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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Feb 17. 2024

무지개가 떴다 14

풀코트를 뛸 수 있는 축구단이 될 거야

11:11


9월 말. 양평군에서 가장 오래 운동하고 있는 양평여성축구단, 광주오포여성축구단과 친선 경기가 추진되었다. (분기별로 친선 경기를 추진하자고 하셨던 감독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우리에게 같이 경기를 하자는 연락이 회장님께는 꽤 오고 있는 것 같다.) 양평여성축구단이야 워낙 역사가 깊은 양평군 대표 축구단이라 알고 있었고 안전기원제 때에도 같이 뛰어본 경험이 있었는데 광주 오포에서 우리와 경기하기 위해 금요일 저녁에 양평으로 온다니. 우리야 어차피 우리 동네니까 그랬는데 그 차 막히는 금요일 저녁에 양평을 오신다니 아직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녀들의 열정이 벌써 멋있게 느껴졌다.


나는 사실 9월 내내 너무나 바빴는데 스스로 '도장 깨기의 달'이라고 불렀을 만큼 해야 할 일도 많고 청소년 축제 등 큰 행사도 치러야 했던 데다 주 2회의 축구 훈련도 빠지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쉴 수 있는 시간이 아예 없었던 때였다. 친선경기가 열렸던 이 날에는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었는데 아들의 학교에서 진행하는 국제 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대만에서 온 중3 남학생 두 명이 우리 집에 홈스테이를 와 있었기 때문이다. 6시 퇴근 후 나의 아이들, 대만에서 온 두 아들의 저녁 식사를 챙기고 경기할 동안 놀만한 거리들을 챙기고 상황에 따라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나와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복잡함이 예상되어 아침부터 긴장이 되었다.


대만 아들들을 아침에 등교시키면서 나는 오늘의 일정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취미로 축구를 하고 있고 오늘은 내가 원래 훈련하는 날인데 특별하게 경기가 있는 날이다, 그래서 퇴근하고 너희를 챙기기가 나도 바쁘니 학교가 끝나면 내 근무지로 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경기장으로 가자, 거기는 스포츠시설이 많아서 농구를 좋아하는 너희들이 농구를 할 수도 있고 경기를 볼 수도 있다'며 중국어가 하나도 안 되지만 파파고를 사용해 영어로 번역하고 중국어로 또 번역하면서 최대한 내 상황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아침부터 챙길게 많았던 나의 상황 때문에 하루 종일 엄청나게 긴장을 했다. 하루 종일 숨을 쉬기 위해 심호흡을 해야 할 정도였는데 경기장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훈련을 할 때도 감독님으로부터 전술을 들을 때도 계속 심호흡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지속된 긴장감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우리 아이들과 대만 아들들을 잘 챙겨놓고 훈련과 경기에 임할 수 있었는데 이번 경기는 처음으로 하는 11:11 풀코트 경기였다.


워낙 정신이 없던 날이었기도 했고 즈이들끼리 놀다 지친 아이들이 집에 가서 쉬고 싶다고 해서 경기를 앞두고 집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나오는 등 마음이 바빴던 날이었어서 그런지 경기에서 어떻게 했나 사실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역할을 맡은 포지션에서 열심히 하긴 했던 것 같은데 내 플레이가 어땠는지 어떤 역할을 해냈는지가 말이다. 


가장 기억이 남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경기장 중간쯤에서 패스를 받았던 때였다. 내 앞에 아무도 없었고 수비도 근처에 없었던 것 같은 터라 게다가 내 앞에 상대팀의 골대가 보였던 터라 드리블을 결심했다. 그리고 열심히 드리블을 하며 얼마쯤 갔을까? 내 몸과 내 다리에 힘이 급격하게 빠졌다. 드리블해서 슈팅까지 하고 싶었던 내 마음과는 다르게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결국은 쉽게 지쳐버렸고 수비에게 공도 빼앗겼다. 풀코트에서의 상대편 골대는 참 멀었다.


이 날 경기는 3팀이서 4경기를 진행했다. 광주오포여성축구단의 인원이 살짝 적어서 무지개에서 몇 명의 회원이 오포와 결합하여 우리와 대결하기도 하고 양평여성축구단과 대결하기도 했다. 우리 팀에서 뛰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분명 좋지만은 않았으리라. 그래도 모두들 열심히 뛰었던 것 같다. 무려 20분씩 4게임을 풀코트에서 했다 보니 그 여운이 밤까지 계속 남았던 것 같다. 경기 내용을 다시 생각해 보고 단체 사진을 다시 보고 우리 경기가 어땠는지 복기해 보면서 첫 풀코트 경기의 밤이 지나갔다.



풀코트 리턴 매치


양평여성축구단과는 10월 말 한 번 더 풀코트 매치를 했다. 그녀들이 훈련을 하는 용문생활체육공원으로 우리가 이번에는 원정을 나갔다. 이 날 나는 또 마음이 급했는데 이번에는 아들이 대만으로 국제교류를 가는 일정을 앞두고 있어 학교 설명회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날짜와 시간이 겹쳐버렸다. 제발 빨리 설명회가 끝나기를 바라며 엉덩이가 수없이 들썩거렸지만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농담을 하시고 그렇게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씀을 하시며 무려 1시간 반에 걸쳐 설명회가 마무리되었다. 벌써 1시간 이상 늦었다. 아들을 빠르게 집에 데려다주고 부랴부랴 용문으로 이동했다.


운동장에 도착하니 이미 경기는 시작되어 있었고, 나는 마음은 급하지만 착실히 스트레칭 루틴에 따라 워밍업과 전신과 다리 스트레칭을 스스로 진행했다. 내 몸은 소중하니까! 풀코트를 뛰려면 숨이 틔여야 하는데 첫 번째, 두 번째 게임이 끝나고 세 번째 게임의 시작 전 감독님은 나와 영진언니(나와 같은 저녁 일정이었다)의 워밍업을 다시 한번 해주셨다. 감독님께서 해주시는 경기 전 워밍업을 할 때면 숨이 안 쉬어지고 다리가 너무 무겁고 아파서 진짜 죽을 것 같은데 그게 몸이 풀리는 과정인 것 같다. 경기할 때 오히려 숨이 차긴 해도 잘 호흡할 수 있다. 경기 전 워밍업 할 때 힘들다고 살살하면 경기장에서는 뛰면서 호흡하기가 쉽지 않다.


세 번째 게임에서 나는 왼쪽 미드필더로 경기를 뛰었다. 그동안의 기간 동안 꾸준히 운동을 했어서 그런지 체력도 꽤 좋아졌다고 느꼈다. 힘들긴 했지만 끝까지 붙어서 우리 골대로 향하는 상대편을 놓치지 않으려고 힘껏 뛰었다. 나는 경기를 여러 번 뛰는 경험에서 생각해 보면 미드필더로 뛰는 게 잘 맞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감독님은 아직 그 누구도 어느 포지션이 잘 맞다 얘기할 정도의 기량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수비를 보면 너무 잘 뚫리고 공격을 가면 너무 부담스러웠다.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할 때면 운동장도 넓게 볼 수 있고 패스 연결도 할 수 있고 뛰어 들어갈 수도 있어서 경기가 훨씬 재미있게 느껴졌다. 물론 미드필더에 걸맞은 체력을 장착해야겠지만 말이다.

용문생활체육공원에서 경기 끝나고 단체 사진!


우리의 워너비


겨울을 맞이하며 우리는 실내연습장을 감사히 사용할 수 있게 되며 훈련의 멈춤 없이 꾸준히 모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 당일 바깥 온도를 계속 체크하며 호시탐탐 야외 운동장에서 운동하려고 하는 이유는 우리는 넓은 운동장에서 마음껏 달리며 결국에는 11:11 풀코트로 경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우스갯소리로 풋살은 우리를 품기엔 너무 작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벌써 회원이 25명이 되는 데다가 엊그제 훈련에서는 무려 20명이 출석하여 10:10이 가능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회원을 조금만 더 늘리면 우리끼리 풀코트 경기가 가능해질 것 같다. 여성 축구를 시작한 지 1년 반, 나는 아직도 목이 마르다. 우리는 아직도 회원이 부족하다!


다음 편 예고

무지개가 떴다 15. 여성 축구, 이래서 해봐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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