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임신이 시작되자마자 찾아온 입덧은 고문과도 같았다. 하루에 열두 번이 넘게 변기통을 붙잡고 토했다.
먹은 것도 없어 결국 노란 위액만 쏟아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몸은 점점 말라갔고, 아무것도 삼키지 못하는 내가 보기에 부모님은 위장병에 걸린 게 아니냐며 병원 입원을 권하셨다.
그 사실을 고백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어느 날, 아빠가 출장길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셨다.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에서 오던 트럭을 정면으로 들이받으셨다는 소식. 우리는 놀라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얼굴은 상처투성이였고, 무릎과 척추 압박 골절로 온몸이 아프다고 신음하시는 아빠의 모습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엄마에게 알리자 엄마는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셨다.
“죽을병 아니고, 교통사고 치고는 크게 다친 게 아니다. 걱정 말아라.”
위기 상황마다 담담하고 강한 엄마의 모습.
그 모습에 나는 차마 내 안의 또 다른 사실, 뱃속 아기의 존재를 꺼내놓지 못했다.
한 달이 지나, 다행히 아빠가 허리 보조기를 두른 채 외출을 허락받고 집으로 오셨다.
그날,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남자친구가 생겼어요”라고 말씀드렸다.
아빠는 그저 “2~3년 잘 사귀어 보라”는 대답을 하셨다. 하지만 내 진짜 고백은 그다음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저… 임신 3개월이에요. 죄송합니다.”
그 순간 아빠의 표정은 잊을 수 없다.
말없이 엄마에게 냉수 한 잔을 부탁하시더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무거운 침묵만이 방 안에 내려앉았다.
나는 도망치듯 내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죽여 울었다. 온몸이 떨리고,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 엄마가 들어오셔서 나를 꼭 끌어안으셨다.
“그래서 그렇게 못 먹고 토하고 말라갔구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의 목소리는 세상의 어떤 말보다 따뜻했다.
아빠는 그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셨다.
언니들은 분노했고,
“미쳤다,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냐”
몰아붙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
그 후 내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아직 배가 채 나오기도 전인 5개월,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는 배부른 오월의 신부가 되었다.
시댁으로 들어가며 시집살이가 시작되었고, 여전히 입덧은 심해 직장도 그만두어야 했다.
하루 종일 뱃속의 아이와 단둘이 지내며
태교에 몰두했다.
“손을 많이 움직이면 아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을 듣고 시작한 퀼트, 클래식 음악, 책 읽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을 다해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몸은 35kg이나 늘었고 결국 임신중독증 진단까지 받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내 안의 아이를 지키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었다.
그때의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동시에 가장 성숙해져야만 했던 순간이었다. 아빠의 침묵과 엄마의 품, 언니들의 분노, 그리고 내 안의 아이. 그 모든 것이 뒤섞인 기억은 지금도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