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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장승

《수평선에 새긴 이름》

바다의 장승


우재(愚齋) 박종익


바다가 어둠을 삼켜도

나는 바다의 장승을 믿는다


허기진 아가미 속에 똬리를 틀고

목구멍으로 새벽을 삼키며

빈 몸이 먼저 수평선을 향해 달려간다


어망과 한 몸이 된 팔뚝은

짠물의 무게를 견디

굽은 밧줄을 흔들어 깨우

먼 바다 어딘가에서

만선의 고동이 낮은 음으로 떠오른다


포구가 가까워지면

어창이 먼저 들썩이고

부둣가의 선술집 불빛은

갯바위에 부는 바람처럼

지친 목을 다시 숨 쉬게 한다


허기를 다루는 기술은

바다에게서 먼저 배우고

비우고 채우고 다시 비우며

몸은 깊은 물결을 닮아간다


아이들 웃음이

팝콘처럼 부서져 달려오면

헐렁한 속이 바람에 흔들리고

저녁의 온기는

식구들 사이에 잔잔히 퍼져간다


아버지는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파도의 길을 밝히는

바다의 오래된 장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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