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마세요!
2월 7일 금요일이었다. 설 지나 개학하고 며칠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이날 눈 예보가 떴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 사는 우리 반 아이들도 아침에 일기 예보를 봤는지 오늘 눈이 올 거라며 한껏 기대 중이었다.
10시 40분 3교시 시작종이 울리고 나는 남은 영어 진도를 나가고 있었다. 창밖을 보던 우리 반 P군은 눈이 내리는 것을 목격하고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눈 와요!” 반에 있던 아이들 눈이 모두 운동장 쪽으로 향했다.
“선생님 밖에 눈 구경하러 나가요.”
“안돼, 이거 오늘 영어 수업해야 하거든, 20분 만에 수업 마치고 11시에 나가자. 11시에도 눈 온다고 나와 있어.”
나는 내 핸드폰으로 확인한 내용을 철석같이 믿었고, 우리 반 아이들도 단호한 나의 태도에 더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우리가 간단한 카드 게임을 끝내는 동안 눈발은 점점 약해졌다. 10시 59분 수업은 끝났고 아이들은 핸드폰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인생은 항상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가 운동장으로 나가자마자 먹구름이 걷히고 해님이 나오는 거였다. 파란 하늘이 그렇게 빨리 드러날 줄이야.
“아, 눈 다 그쳤다.”
“선생님 그냥 교실 갈래요.”
“아, 분명 11시에 눈 온다고 했는데..... 미안해.”
실망한 애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짠했다. 아, 정말 나란 인간. 영어 수업 조금 안 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또 괜히 고집 피우다가 상황이 엉망이 되었다.
2월 14일에는 종업식을 했다. 1년 동안 찍은 아이들 사진에 음악을 넣어 간단한 동영상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환한 미소에 마음이 뭉클했다. 어쩌면 아이들이 기억하는 우리의 1년은 교실에서 열심히 공부한 모습이 아니라, 여름 방학 전에 물총놀이하고, 학교 텃밭에서 수확한 수세미로 수세미 만들고, 크리스마스 맞이 케이크를 만들어 파티한 그 장면일 수도.
마시멜로 실험을 감명 깊게 본 나는 항상 인생을 그렇게 살았다. 지금 조금 참고 견디다, 조금 지난 후에 더 큰 보상을 받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말이다. 근데 살다 보니 이게 꼭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잠깐 공부하는 사이 눈이 그쳐 버릴 수도,
한참 눈독 들이던 물건이 동나 버릴 수도,
돈 많이 벌어 효도해야지 하며 일에 치여 사는 사이 부모님은 병들어 버릴 수도.
당장의 행복을 위해, 지금 멈춰야 할 용기도 있어야 한다.
올 한해 나는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너무 참지 않기로 다짐해 본다.
행복은 여정이지, 목적지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라 –로이 M. 굿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