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에 새긴 이름》
우재(愚齋) 박종익
어둠이 내려앉으면 불빛이 길을 만든다
구름이 낮게 손짓하고
바람이 등을 조심스레 밀어도
검푸른 물살은 기죽지 않는다
먼 이별을 밝혀 주는 등대 아래
만선호가 불나방처럼 몰려든다
사방이 막힌 어창 속
은빛을 깊이 간직한 갈치가 누워 있다
몸의 치수를 잰 듯
나무 상자와 톱니가 맞물리고
탱글한 눈동자에는
바다의 내력이 잔물결처럼 스민다
흔들리던 물결을 끌고 나와
경매사 앞에 선다
목숨에는 값이 붙는다 했던가
확성기 소리가 공기를 가르자
풍어의 말들이
전광판 위로 번져 오른다
수평선 같은 화면 아래
은빛 지느러미가 미세하게 떨리고
그 떨림이 응찰자의 손끝을 모아 세운다
누가 마지막 값을 적어낼까
그 순간
한 생의 은빛 무게가
내 가슴 속으로 천천히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