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던 발, 광장에 서다

by 손샤인

겨울이 깊어가던 어느 날, 나는 셔플댄스 연습실에 서 있었다. 오십을 넘긴 나와 언니들은 매주 만나 음악에 맞춰 발을 놀리며 웃고 즐겼다. 기본반을 수료하고, 워크숍을 다니며 중급반 수업을 마칠 즈음이었다. 스텝이 더 정교해지고, 동작이 유연해질수록 우리도 조금씩 변해갔다. 몸이 가벼워졌고, 마음도 활짝 열렸다. “우리, 이렇게 늙어가는 거야!” 언니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흐르는 땀을 닦던 그때, 세상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24.12.3 나라에 계엄이 선포되었다.

갑작스러운 뉴스에 정신이 멍해졌다. 거리는 혼란스러웠고, 사람들은 분노했다. 내 마음속에서도 폭풍이 휘몰아쳤다. ‘이 상황에서 내가 춤을 춰도 되는 걸까?’ 무대 위의 스텝이 더 이상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발이 무거웠다. 아니, 내 마음이 무거웠다.

언니들은 달랐다. “우린 계속 춰야 해. 우리의 리듬은 우리 삶이야.” 언니들은 더 열심히 연습했다. 더 격렬하게, 더 환하게. 나는 이해했다. 그게 언니들이 세상을 버티는 방식이라는 걸. 하지만 내겐 달랐다.

나는 신발을 갈아 신고 광장으로 향했다.

주말마다 집회에 나갔다. 차가운 바닥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외쳤다. 응원봉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걷고 또 걸었다. 내 아이들이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게 견딜 수 없었다. 입술이 터지고 손끝이 얼어붙어도 멈출 수 없었다. 우리는 지켜야 했다.

광장에서 나는 많은 얼굴들을 보았다. 손을 맞잡고 울던 노부부, 휠체어를 탄 채 피켓을 들고 있던 청년, 어린 손을 꼭 잡고 온 가족. 그들의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서 있구나. 마치 춤을 출 때처럼, 한 박자 한 박자 맞춰가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움직이고 있구나.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춤을 멈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새로운 스텝을 밟고 있었다.

셔플댄스의 리듬이 내 몸에 남아 있듯, 이 거리에서의 외침도 내 삶에 남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춤을 추게 될 때, 나는 조금 더 강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깊이, 나의 스텝을 새길 것이다.

그날 밤, 광장의 찬바람 속에서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민아. 걱정 마 엄마가 지켜줄게. 꼭!!’

삶에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격랑이 있다. 나는 그 파도에 휩쓸려 한동안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했는지조차 잊은 채 살아야 했다. 그러다 12월 14일,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진 그날 이후에서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정체불명의 무게가 가슴을 짓누르던 시간 끝에, 나는 다시 셔플댄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집 근처 홈플러스문화센터는 나의 연습장이 되었고, 삐걱대던 몸과 마음은 다시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매일 조금씩, 천천히 기본기를 다듬으며 나를 되찾아갔다. 셔플은 내게 단순한 취미를 넘어, 혼란 속에서도 스스로를 붙잡을 수 있게 해주는 구명줄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상으로, 평온한 삶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상의 조각들을 하나둘 맞춰가던 내게 또 한 번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제주항공 여객기가 착륙 도중 폭발해, 무려 102명이 사망했다는 믿기 어려운 뉴스였다. 그날의 공기, 하늘, 그리고 사람들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마치 내가 그 비행기 안에 있었던 것처럼, 마음이 덜컥 가라앉았다.

사고는 너무도 허망했다.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었고,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였을 그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행복이, 평범함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셔플의 리듬을 멈췄다. 발끝으로 차오르던 행복은 차마 이어갈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들의 죽음을 마음에 새기며 조용히 하루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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