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희 Feb 13. 2024

무지개가 떴다 12

축구단이니까 전지훈련

축구단이니까 전지훈련 1


회장님과 구단주님께서 준비하고 있던 또 하나의 이벤트. 바로 전지 훈련 되시겠다. 10월 중순쯤 날 좋을 때로 1박 2일을 다녀오기 위해 7월부터 준비했다. 일정을 정하는 데 회원들의 스케줄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금토를 갈 것이냐 토일을 갈 것이냐에 대해 의견들이 반으로 갈렸는데 딱 한표 차이로 토, 일 1박 2일을 가는 것이 결정되었다.


좋은 날짜를 정하고 숙소와 식사를 정하고 1박 2일의 계획을 정하는데 구단주님과 회장님께서 많은 노력을 기울어주셨다. 강원도 출신 구단주님께서는 모교 축구부 감독님과의 인연으로 모교를 기반으로 축구하고 있는 주천여성축구단과 인연을 맺어주셨다. 주천팀은 체험마을 숙소를 소개해주어 보다 저렴하게 엄청 넓은 식당과 방을 이용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그리하여 우리는 드디어 10월 14일과 15일 축구단답게 첫 전지훈련을 떠났다.


전지훈련을 떠날 준비를 하며 임원진들은 준비해야 할 사항이 정말 많다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훈련과 경기를 위한 준비물뿐만 아니라 즐거운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위한 개인별 준비물까지 리스트업 하고 공지하기, 이동 동선, 시간 체크, 일정 체크, 식사 체크 등 무수한 체크리스트를 함께 준비했다. 그중 총무 수정이의 역할이 단연 대단했는데 그녀만의 에너지로 불평 한마디 없이 모든 것을 체크해 나갔다. 회사 업무를 한다는 것을 핑계로 나는 많은 준비를 함께하지 못해 죄송스럽고 미안했는데 우리 축구단 임원진은 그런 게 없다. 바쁜 사람은 바쁜 대로 마음을 내고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조금 더 참여하고 그런 너그러운 분위기인 우리! 미안함은 마음 한켠에 놔두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참여를 하며 즐겁게 우리의 첫 전지훈련을 준비했다.


두둥. 드디어 떠나는 날이 되었다. 아침부터 비가 왔다. 사실 그동안 내내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을 날씨라 의아했었는데 떠나는 날까지 비가 오다니. 그래도 우리가 어떤 팀인가. 비 오는 거랑 축구하는 게 무슨 상관이지?라는 물음표 띈 얼굴을 할 수 있게 된 장마 트레이닝으로 다져진 우리 아닌가. 떠나는 길은 룰루랄라. “음~ 비가 오구나~ 음~ 괜찮아~ 떠나니까 좋다~ 1박 2일은 너무 짧아 우리 다음엔 2박 3일을 가자~” 들뜬 마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출발이다. 양평에서 출발해서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까지 가는 동안 비는 멈추었다. 역시 비는 그치고 무지개는 뜬다!!


영월군에 뜬 우리 무지개WFC는 첫 일정으로 식사를 하고 영월 한반도지형에 방문했다. 사실 그동안 마을 활동을 하며 다양한 선진지 견학과 워크숍을 다녀온 경험이 있지만 내가 속한 동호회에서 이렇게 멀리까지 함께 왔다는 것에 대한 감상은 너무 달랐다. 일단 뭐를 하든 그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 가는 길이 험하면 험한 대로 뷰가 멋있으면 멋있는 대로 모든 시간이 다 재미있었다. 한반도 지형 전망대에서 단체사진도 찍고 주차장에 내려와서는 현수막을 들고 나란히 서서 단체사진 찍었다. 이런 사진들, 다른 때는 그렇게 흥미 있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같이 사진을 찍고 싶지. 단체 사진 왜 이렇게 좋지. 왜 이렇게 현수막을 펼치고 싶지. 식당에서 밥을 먹고 한반도 지형을 보러 올라갔다 내려오고 경기가 열리는 주천고등학교로 가는 길에도 도착하고 몸을 푸는 시간에도 너무 즐거웠다.

한반도지형을 같이 구경했다.


오후 경기를 앞두고 우리의 멋진 유니폼으로 갈아입기 위해 잠시 들른 숙소에서 다들 경기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우리의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감독님께서는 직접 발목테이핑도 해주시고 양말 안에 정강이 보호대를 끼워 넣으며 우리는 결의를 다졌다. 꼭 이기자고. 이기고 다시 돌아와 밤새 즐겁게 먹고 마시며 놀자고 말이다.

감독님이 손수 해주시는 발목 테이핑, 경기 준비 완료 후 잠시 휴식!!


드디어 경기장에 도착. 설레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준비를 했다. 촬영팀은 카메라를 설치해서 우리의 경기를 기록하기 위해 준비하고, '무지개가 떴다'현수막도 옆에 달고, 감독님은 어떤 경기를 펼쳐야 할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감독님께서 정해준 각자의 포지션을 염두에 두며 워밍업과 스트레칭을 시작하니 이제 정말 경기가 시작되는구나 실감이 나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몸을 풀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경기를 시작하니 비가 내린다. 역시 비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이구나. 선명한 무지개가 뜨기 위해서 비는 필수. 우리는 굴하지 않고 열심히 경기에 임했다. 8:8로 하프코트로 15분씩 4 쿼터 경기를 펼치는 동안 상대는 먼저 2골을 넣었고 우리는 3,4 쿼터에서 3골을 넣어 역전승을 기록했다. 주어진 시간 동안 끊임없이 도전하고 시도하고 골문을 두드려서 넣은 세 골. 풋살 규격도 아닌 하프 코트에서의 격렬한 경기와 쏟아지는 비로 무지개WFC와 주천여성축구단은 모두 흠뻑 젖은 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축구를 하는 우리들 쫌 멋진듯! 주천팀과 우리는 상하의 유니폼 색이 완전 같았다!


주천팀이 처음 운동장에 등장했을 때 는 그동안의 경기때와 마찬가지로 여지없이 수군거렸는데 바로 이런 내용. ‘되게 잘할 것 같다.’, ‘엄청 세 보인다.’ 등등 스스로의 자신감을 깎아내리는 생각을 말로 내뱉었던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이런 수군거림은 감독님 귀에 굉장히 잘 들려서 몇 번이고 혼났는데도 또.. 수군거리다가 감독님이랑 눈이 마주치고는 입에 바로 자물쇠를 달았다.


나는 이때까지도 축구에 자신감이 없었나 보다. 상대방의 공 다루는 모습을 본 것도 아니고, 엄청난 워밍업을 본 것도 아니고 그냥 걸어서 지나가는 것을 본 것일 뿐인데. 아니면 괜히 앓는 소리 해보고 싶었던 걸까? 이런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니 나의 100% 실력이 나올 리가 만무했다. 다시는 상대팀의 등장만으로 잘할 것 같다는 둥, 우리 클났다는 둥 쓸데없는 앓는 소리를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축구단이니까 전지훈련 2


쏟아지는 비 속에서 엄청난 하프코트 축구를 하고 난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무려 1박 2일!! 이기 때문에 다들 기쁜 마음으로 일단은 좀 씻고 개운하게 나와 저녁을 먹었다. 당일에 돌아가는 사람들은 끝나고 정리하기 어려우니 밥상을 차리자!라는 대략적인 계획으로 당일팀이 먼저 씻고 세팅하러 나갔는데 어느새 다 같이 엄청난 양의 저녁을 세팅하고 있는 대목.


영옥언니의 가마솥밥에 회장님의 숯불바비큐, 반찬들, 소주와 맥주들까지 푸짐하게 한 상 차려놓고 주천팀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천팀도 먹을거리를 양손 가득 잔뜩 준비해서 합류했다. 함께 짠을 하고, 전지훈련 기념 수건을 전달하는 등 같이 먹고 마시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자연산 송이버섯!! 생 송이버섯을 결대로 쭉쭉 찢어 기름장에 찍어먹는 그 맛이라니. 역시 강원도의 맛.


다음번에는 양평으로 주천팀을 초대하기로 약속하고 배웅을 잘해드리고는 이제 우리만의 시간이다. 며칠 전부터 수정이가 공을 들여 준비했던 무쓸모물건 증정식을 시작으로 뜨거운 뒤풀이가 이어졌다. 우리의 오락부장 효운언니의 사회로 회장님, 구단주님, 감독님의 말씀과 우리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각자의 삶이 다르듯 각자의 소감이 달랐는데 그 와중에 공통적인 내용은 역시 ‘축구하길 잘했다.’, ‘ 잘하고 싶다.’였다. 운동을 해본 적이 없든 어떤 운동을 해왔든 우리는 같은 마음 느끼고 있었나 보다.


참 신기하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포츠를 계기로 또래들과 공동체의식을 느껴본 적이 없다. 점심시간 축구는 남학생들이 주로 했던 것 같고, 운동장 둘레나 천천히 걸으며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난다. 안 그런 사람들도 겠지만 나의 경우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성인이 돼서 했던 운동은 요가, 헬스, 골프 정도. 같은 공간에서 운동하지만 각자가 하는 운동을 더 쉽게 해 봤다. 그러던 중 30대 후반에서야 팀스포츠를 시작했더니 이건 정말 신세계인 거다.


술과 함께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무지개의 회원들이 말했던 소감을 들으며 스포츠로부터 비롯된 공동체 의식을 느꼈다. 나 혼자 잘해야 하는 운동이 아닌 함께 잘해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 운동이 바로 축구이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성장하길 바라고 우리가 함께 열심히 하길 서로가 바라고 있었다. 게다가 경기장에서 터지는 그 골 맛과 다 같이 이겨 승리를 만끽하는 그 시간이라니. 크… 이런 맛에 남자애들이 그렇게 축구를 재밌게 했었구나. 나는 왜 이제야 안 거야. 왠지 억울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고, 회원 모집도 중학생 이상부터 함께할 수 있게 문을 더 크게 활짝 열기로 했다.


그 후로도 우리는 엄청 잘 놀았다. 아줌마들의 1박 2일 일정, 그 얼마나 소중하랴.(물론 아줌마가 아닌 회원들도 있다!) 우리는 1분 1초를 허투루 쓰지 않고 풀타임을 꽉꽉 채워 알차게 놀았다. 술도 무진장 마시며 놀았는데 우리는 역시 축구단답게 다음 날 아침 주천팀과의 조기축구도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몸을 사릴 순 없지. 술도 무진장 마시고 턱이 빠져라 웃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떠들고 팔씨름, 허벅지씨름 등 각자의 힘을 내며 우리의 시간을 즐겼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 8시부터 예정된 조기축구를 위해 7시가 되기도 전부터 일어나 숙소 정리와 짐 정리, 경기에 임할 준비를 마치고 풋살장으로 출발! 울렁울렁~ 울렁대는 우리의 속은 설렘 때문이 아니라 숙취 때문에…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겨우 도착한 풋살장에서 가장 멀쩡했던 회원은 어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언니들이었다.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겨우겨우 경기에 임한 우리는 15분씩 전, 후반의 경기를 했다. 회장님의 어시스트와 산하의 슈팅, 그 환상적인 콤비플레이로 1골을 기록!! 1:2로 패하긴 했지만 풋살에서 패한 게 중요하랴! 우리는 어제 하프코트에서 역전승을 한 팀인데. 하하. 게다가 우리는 많은 회원들이 어제 집으로 돌아갔다고. 여하튼 아침부터 공을 차보니 조기축구도 참 매력적이었다. 수많은 조기축구팀들이 왜 일요일 아침부터 모여 조축을 하는지 완전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숙취가 축구로 해소되는 느낌이랄까? 숙취 덕분에 손흥민이 된 것 같다는 효운언니의 강렬한 후기에 우리는 다음번 조축을 기약했다.


이렇게 1박 2일의 전지훈련이 끝났다. 우리는 나들이와 축구와 회식 속에 한층 더 끈끈해진 것 같다. 이렇게 동지애가 생기는구나, 함께 맞은 비와 함께 흘린 땀방울, 함께 먹고 마신 밥과 술로 우리는 점점 한 팀이 되어가고 있다.


다음 편 예고

무지개가 떴다 13. 감독님의 아바타 축구

이전 11화 무지개가 떴다 1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