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시 Jul 27. 2023

그래도 숨구멍은 틔워놨어야 했다

타지 임신 초기의 나날

    타지에서 임신했다. 결혼 5년 차, 남편과 슬슬 아이를 가지기로 협의했던 일의 결과였는데도, 임신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아침에 임신 테스트기를 확인하고 남편과 셀카를 찍었던 날, 마침 직장에서 전 직원 대상으로 독감 예방 접종이 있었다. “오늘 임신 확인했는데, 주사 맞아도 되는 건가요?” 하고 조심스럽게 묻자, 간호사님이 활짝 웃으며 “그럼요, 임신 축하해요.” 하며 주사를 놔주었다. 안정기인 12주까지는 직장에 알릴 생각이 없었기에, 나는 우리 부서 사람들이 들을까 봐 “땡큐” 하고 조용히 속삭였다. 남에게서 처음으로 받은 축하였다. 얼떨떨했다.


    임신을 했어도 내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일을 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통장 잔고를 최대한 확보해 놓고 싶었다. 내가 사는 이곳, 미국에서 내 직업은 호스피탈 파마시 테크니션 (hospital pharmacy technician)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는 자격증이 존재하지 않는 직업이며, 종합병원 약무 보조원, 혹은 약국 보조라고 부른다.


    일정에 따라 다르지만, 내 일은 병원 안에 필요한 의약품을 제자리에 채우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루 종일 무거운 카트를 밀고 온 병원을 누빈다. 약국 내에 머무는 날에는 전화를 받거나 창구에서 간호사 등을 응대하기도 한다. 물약이나 연고 등의 의약품 조제와 포장, 발송도 한다. 무슨 직무를 맡든 하루 종일 서서 움직여야 해서 체력 소모가 크다.


    이 직업의 큰 장점(?)은 밤에 침대에 눕자마자 곧바로 잠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임신 5주 차에 입덧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그 장점이 빛을 발했다. 전날 소주 두 병은 들이부은 듯한 두통과 니글거림은, 약국 업무에 쫓겨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그래도 조금씩 잊힌다. 시간도 훅훅 잘 가서 어느덧 퇴근 시간이다. 운전대를 잡으면서 다시 입덧 지옥이 시작되지만, 그나마 낮 시간은 잘 버텨낼 수 있다. 지독한 숙취 같은 불편감이 절정에 이르는 저녁시간만 잘 견디면 된다. 나는 술도 안 마시는데 매일 숙취 증상이라니 억울하다. 괴로워서 그냥 빨리 잠들고만 싶었다.




    임신 기간에 일하며 가장 힘들었던 때는, 임신 사실을 비밀로 했던 첫 12주 동안이었다. 그 시기에 입덧이 가장 심해서 나는 내 증상을 누구에게라도 하소연하고 싶었다. 친해진 직장 동료들도 꽤 있었기에, 몇 번이나 다 털어놓고 말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그래도 나는 고집스럽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임신 12주 안에 유산하는 일이 많다고 들어서였다. 섣불리 아이를 가졌다고 말하고 다녔다가 혹시 잘못되면 그 뒤의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양가 부모님과 언니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했던 방침이었던 것 같다. 잘 되든 잘못되든, 적어도 한두 명 정도에게는 모든 상황을 공유하면서 내 숨구멍을 틔워 놓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안 그래도 외롭고 허전한 타지 임신인데 너무 방어적인 태도로 모든 사람들에게 벽을 쳤던 것 같다.


    내가 임신했다고 밝히자, 실제로 나랑 친하던 직장 동료가 한 말이다. 


    “네가 한 달 넘도록 죽을상으로 다녀서 걱정했다. 괜찮냐고, 무슨 일 있냐고 매일 물어보아도 그냥 웃으며 괜찮다고만 하고 자세한 얘기를 안 하니, 너의 신상에 뭔가 나쁜 일이 생긴 거라고 짐작했다. 아니면 임신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도 했는데, 다행히도 그 경우라 무척 안심이다.” 


    심지어는 꽤 초기부터 내 임신을 확신했던(!) 중년 여성 동료들도 있었다. 


    “과연 언제 말해줄지 궁금했는데 그게 오늘이구나.” 


    아니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내가 힘든 티를 줄줄 내고 다니긴 했나 보다.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너무 비장하게 비밀을 지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말하라고 해 주고 싶다. 내 정신건강에 그게 훨씬 좋았을 것이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마음 맞는 누군가와 대화를 해야 풀리는 성격이다. 그런 내가 삶에서 손꼽힐 정도로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데, 남편 외에 아무한테도 말을 못 하고 혼자 두 달 동안 끙끙 앓고 있었다.


    물론 12주가 될 때까지 임신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말이 현명한 조언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고향과 가족, 친구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타지에서 임신한 특수한 상황이었으니, 주변 사람들의 지지를 적극적으로 더 구하고 정서적인 도움을 받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과 친구의 따스한 관심은 고향에 있을 때처럼 쉽고 빠르게 오지 않는다. 내가 더 많이 움직여서 얻어야 한다. 타지에서 사는 것은 외롭고, 타지 임신은 더 외롭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