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 한 생명을 품다
“그때는 몰랐다.
인생의 가장 큰 용기가 눈물이 아니라
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너무 햇살이 좋은 숲길을 걷고 있었다.
나무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빛은 따뜻했고,
그 길의 끝에는 돌로 만든 작은 어항이 놓여 있었다.
뚜껑을 열자, 물속에서 아름다운 비단잉어 두 마리가 반짝이며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그중 한 마리를 조심스레 꺼내어 가슴에 품었다.
그해 크리스마스이브, 스물네 살의 내가 꾼 꿈이다.
29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은 눈앞에 선하다.
그땐 그저 기묘하고 아름다운 꿈이라 생각했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건 내 인생의 예고편 같았다.
언젠가 내 품에 안기게 될 두 생명,
내가 세상에서 가장 뜨겁게 지켜야 할 존재들을
미리 보여준 듯한 꿈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혼전임신을 했다.
결혼은 아직 마음에 없었고, 준비된 것도 없었다.
두려움과 혼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스물네 살, 여전히 어린 나에게
‘엄마가 된다’는 사실은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었다.
입덧은 하루 종일 이어졌고,
물만 마셔도 토했다.
몸은 내 것이 아닌 듯 낯설었다.
약국에서 산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은
내 삶을 단번에 바꿔 놓았다.
나는 혼자 산부인과에 갔다.
‘수술해야겠다.’
그 생각 하나만 붙들고 있었다.
감기약을 먹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만들어내며
마치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옳은 선택인 듯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때 나는 너무도 두려웠다.
엄마가 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술대에 누워 주사를 꽂고,
의사를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문득 마음속에서 울음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이 아이를 지우고,
그 벌로 평생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된다면…”
그 생각이 가슴을 후벼 팠다.
나는 벌떡 일어나 주사를 뽑으며 말했다.
“수술 안 하겠습니다.”
그리고 곧장 병원을 뛰쳐나왔다.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눈물이 쏟아졌다.
아빠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고백해야 할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려움과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며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생명을 지켜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단단해졌다.
무력하고 불안하던 내가,
그날 처음으로 강해졌다.
그리고 그 강함은 단순한 고집이나 의지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결단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엄마로서의 여정은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어항 속 비단잉어 한 마리를 가슴에 품던 꿈처럼,
나는 내 뱃속의 작은 생명을 품어내며
‘엄마’라는 이름을 받아들였다.
스물네 살의 나는 너무도 어렸고,
삶은 여전히 두렵고 버거웠다.
그러나 그날, 아이를 지켜내며 나는 알았다.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선택할 때
비로소 단단해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