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트의 하루 Sep 24. 2023

꿈꾸던 주재원 발령, 그런데 베트남

베트남에서 어떻게 살아


온 가족이 기다리던 주재워 발령의 꿈. 처음엔 런던을 갈 수 있다고 했다가, 도쿄 주재원 리스트 1번에 있다고 한다. 됴쿄에서 한 달 살기를 해봤던 우리는, 신선하고 시원한 아사히 생맥주를 상상하며 기대하고 있었는데, 최종은 베트남이라고 한다. 호찌민에서도 한 달 살기를 해봤기에 실망스러웠다. 게다가 하노이라니. 호찌민도 별로였는데 하롱베이 말고 아무것도 없다는 하노이.


그때 즈음에 나와 남편은 부동산 관련 사주를 보러 갔었는데, 우리는 둘 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면 너무 좋고 운동은 골프가 제일 좋단다. 당시에 나는 골프 레슨을 몇 달째 받고 있었는데 남들은 지겹다는 똑딱이 마저 재미 들려있었고, 아이언 레슨을 거쳐 드라이버 레슨을 하면서 점점 신이 나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추위를 너무 많이 타서 여름에도 샌들 대신에 얇은 양말을 신고 다닐 정도이고, 한 여름의 에어컨은 나의 동지이자 적이어서 가방엔 항상 여벌 카디건을 준비해 다닌다. 베트남이 운명인가.


때는 코로나 초반이라 한국에서 크게 번지고 있던 때여서, 베트남 발 항공기가 출발했다가 베트남 정부의 입국 거부로 다시 돌아온 사례도 있었다. 베트남의 한국인 입국 통제가 엄격했다. 남편은 먼저 경제인 특별입국으로 출국. 나와 아이들은 이삿짐을 컨테이너로 보내고 친정집에 들어가 살며, 가족 특별입국을 기다렸다. 1주, 2주가 지나고 한 달, 두 달. 결혼 전 내가 살던 방 한 칸에서 나와 아이들은 3명이 눈치 보며 생활하다가 드디어 출국 허가가 떨어졌다.


출국 당일 아침. 온 가족이 함께 한국을 떠나 살게 되는 날. 기분이 묘하다. 이미 모든 짐은 두 달 전에 컨테이너로 보내두었기에, 트렁크 몇 개를 싣고 출발했다. 하필이면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로 인해 올림픽 대로가 통제되어 목동을 거쳐서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공항이 이상하다. 기사님이 김포 공항으로 오신 것이었다. 다시 전속력을 달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우리가 가장 마지막으로 겨우 체크인에 성공했다. 그 시간에 출국하는 비행기는 우리밖에 없었는지, 공항이 이렇게 조용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한산했다. 우리는 코로나 관련 온갖 신청서와 앱체크인을 마쳤다. 마스크는 당연하고, 우주복 같은 하얀 비닐 옷으로 온몸을 둘러 막은 후에야 출국할 수 있었다.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은 입국이 금지되어, 하롱베이 근처 작은 공항에 착륙했을 때의 기분은 묘했다. 역시 우리가 탄 비행기 밖에 없어서 유령처럼 어두웠던 공항. 입국절차를 거치고 셔틀버스를 타려고 나가자 우리를 향해 뿌려대던 소독약은 잊을 수가 없다. 베트남에 대한 첫인상부터 좋으래야 좋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버스를 타고 격리 호텔에 내리자마자 또 쏟아지는 소독약 세례를 거쳐서야 우리는 비로소 호텔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의 룸은 하롱베이가 한눈에 펼쳐진 환상적인 뷰를 갖고 있는 스위트룸이었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지낼 줄은 몰랐는데, 격리 생활은 어떨까.



소독약의 악몽은 3일 정도 잊혔다. 사진에서만 보던 아름다운 하롱베이가 펼쳐진 호텔에서의 격리. 문제는 음식이었다. 한식인 듯 한식 아닌 음식은 먹기가 너무 힘들어서 4일째부터는 빵과 과일로 버텼다. 먼저 격리했던 남편의 조언으로 가져간 라면 포트는 나와 아이들의 구세주였다.



격리는 일주일까지는 버틸만하다가 10일째에는 한계에 다다르고 나는 가져갔던 10여 권의 책은 제쳐두고 넷플릭스를 켰다. 조승우가 나왔던 드라마와 평소에는 무서워서 별로 안 좋아하는 한국식 좀비물까지 다 봤던 기억이 있다.


드디어 14일의 격리가 끝나고 마중 나온 남편과 함께 우리가 살게 될 집으로 향했다. 하롱베이에서부터 잘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하노이에 가까워 오면서 점점 많아지는 오토바이와 좁아지는 길과 온갖 먼지에 여긴 아니겠지 싶은 동네에 내렸다.


우리가 살게 된 레지던스 건물 하나만 좋다. 다행히 남편이 얼큰한 소고기 뭇국을 끓여주어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동네 구경 한 바퀴 해볼까. 슬슬 산책 나가고 싶은데 남편이 걸어서 갈 곳은 없다고 한다. 이해가 안 되어 5분 거리에 카페를 가는데 왜 안 되냐며 네 가족 당당히 걸어 나갔다.


역시. 5분 거리지만 숨 막히는 더위에 먼지에 게다가 길이 없다. 걸을 수 있는 길이. 정말 우울하다. 그 후에 근처 유명하다는 카페 음식점 수제맥주 집까지 다 가 봤지만 다 맛이 없다. 별로다. 나는 여기에 왜 와 있지. 몇 년을 여기서 살 수 있을까. 아니 몇 달이라도.



이전 01화 프롤로그, 롯데호텔 조식 뷔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