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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장에서 이러지 맙시다.

그 짧은 시간에 그것까지 스캔하다니 딸 놀랍다.

by 사차원 그녀

겨울이 되자 어김없이 우리 집 근처에 야외 스케이트장이 설치되었다. 반짝 2달가량 영업을 하고 2월 말이면 또 문을 닫는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스케이트, 썰매에 새롭게 튜브 슬라이드가 추가되었다. 방학도 되었고, 나의 병원 투어로 방콕만 하던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스케이트를 타러 가자고 말을 꺼냈고 아이들은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티켓은 온라인으로 예매해 놓고, 아들이 줄넘기학원을 마치자마자 차에 태워 스케이트장으로 간다. 예약한 시간보다 한 30분이나 일찍 도착한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공원을 산책하기로 한다. 길게 이어진 데크를 쭉 따라 걸으며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오랜만에 하늘도 깨끗하고 공기는 상쾌하기까지 하다. 아들도 같이 갔지만 딸아이와 계속 말씨름하길래 짜증이 나서 5M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공원은 아이들 어릴 때 자주 데리고 나왔던 곳으로 여름에는 연못에 연꽃이 피기도 하며, 붉은 붕어가 뛰어놀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은 초록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연못은 거무튀튀하며 물속의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다.


캐시슬라이드 앱을 이용해 푼돈 벌이를 하는 아들과 나는 산책에 진심이다. 둘이 열심히 모아서 음료 쿠폰을 획득한 후 카페를 가기로 했다. 아무튼 데크를 걷던 딸아이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엄마 비행기에서 떨어지면 죽나? 바다에 빠졌는데 롱패딩 입고 있으면 그게 튜브처럼 둥둥 뜰까?”

“음, 방수된다는 조건에 롱패딩을 빨리 벗어서 지퍼를 채우고 공기를 빡 채우면 둥둥 뜨지 않을까? 근데 떨어졌을 때 그럴 정신이 있을지 엄마는 모르겠다.”

“그럼, 과학 선생님께 물어볼까? 근데 과학 선생님은 분명 난 5학년 과학밖에 몰라 이러실 것 같은데.”


갑자기 산책하는데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시나리오라니요. 정말 뜬금없네요. 제 딸아이가 분명합니다. 남편과 외출하면 저도 이상한 질문을 많이 하거든요. 이런 것도 유전이 된다니 놀랍습니다. 아무튼 비행기에 꽂혀 버린 딸아이에게 T 엄마는 팩트 폭격을 해버립니다. 그래야 이 질문에서 빨리 현실로 돌아올 수 있거든요. 좀 냉정해 보이지만 여러 번 이런 상황을 겪은 저만의 최선책입니다.


“근데, 당분간 너 비행기 타기 힘들 것 같아. 그러니까 비행기에서 떨어질 걱정은 안 해도 돼”

“왜?”

“왜냐면 엄마 아빠 대출 갚아야 해서 당분간 비행기 타기는 힘들어.”


그 외 2학년 때까지 친구였던 아이(그때 우리가 이사를 하여서 지금은 서로 다른 초등학교에 다닌다.)가 계속 카톡으로 고민 상담을 해와서 자기가 힘들다고, 겨울 방학했는데 파자마 파티는 언제 하냐고 수다를 한참 떨지만 엄마는 산책에 정신이 팔려서 응응 그래해야지 해야 지로 대답을 일관한다.



드디어 입장 시간이 다가왔다. 신발 크기를 확인하고 스케이트를 신고 헬멧까지 착용하고 나서 스케이트장으로 들어간다. 애들 초등학교 입학하고부터 여러 차례 스케이트를 탄 것 같은데 아직도 자세가 불안하다. 아들은 넘어질 것 같다며 펭귄 모양의 보조 기구를 대여해 달라고 했지만, 그냥 가볍게 무시한다. 유치원 꼬맹이들도 저렇게 잘 타는데 말이지 겁쟁이네 겁쟁이.

스케이트장.jpg


들어간 지 2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또 딸아이가 밖으로 나온다. 복숭아뼈가 아프다고 엄살을 엄청나게 피운다. 발목 양말 신고 왔나 하고 확인했더니 그것도 아닌데 복숭아뼈가 툭 튀어나와서 스케이트화와 마찰이 생겨서 그런지 붉게 변해 있었다. 물을 사주고 한 10분 휴식을 취한다. 그러고 나서 티켓값이 아까운 엄마는 딱 10바퀴만 더 돌고 집에 가자고 이야기한다. 아들은 어설픈 자기의 실력을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은지 계속 동영상 촬영을 요구하는데, 귀찮지만 귀여우니까 봐주기로 한다. 50분 정도 스케이트장에서 씨름하다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기진맥진했고, 다시 올까?라는 나의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한다. 아직 방학은 3주가량 남았는데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엄마는 가슴이 답답하다.


그날 저녁 딸아이에게 오늘 스케이트장 다녀온 소감을 시로 써보라고 하니 요런 시를 보여준다. 과연 발목이 아파서 스케이트를 그만 타고 싶었을까? 우리 딸 다 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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