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첫 초음파를 임신 6주에 보았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엄격한 곳은 10주 넘어야 봐 주는 데도 있다. 미국에서 임신 기간 동안 초음파를 총 두 번 봤다는 경우도 흔하다. 줄자로 배 둘레를 재서 아기 몸무게를 계산한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한국 산모들은 기함을 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는 궁금할 때 찾아가서 보면 된다는데, 여긴 너무 안 보여주네. 답답해서 어떡하지?'
아기 건강에 문제가 있는데 초음파를 자주 안 봐서 놓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뱃속에 있는 아기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싶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산부인과의 느긋함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싫어도 초음파를 많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 내가 35세 이상의 고령산모인 데다가, 19주 차에 전치태반 소견을 받은 것이다.
“전치태반, 즉 태반이 자궁경관을 막고 있는 상태라 제왕절개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의사는 설명했다. 그는 제왕절개를 피하고 싶어 했고, 자궁이 커지며 태반이 위로 올라갈 수도 있으니 기다려 보자고 했다.
단동맥 소견도 따라왔다. 두 개여야 할 탯줄 동맥이 하나뿐이란다. 그는 나에게 전치태반과 단동맥에 관한 자료를 복사해 줬다.
“웬만하면 인터넷에 검색하지 마세요. 무서운 얘기만 나와서 정신건강에 안 좋아요. 너무 심각하게 몰두할 필요 없어요. 대부분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솔직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내가 왜 격려와 위로를 받고 있지? 상상도 못 한 말에 정신이 혼몽했다. 집에 와서 의사가 준 자료를 다 읽고도 불안해서 인터넷에 검색을 몇 번씩 했다. 그의 말 대로였다. 무섭고 슬픈 사례가 가득했다. 마음만 어지러워졌다. 너무 많이 아는 게 병이다. 그냥 의사 말 듣자. 모르는 게 약이다 치고 초연히 지내자고 다짐했다.
그 후로 의사를 몇 번 다시 보았다. 태반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 했다. 완전 전치태반이었다.
“저는 일어서서 일하고 종일 걸어 다니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어야 하나요?”
내 질문에 의사는 무리하게 뛰지 않는 이상 평소처럼 지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나는 좀 어리둥절했다. 미국에서 이러는 건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임신부에게 안정과 휴식을 권하는 일이 별나지 않다. 반면 미국은 일상생활을 계속하라고 하는 게 보통이다. (이해가 된다. 직장생활 업무 강도나, 총 근무시간 차이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라면 두 사람이 할 일을, 한국에서는 한 사람에게 다 시키는 경우 등이다)
그런데 완전 전치태반 소견을 받은 나에게도 똑같은 말을 할 줄은 몰랐다. 한국 검색창에 치면 나오는 ‘전치태반 눕눕 (누워서 휴식)’은 당연한 법칙 아니었나?
혼란해하는 나에게, 의사는 “적당히 움직이는 게 건강에 더 좋아요. 단, 하혈이 있으면 곧장 응급실로 가세요.”라고 했다. 아, 하혈이 있을 때는 눕눕을 하는구나. 여기 분위기 알겠다. 직장을 계속 다니고 싶었는데 잘 됐네. 덕분에 나는 막달 직전까지 잘 다녔다.
나는 그래도 살짝 걱정이 되어, 나 스스로 몸을 사리고 조심하기도 했다. 전치태반 주의사항을 검색해서 알아보고, 남편에게도 알려줬다. 직장에서는 최대한 앉아 있을 수 있는 직무를 맡았다. 제왕절개가 딱히 싫은 건 아니었다. 태반은 안 올라가도 상관없었다. 그것보다는 솔직히 언제 하혈을 할지 몰라 무서웠다. 응급상황에서 조산은 피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용기를 내서 담대하게 지내는 일뿐이었다. 다행히 일이 바쁘고 직장 동료들의 경험담도 많이 들어서, 부정적인 생각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전치태반을 겪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다시 초음파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고위험군에 속한 나는 초음파를 한 달에 한 번은 기본으로 봤다. 배가 커질수록 횟수가 늘었다. 35주 차에 하혈로 입원했을 때는 하루에 한 번씩 봤다. 정말 원 없이 봤다.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다.
느긋하기로 악명 높은 미국 병원은, 고위험 산모에게는 절대 느긋하지 않았다. 정밀 초음파를 보며 방향별로 모니터 화면을 캡처하고, 뭔가의 길이를 재고, 다시 캡처하고 하는데, 일 분이 한 시간 같았다. 누워 있는 나는 죽을 맛이었다. 숨이 너무 차서 헐떡거리다가 잠시 앉아서 쉬고, 이어서 또 초음파를 봤다.
이쯤 되니 초음파를 두 번만 보는 산모들이 너무 부러웠다. 별 이상이 없으면 초음파를 잘 안 보여준다는 미국 병원. 그 속에서 나도 그 별 이상 없는 산모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발 아무 탈 없이 아기가 태어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다행히 나는 나흘만인 36주 차에 퇴원했고, 37주 차에 제왕절개수술로 아기를 낳았다.
임신 당시의 걱정과는 달리, 지금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전치태반과 단동맥 소견을 듣던 그날, 의사의 현실적인 조언은 임신 내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궁금한 것은 전문가인 의사나 간호사에게 자세히 질문할 것. 그리고 인터넷 정보의 양을 조절할 것. 정신건강을 위해서.
인터넷에는 좋은 정보도 많지만, 일반적이지 않거나 중구난방인 정보가 과해지면 육아가 길을 잃는다. 인터넷 정보에 너무 몰두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은, 임신뿐 아니라 출산 후 육아에서도 주효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한 타지 육아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주의사항: 글쓴이의 경험과 이 글의 방향이 모든 미국 산부인과에서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의학적인 부분은 반드시 본인의 주치의와 상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