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말이라 반박 불가.
딸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파자마 파티(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놀고 하룻밤 자고 가는 일)를 허락했습니다. 딸아이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돼지우리 같던 방이 단숨에 깨끗해졌습니다. 왜냐고요? 사회적 체면과 지위가 있지 친구에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겠습니까? 그 쿰쿰하던 방이 토요일 오전에 들어가 보니 향긋한 꽃 냄새가 나네요. 저번 주에 사다 준 섬유 탈취제를 본인 이불에도 뿌리고 옷에도 뿌리고 공기 중에도 아낌없이 뿌리고 있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친구를 데려온다고 해서 밥은 밖에서 좀 사 먹고 오라고 했습니다. 저녁 차리는 거 쉽지 않습니다. 우리끼리 먹는다면 김치찌개에 조미김만 있어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친구니까 신경이 엄청 쓰이네요.
7시가 되어 친구와 함께 집에 왔습니다. 슈퍼를 털어왔는지 둘 다 양손 가득입니다. 친구 어머니는 빈손으로 보내기 미안하다며 케이크까지 사서 보내주셨네요. 뭘 이런 걸 다. 다음에 저도 우리 딸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요렇게 보내야겠어요. 저녁은 먹지도 않고 컵라면을 사 왔습니다. 그럴 거면 그냥 나와서 식사같이 하자고 해도 기어이 방으로 기어들어갑니다. 커피포트에 보글보글 물이 끓고 컵라면 가득 물을 채우고는 다시 방으로 쏙 들어갑니다. 컴퓨터를 켜고 뭘 하는지 계속 까르르까르르 웃음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온 냉장고에 있던 과일이란 과일은 다 꺼내 한 접시 가득 담아서 딸아이 방으로 가져갑니다. 친구가 사 온 생크림 케이크도 예쁘게 잘라주고요. 아들은 오늘도 목마른 사슴처럼 누나 방을 기웃댑니다. 기웃대봤자 돌아오는 것은 따가운 시선과 꺼지라는 말뿐입니다. 비빌 곳을 보면서 비벼야지요. 이럴 때 보면 아들도 참 눈치가 없습니다.
밤새 딸 방은 시끄러웠고요. 저는 일찍 잤습니다. 일요일 아침 남편은 친구들과 무주에 간다고 혼자 사라졌고요. 아들과 저는 오늘 안부 차 시댁 방문 예정입니다. 저는 개념 있는 엄마이기 때문에 또 아침밥을 준비합니다. 냉장고에 있는 유부초밥 만들기 세트를 꺼내 유부초밥을 만들고, 딸기와 방울토마토도 예쁘게 접시에 담아 준비하고 아들과 떠났습니다. 몇 시에 일어날지 모르지만 아무튼 배고프면 일어나서 먹겠지요. 그리고 혹시 모르니 가진 현금을 모두 탈탈 털어 거실 테이블에 올려두고 갑니다. 점심에 친구랑 짜장면을 사 먹으라고 했습니다.
시댁에 가서 어머니를 위해 삼계탕을 열심히 끓였지만, 어머니는 옆집(약간 먼 친척뻘)에 사람들이 와서 식사하러 가야 한다며 가셨습니다. 섭섭하냐고요? 에이 뭘 이런 걸로요. 저는 아들과 함께 찹쌀과 누룽지까지 넣어서 두 배로 고소한 삼계탕을 2그릇씩 싹싹 비웠습니다. 오후에는 밭에 가서 겨울 시금치를 한 봉지 캐고 어머니가 챙겨주신 밑반찬 거리를 가득 챙겨서 4시경 집에 돌아왔습니다.
식탁을 보니 아침에 만들어둔 유부초밥은 손도 안 댔고 과일만 다 먹었네요. 안 먹을 거면 반찬통에 넣어서 냉장고에 넣던가. 차갑게 말라가는 유부초밥을 보니 짜증이 났습니다. 거실 테이블에 도시가스 고지서가 올려져 있네요. 뭐야 언제 가져온 거지? 두근두근 한쪽 눈을 감고 살짝 열었습니다. 하~~~~~ 12월 가스비가 무려 17만 원이나 나왔습니다. 작년보다 4만 원이나 더 나왔네요. 난방하는 방이 느니 별수 없습니다. 별 따뜻하게 잔 것 같지도 않은데 억울한 생각이 듭니다.
딸아이는 6시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남은 돈 줘.”
“어,,,, 여기 5000원요.”
“뭐라는 거야. 내가 35000원 두고 갔는데 자장면 2그릇이 30000원이야?”
“중국집 가서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시켜 먹었어.”
“짜장면 1그릇도 다 못 먹으면서 얼씨구 탕수육까지 시켜드셨다고요?”
“내 친구는 어제 우리 집에 올 때 케이크도 사 왔는데 어떻게 딸랑 짜장면만 시켜줘. 탕수육도 같이 시켰지. 친구도 없는 엄마가 뭘 알겠어”
화가 난 딸아이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맞아요. 저 친구 별로 없어요. 우리 딸처럼 친구에게 지극정성으로 대해본 적도 없어요. 친구도 없고, 딸 마음도 모르는 엄마는 돈 몇 만 원에 눈이 돌아서 딸에게 화를 냈습니다. 가스비! 가스비! 이게 다 가스비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