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은 맞지 않았지만, 분명 전쟁이었다. 진통이 시작된 순간부터 세상이 멈춘 듯했다. 생리통 한 번 제대로 겪어본 적 없는 나는 ‘진통이란 어떤 통증일까’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잠시 사라지는 고통, 그 짧은 틈에 눈을 붙이면 다시 폭풍이 밀려와 온몸을 뒤흔들었다. 하늘이 노래졌다는 엄마의 말이 그제야 이해되었다. 열두 시간의 사투 끝에 들려온 아이의 울음은 세상의 첫 숨이자 내 안의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이었다. 아이를 품에 안기도 전에 시어머니는 직접 끓인 미역국을 내 입에 떠넣으셨다. 젖을 먹여야 한다며 두 그릇을 비워야 한다고, 그것이 사랑의 방식이라 믿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나는 누군가가 내 안부를 진심으로 물어주길 바랐다. 출산의 고통보다 더 괴로웠던 건 모유수유였다. 젖을 물릴 때마다 벽을 짚고 이를 악물었고, 피와 고름이 터져도 물려야 했다. ‘지민이 젖 먹일 시간이야’라는 말이 칼날처럼 다가와 두려웠다. 금줄이 걸린 집 안에서 삼칠일 동안 머리조차 감지 못한 채 미역국만 먹으며 젖을 물렸다. 눅눅한 공기와 방 안의 냄새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백일이 지나 병원으로 돌아갔을 때, 환자들 곁으로 간다는 사실 하나가 유일한 위로였다. 수유실이 없던 시절, 나는 탈의실에 숨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병동으로 뛰었다. 맏며느리이자 간호사, 엄마이자 며느리로서 매일 버티는 법을 배워야 했다. 내 이름은 사라지고 역할만 남았다. 그래도 시어머니는 집안일을 도와주셨고, 그 배려 속에서 나는 조금이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감사함과 서운함이 교차하는 나날 속에서도 아이의 웃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지민이가 돌을 앞두었을 무렵, 시부모님은 조심스레 둘째 이야기를 꺼내셨다. 종갓집 맏며느리로서의 의무와 간호사로서의 책임, 그 사이에서 나는 매일 흔들렸다.
돌이켜보면 총알은 맞지 않았지만, 매일이 전쟁이었고 그 전쟁 속에서도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살아남은 엄마이자, 아직도 성장 중인 나였다. 총알은 맞지 않았지만, 매일이 전쟁 같았다.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고, 누군가의 딸이자 며느리이자 간호사로서 늘 단단해야 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매일 무너지고 있었다. 다만 무너진 자리마다 조금씩 단단한 살이 차올랐고, 그 위에 다시 사랑이 덧입혀졌다. 그때는 몰랐다. 그 고통이 나를 더 깊은 어른으로 이끌고 있었음을….. 이제야 안다.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은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벌어졌다는 걸.
그 시절의 나는 총알은 피했지만, 매일 마음의 파편을 맞으며 버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그 시절의 나는 충분히 용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