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에 새긴 이름》
우재(愚齋) 박종익
검푸른 바다의 욕망은 끝을 알 수 없다
대왕고래든 씨몽키 새우든
박차고 재주를 부릴 때는 그지없이 평화롭다
갈치 떼가 달빛에 은빛 지느러미를 치며
오대양을 유영하지만
제주 한라산 너머 마라도에서 잡히든
여수 거문도 옆 백도 밤바다에서 잡히든
마른 소금 세례를 받는 날엔
생선구이 처지가 되어
밥상머리 청문회가 시작된다
고소한 살 가득 붙이고
입안으로 따라 들어간 가시는
돌고 돌아 결국 만신창이가 되어 왕따가 된다
한때 허세 가득 받치던
저 촘촘한 척추뼈를 보라
실오라기 없이 발가벗긴 속살이 부끄럽다
눈에 보이는 낱말을 다 모아 태워버려도
디지털로 변신한 말들은
진시왕이 와도 사라지지 않는다
노트 위 지우개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해
할 말이 많다
하지만 날아다니는 활자를
완전히 지울 디지털 지우개는
발견된 적이 없다
용감한 가짜가
뻔뻔한 가짜를 보고
종일 삿대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