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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장례식

《수평선에 새긴 이름》

빙하 장례식


우재(愚齋) 박종익


그린란드에서 날아온 부고장을 받았다

실종된 그녀의 행적은 알 수 없었고

그 흔한 증명사진 한 장도 발견되지 않았다

북반구 얼음벼랑 위

만 년의 하얀 눈물이 증인이 되어

매머드의 슬픈 장례식에 초대한다


얼음관 속에 누워 있는 시조새가

말이라도 붙이면 새파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얼음산이 흰 이빨을 갈며 부르는 장송곡은

산맥을 무너뜨린다


속살을 파헤치는 일은

도굴범이나 하는 짓이라고요

가문비나무 아래서 늑대가 울고

붉은 보름달이 차오르면

집 나온 별들이 둥근 땅 위에 잠든다


빙하도 야수의 눈을 뜨고

앙갚음이라는 단어를 기억할까요

이글루를 도둑맞은 북극곰이

오로라의 희미한 증언을 실마리로

빙하 조각배를 타고 범인을 찾아 나선다


수십 번 그려본 범인의 몽타주

천 개의 눈빛을 가진 짐승의 머리

대왕고래보다 더 큰 몸통에

가시 지느러미를 붙여 보기도 하지만

꼬리가 몇 개인지 알 길은 없다


눈 폭풍보다 차가운 심장

수백 개의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범인의 모습은 점점 더 무섭고

고약한 얼굴로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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