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에 새긴 이름》
우재(愚齋) 박종익
길이 막혔다
발을 묶고 불빛 끊어놓은 철길 끝에
화차를 끌며 눈물 바람 실어 나르던 협궤열차
먼지 내려앉은 유리창을 열어보면
갯벌 한쪽에 각인된 배 한 척
추억이 슬라이드 필름으로 칸칸이 감겨 온다
한때 만선의 기적을 실어 나르던 갑판에
바닷물이 일없이 다녀가고
닻이 휘어지고 부러져도 흔들림이 없다
더는 바다로 나아갈 수 없는 몸
날 것들은 터를 잡은 지 오래다
노래가 끊어진 길 끝에서
적막 한 채 끌어안고
밀물에 안겨 올 친구를 기다리며
그리울 때마다 펼쳐보는 파노라마 앨범
서쪽 수평선에 붉은 칸나가 꽃봉을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