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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루질

《수평선에 새긴 이름》

해루질


우재(愚齋) 박종익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캔버스에
고단했을 한 시절을 썰물로
구석구석 덧칠하면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검은머리물떼새 발자국이
해풍을 따라 희미하게 돋아난다


멀리 툰드라에서 쉬지 않고
날아왔을 계절은 구부정했고
대처에 내보낸 알토란 같은 자식들은
수평선처럼 반듯했다


물살을 넘을 때마다 가늘어져 가는
어미 고래의 하얀 숨비소리에
오르락내리락, 자식이 자라고
이제는 손주까지,
그 정도 경력이면
텔레비전 ‘생활의 달인’ 편에 나올 만도 한데
힘을 내려 해도, 이제는 욕심이라니


그늘 한 점 없는 바닷가에서
물살에 휘어진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며
씨간장처럼 숙성된 갯벌 속에서 건져 올린
세발낙지는 밥이 되고, 라면이 되었다


밀려가고 밀려오는 바다의 풍문에
수평선 끝에 매달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위태롭게 자맥질하는 자식을 위하여
날것으로 대서사시를 써 내려가시는 어머니


시의 완성도는 수협 공판장 저울 눈금과 비례했고
하루에 두 번, 검푸른 원고지 위로
뜨거운 퇴고를 반복하시는 어머니는
결코, 쉬는 법이 없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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