스타인이 사해를 관광 자원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만으로도 경제 규모가 최소한 1.26억 달러(2011년 GDP의 약 1%) 이상 증가할 것으로 분석한다.(2)


탄신교회를 나오는 길은 언제나처럼 택시 기사들의 호객 행위로 시끄러웠다. 지나가는 택시마다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며 어디로 가냐고 물어봤다. 경적이 울릴 때마다 타지 않는다고 일일이 대답하는 게 성가셔 골목길로 도망쳤다. 그런데 베들레헴의 골목길은 미로처럼 꼬여 있었다. 방향이 맞는지 수시로 지도를 확인해 가며 걸었는데도 길을 잘못 접어들어 되돌아오기도 했다. 게다가 길이 왜 이리도 오르락내리락하는지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발목이 아팠다.


사진. 베들레헴


다리도 쉬게 하고 더위도 식힐 겸 슈퍼마켓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으니 마침 초등학교 아이들이 하교하는 모습이 보였다. 끼리끼리 뭉쳐 도란도란 얘기하며 집으로 걸어가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하긴 방과 후에 학원을 가는 게 일상인 한국에서보다는 무더위 속에 언덕길을 넘어서라도 집에 바로 갈 수 있는 아이들이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더 행복할 것이다.     


3.4. 마지막 고비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고생을 좀 했지만 탄신교회를 나선 지 3시간 후에 카데르(Khader)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앞으로는 정착촌 일대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걸어야 했다. 라말라로 올 때 고생했던 바로 그 60번 고속도로였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각오를 다지고 길을 나섰다. 그러나 갓길을 보자마자 의욕이 사라졌다. 폭이 1m도 안 돼 보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대안이 있었다. 길을 우회해 정착촌 내부도로를 걷는 것이다.


정착촌에 도착하니 아파트 경비실 수준의 검문소가 나왔다. 초소 안에는 총을 든 보안요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무슨 목적으로 왔냐고 정중하게 묻기에 헤브론까지 걸어서 여행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난색을 보이며 미안하지만 차량만 통행할 수 있고 보행자는 통과시킬 수 없다고 친절히 설명했다. 혹시 지나가는 차량을 얻어 타면 통과시켜 주겠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그러나 이 시간대에 출입하는 차량이 거의 없어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때부터 휴식 시간이 시작됐다. 보안요원이랑 잡담도 나누고 주변 경치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애석하게도 30분을 넘게 기다려도 단 한 대의 차도 지나가지 않았다. 시간은 충분히 여유가 있었지만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은 성격에 안 맞았다. 여기 오기 전에 언덕으로 나 있는 샛길을 하나 발견했었는데 그 길이 헤브론까지 이어져 있는지 확인하러 가보았다. 지도에는 없는 길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지난 20년 사이에 새로 만들어진 길이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어보았다.


아쉽게도 언덕길은 중간에 끊어져 있었다. 언덕 위에서 보니 고속도로와 정착촌 내부도로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정착촌으로 돌아갈까 망설이다 세르비스를 타기로 결심하고 언덕을 내려왔다. 그런데 누가 노새를 타고 고속도로의 갓길을 가고 있는 걸 발견했다. 맨몸이 아니라 두려움이 없는 모양이었다. 저 노새 뒤에 바짝 붙어서 걸어가면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새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쳐다보다 겨우 미련을 버리고 안전하게 세르비스를 타기로 했다.


사진. 노새를 타고 고속도로의 갓길을 지나는 모습


세르비스를 기다리며 여행 마지막 날에도 차를 탄다는 사실을 못내 아쉬워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의 첫 비였다. 보통은 10월부터 비가 오는데 올해는 조금 이른 편이었다. 보슬비 정도이긴 하지만 비를 맞으며 갓길을 걷는 건 위험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침울해졌다. 비가 계속 온다면 도보 여행은 여기서 중단해야 했다.


세르비스를 탄 후 창문만 간절하게 쳐다봤다. 야속하게도 비는 점점 거세졌다. 이대로 여행은 끝이구나. 그나마 여행 막바지에 비가 온 게 다행이고 이 또한 하나의 추억이 될 거라고 위안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점점 잦아들었다.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는데 진짜로 비가 멈췄다. 때마침 고속도로가 끝나고 마을을 지나는 중이라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 이미 상당히 많이 와버렸으나 적어도 여정의 마지막은 걸어서 마무리를 맺고 싶었다.


차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여러 건물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다들 비를 피하고 있었던 듯하다. 기쁜 마음으로 함께 거리를 걸었다. 도로는 마을 변두리를 지나는 것인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마을을 빠져나왔다. 약간 앞에는 아저씨 한 분이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이웃 마을로 가는 모양이었다. 길동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말을 걸어볼 요량으로 조금 빠르게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다시 내렸다. 빗방울 한두 개가 떨어지더니 곧바로 수십 개로 불어나고 이내 억수같이 쏟아졌다. 이미 마을 밖이라 비를 피할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세르비스에서 내렸던 장소까지 되돌아와 가게의 처마 아래서 비를 피했다. 조금 전의 아저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소나기라 예측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르비스 한 대가 지나갔지만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십여 분을 기다려도 비가 잦아들 기미가 전혀 없었다. 결국, 오늘은 일진이 안 좋다고 생각하며 세르비스를 탔다.


사진. 비가 온다....


비와의 악연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정말 놀랍게도 세르비스를 탄 지 1분도 안 돼서 그쳤다. 반갑기보다는 황당하고 너무나도 억울했다. 왠지 지금 내리면 비가 다시 올 것 같았기에 상황을 지켜봤다. 몇 분간 비는 오지 않았고 헤브론에 거의 도착해 갔다. 남은 것은 헤브론 바로 북쪽에 있는 마을인 할훌(Halhul)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고민할 것도 없이 즉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헤브론만큼은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며 기뻐함과 동시에 비가 쏟아졌다. 고작 열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그것도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이.


마을 입구라 그런지 주변에는 비를 피할 건물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론가 재빠르게 뛰어갔지만, 발목이 아파서 뛸 수가 없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려도 좋으니 비를 피할 수 있는 건물을 찾아보려 했지만 물벼락에 안경이 다 젖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주머니에 넣어 둔 안경닦이도 이미 흠뻑 젖어 안경이 닦이지 않았다.


정말 굉장한 폭우였다. 다 포기하고 지나가는 아무 차나 태워달라고 부탁하려고 손을 들었다. 불운이 끝난 것인지 차 한 대가 바로 멈춰 섰다. 가까이서 보니 택시였다. 그렇게 차를 타고 헤브론으로 들어왔다.


1) PCBS, "Number of Enterprises, Employed Persons and Main Economic Indicators for the Tourism Enterprises in Palestine by Tourism Activity, 2015."

2) O. Niksic, N. N. Eddin, and M. Cali, "Area C and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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