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꽃 당신
우재(愚齋) 박종익
바람 한 올 얼씬거리지 않는 언덕에
휘어지고 뽑히며 줄지어 선 음표들
오케스트라가 불협화음에 맞선다
둥근 언덕 위에 기댄 세월
알람시계가 건네주는 진통제 몇 알에
밤 별들이 뉘엿뉘엿 돌아누우면
음표들이 쓰러진 산기슭에
휭, 하니 불어오는 바람
추락의 징조다
악보도 나이 들면 주름이 가고
스치는 바람에 음표들이 쓰러진다
탯줄 같은 오선에 악착같이 매달린
저 간지러운 뿌리들의 아우성
힘 빠지면 송두리째 뽑혀 나가는,
피할 수 없는 신화의 시간이다
오선지 밖으로 흘러내린 검은 울음
이제 몇 안 되는 정물이 된 지 오래다
듬성듬성한 햇살에 빛나는 저 언덕은
히포크라테스도 손 놓아 버린
음표들의 영원한 고향
오선지 마디마디 속을 비워낼수록
불협화음은 서서히 사라지고
마침내 언덕 위에 고요가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