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의 집구석에서 제일 먼 데로 가버려야지
보라색 머메이드지로 감싸 노트를 한 권 만들었다. 또 비가 온다. 비가 오는 날엔 보라색이 좋다. 보라색 하니 떠오르는 방탄소년단, 그들은 ‘사랑해’를 ‘보라 해’ 라고 말하지, 끊임없이 비가 오니 생각도 추적인다. 노트에 이름을 쓸까 하다, 내 얼굴을 그려보자,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엄마에게 얼굴을 그려서 보여준 적이 있다. 다들 어김없이 자기 아니라며 연습을 더 하라는 둥 맘에 들지 않는다는 둥 말이 많았다. 어차피 핀잔 들을 거 나를 보고 그리자, 그 어떤 모습이건 모두 나인데,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어렵겠어?
팔을 쭉 펴 셀카모드를 누른다. 화들짝 놀란다. 예쁘지 않잖아. 괜찮아, 나야 나, 감출 필요도 속일 필요도 없어. 하지만 무방비 상태로 마주한 내 얼굴은 어쩌면 그렇게 낯선지. 이리저리 찍어봐도 맘에 드는 사진이 도무지 나오질 않는다. 화장도 하지 않은 뚱한 얼굴. 그래도 좀 웃어줘. 입꼬리에 긴장을 풀기가 어려워 살짝, 아주 살짝 힘을 줘 미소를 띠어본다. 내가 나한테 예뻐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우스워 피식 웃음이 나온다. 찰칵.
몽땅한 흰색 유성 색연필을 집어 들었다. 막상 그리려니 다른 사람보다도 더 미지의 세계다. 캐릭터를 잡고 파스텔톤으로 입체감을 살려 그려보리, 야무진 꿈이었다. 내 앞에 놓인 ‘나’는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눈썹을 그린다. 가닥가닥이 한 방향으로 잘 쓸려 있다. 따로 그릴 필요가 없던 편리한 내 눈썹은 엄마의 손길, 바람이 지나간 자리 같다. 그 끝은 쳐졌다. 아빠 유전자다. 비를 몰고 다니시던 아빠. 아빠, 우리가 너무 보고 싶어요? 이렇게 비가 오래 내린 적이 없대요. 곧 추석이니 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추석 연휴에 추모의 집도 닫는대요.
눈 모양이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거울 속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눈이 레이저가 나올 것같이 강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덜컥 검은 선을 그려 넣자 어린 시절 그 바람이 주문처럼 들러붙었다. 눈동자는 아직 또랑또랑한가, 그래, 위로하는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투탕카멘의 눈. 이 눈이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 끈질기게 괴롭힐 줄, 이때는 몰랐다. 애교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작은 눈….
“오매!”
나는 서울 노량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그런 내게서 무의식 중에 이 말이 튀어나오는 건, 김치에 젓갈을 듬뿍 넣는(지금은 거짓말처럼 넣으라 시지만) 곳에서 태어난 엄마 영향이다.
“넌 아무 때나 그 말 좀 하지 말어-어. 내 친구들이 전라도 며느리 얻었다고 뭐라 하잖여-어.”
티브이 조선과 채널 에이를 쉬지 않고 보시던 시아버지 말씀을 듣고 뒤돌아 나오는데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물이 났다. 밤새 ‘난, 전라도 사람도 아닌데, 아니, 전라도 며느리면 뭐가 어때서?’ 서운하고 서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왔다. 버스를 집어타고 내린 곳은 서울역이었다. ‘이놈의 집구석에서 제일 먼 데로 가버려야지!’ 서울역에서 갈 수 있는 제일 먼 곳은 여수인 것 같았다. 무작정 여수로 내려갔다. 역 앞에서 보이는 대로 버스를 탔던 것 같다. 향일암엘 갈 수 있다고 했다. 버스에서 내려 헉헉거리고 올라 바위 속을 지나 나가니 눈앞에는 하늘 담은 바다 위로 햇빛이 부서지고 있었다. 해가 다 지도록 앉아 있다가 시내로 나와서 햄버거를 먹고 밤차로 돌아온 새벽 역에는 남편이 무작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시아버지께 물어볼 수 없었다. 그럴 기회는 이제 다시없다.
급하게 음영을 넣어 코를 세우고 밋밋한 볼 피부를 채워 올린다. 내 얼굴이지만 참, 특색이 없다. 들고 나고가 분명해야 하는데 평평하니 색을 채워도 채워도 넓기만 하다. 라이트 피치, 프렌치 그레이와 베이지, 크림슨 레이크로 피부표현을 한다. 왠지 드라마틱하지 않은 것 같아서 빨강을 조금 섞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를 준다. 딱히 하이라이트라 할 것도 없어서 안경 밑 광대뼈 바로 위와 콧등에, 이번엔 과하면 안 돼, 굳게 결심하고 흰색을 얹었다. 입술도 그린다. 아니, 너무 붉잖아, 그래도 그렇지, 다시 그려, 하다가 만약 다시 그리지 못하고 내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이 그림이 영정이 될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좀 화사하고 웃는 얼굴로 만들고 싶다. 또 흰색으로 입가의 주름살, 어색한 입꼬리를 지우고, 그리고 또 지우고, 핑크로 피부에 생기를 주고, 아이라인을 지우고 지워서 부드럽게, 그림자를 지워서 어떡하든 빛나게 해 보려고 애를 썼다. 하나를 고치면 하나를 지워야 하고 하나를 그리면 또 하나를 고쳐야 하고…. 끝이 나긴 하는 걸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나인데 그렇게 묻고 또 묻고 있었다.
‘누구…?’
보라색 노트 위에 그려진 얼굴은 시작할 때보다 더 낯설다. 나이 들어 보이는 화장 진한 아줌마가 어색하게 웃고 있다. 이래서 다들 그림 그려주면 보고서 자기가 아니라 하는구나. 그림을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본다. 뒤집어서 보니 나 같기는 한데, 아, 내가 눈썹, 코와 입, 주름살을 그리며 기쁨보다는 슬픔, 아쉬움, 그리움을 떠올리는 나이가 된 거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바꾸지 못하는 그 추억들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나’인가. 비가 오고 생각이 끊이지 않아서, 오랜 시간을 걷고 걷듯이, 여전히 서툴게 나를 그려보았다. 내가 만난 또 다른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상하고도 친근하고 보라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