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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Feb 15. 2024

무지개가 떴다 13

감독님의 아바타 축구

감독님의 아바타 축구


경기를 할 때면 우리의 정신력은 감독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의해 급상승한다. 몇 번의 경기를 통해 여실히 느꼈는데 첫 번째 쿼터/경기를 마치고 나면 항상 매번 혼이 났다. 경기를 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우리라서 그런지 처음부터 경기력이 뿜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항상 첫 번째 쿼터 혹은 전반전을 마치면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는데 충분히 더 잘할 수 있고 더 몸싸움할 수 있는데 그러지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한 번 혼나고 나면 두 번째부터는 조금은 볼만해진다. 좀 더 과감한 몸싸움과 볼에 대한 욕심, 한 발이라도 더 뛰려는 마음으로 숨이 차도록 전력질주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공의 흐름에 따른 감독님의 지시는 매우 구체적이고 바로 적용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기에 실현 가능한 아바타 축구!


가라면 가고 몸싸움을 하라면 하고 뛰라면 뛰고. 공 따라서 감독님 목소리가 들리면 본능적으로 반응해서 어떻게든 할 수가 있는데 제일 어려운 건 바로 ‘콜’을 하는 거다. 나 같은 경우는 평생을 큰 소리로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를 안 하고 살아왔는데 패스를 나한테 달라고 콜을 하고 당신한테 공을 준다고 콜을 하고 어떤 상황인지를 팀에게 알리는 등의 ‘콜플레이’가 너무 생소했다.


평소 훈련 때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패스를 주거나 나에게 패스를 달라고 외치는 연습을 하긴 했다. 그런데 내가 이 타이밍에 콜을 해도 되나 싶고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맞나 싶어서 입이 차마 안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영진언니는 엄청난 콜플레이로 회원들의 정신을 쏙 뺐는데 나는 처음엔 정말 혼나는 줄 알았다. 마치 나 어릴 적 우리 엄마가 나를 혼내던 것처럼 콜플레이를 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날 것 같던지. 그래서 한 번은 언니한테 정색하고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그게 또 언니한테는 상처가 되어 가끔 술 한잔 할 때면 ‘나 너한테 상처 많이 받았다.’고 얘기하곤 한다. 파워 T인 언니도 상처를 받는구나,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했지만 다음날에 기억이 안 난단다. 하하하하하. 아무튼 영진언니는 무지개WFC의 첫 정기총회를 통해 ‘팀 코치’가 되어 이제는 공식적으로 우리에게 수많은 콜플레이를 당당하게 선사할 예정이다.(언니 나 괜찮아! 마음껏 이래라저래라 해줘.)


감독님의 아바타 축구는 경기에 임하는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다독인다. 훈련을 할 때는 그날 배운 내용을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 경기를 할 때는 배운 대로 하지 못하더라도 다시 하면 된다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말이다.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라고. 완벽한 플레이는 어느 때에도 있을 수가 없고 실수를 커버하며 계속 우리의 플레이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오… 너무 좋다. 실수했다고 자책할 시간에 다시 만들어가는 것. 그럴 때 감독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시 가야지!”, “다시 해야지!”, “해봐!”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감독님, 분명 나보다 한참 젊은 사람인데 뭐지?



첫 전국 대회 출전의 쓰라린 기억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우리 팀의 기량이 많이 성장했다는 걸 느껴갈 때쯤 어느 날 감독님께 말씀드렸다. “경기를 좀 더 자주 하면 어떨까요?” 뭔가 욕심이 났기 때문인데 우리의 단호한 단호박태환감독님은 “분기별로 한 번 정도 가시죠.”라고 단칼에 정리해 주셨다. 그러다 어느 여유로웠던 날 우리 동네 방앗간인 카페에서 은혜, 수정이랑 커피를 마시다가 만난 개군FC회장님이 이천에서 풋살대회가 있다며 정보를 주셨는데 엄청 혹하는 거다. 무려 ‘전국 풋살 대회’라니.


지나가다 찍은 현수막 사진을 보여주신 건데 검색하니까 바로 신청 링크도 나오고 대회 정보도 나오니 이렇게 알게 된 이상 우리는 출전할 수밖에 없던 운명이었다. 바로 임원방에 공유하고 바로 감독님께 컨펌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참가 원하는 회원을 모집했고, 명단을 작성해서 접수하기까지 정말 빠르게 진행되었다. 사실 우리는 뭔지도 모르고 대회 한번 나가자고 으쌰으쌰 했던 거였는데 나중에 구단주님은 ‘말릴 틈도 없이’ 참가비까지 내버려 말도 못 하고 말리지도 못했다고 하셨다.


구단주님이 왜 렇게 말씀하셨는지는 경기 당일 알게 되었다. 우리와 예선 첫 상대팀은 이번 대회를 위해 전국에서 모인 ‘선출’들이었다. 하하하하. 왜 우리는 당연하게 해 볼 만하겠지 생각했을까? 아 웃기다. 예선전에서 8위 안에 들어야 8강에 갈 수 있고, 그래야 순위권에 들 수 있는데 예선 첫 번째 경기만에 우리는 알아버렸다. 아~ 아마추어 대회가 아니구나?!!!

엄청난 대회였다.

우리는 그야말로 발렸다…. 경기 결과는 쓰고 싶지 않다. 그래도 이번 기회가 우리에게 좋았던 것은????? 다음에 대회에 또 나간다면 '순수 아마추어 대회'인지를 꼭 확인하고 나가야 한다는 경험을 했다는 것?? 구단주님은 ‘말릴 틈도 없이 신청하더니 그걸 몰랐어?’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정말 몰랐다. 이런 풋살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그래도 그랬으니 도전해 본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열심히 했다!

그래도 우리는 전국 대회 8강에 들었다. 예선전에서 잘 지고서 현수막 들고 단체사진 찍고 철수하려던 우리에게 지나가던 여성축구인이 ‘어? 가시면 안 되는데?’라는 말을 전하는 바람에 우리가 8강에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고. 경기를 한 번 더 한다고? 짐까지 다 쌌는데.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은데. 8강 경기에서 우리와 예선 1차전 때 붙었던 팀을 다시 만났다. 예선 때보다 더 처절하게 발렸다. 우리는 약간 해탈했던 것 같다. 최선을 다해 경기했지만 경기 결과가 아쉽거나 안타깝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우리는 전국 풋살 대회에서 8강에 진출한 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음번에는 ‘순수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해서 우리 실력으로 영광을 누리자고.


평생을 축구계에 계셨던 감독님 이런 대회라는 건 예상치 못하셨던 듯하다. 다른 팀 경기를 보러 보조구장으로 갔을 때 감독님은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시나요? 하하. 다음 순수아마추어 대회에서는 잘해볼게요!!


다음 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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