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꽃 당신
우재(愚齋) 박종익
신불사 댓돌 위에
단정하게 몸을 누인
낡고 닳은 고무신 한 켤레
왼발 뒤축에 수놓인 꽃 한송이가
찢어진 한 시절을 품고 있다
부끄러움 보다 더 깊게 간질이는
기억이 조용히 걸어 나온다
땀과 배고픔이 잔뜩 묻은 발자국들,
무거운 지게를 짊어지고 가다가
눈물 젖은 진흙탕을 마주할 때면
고무신은 찢어지지 않으려
슬그머니 미끄러져
저만치 도망가곤 했다
그래도 검정 고무신은
우물 한 바가지 흠뻑 뒤집어쓰고
배꼽까지 드러낸 채 댓돌에 기대어
따스한 햇볕에 기대던 그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웠다
자식을 품느라
자꾸만 미끄덩거리던 아버지의 신발
지금은 낡은 사진 한 귀퉁이에서
등굽은 세월을 꽂꽂이 세운채
말없이 지키고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