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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Feb 11. 2024

무지개가 떴다 11

리턴 매치

리턴 매치


2023년 첫 연습 경기로 만났던 양서면 여성축구팀과의 리턴 매치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근두근. 몇 분 뛰지도 못하고 패배의 쓰라림을 느꼈던 지난 경기와는 분명 다르지 않을까? 우리는 비가 오나 날이 더우나 주 2회 훈련을 꾸준히 해왔고 감독님의 열혈 가르침까지 모두 습득(과연?) 했으니까! 이번에는 심지어 홈경기인데 절대 지면 안된다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경기 전 훈련은 감독님과 함께 속성 훈련으로 진행했다.


동네에서는 면장님을 비롯하여 개군FC, 기관 단체장 등 만나는 사람들 마다 우리 홈에서 친선경기 하니까 응원 오라고 홍보하기 시작했다. 하여간 이 입이 문제다.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다! 소문을 내고 싶다! 우리가 잘하는 모습을 선보이고 싶다! 나는 내향형 인간인데 왜 축구 얘기만 하면 이렇게 파워 E가 되어버리는 걸까? 참 알 수 없는 일이다.(또 자료를 뒤져보다 보니 페이스북에 우리 경기한다고 응원 오라고 글까지 올렸네! 이 손가락도 문제다.)


두둥. 리벤지 매치의 그날이다. 우리의 킥 오프 시간은 저녁 8시 30분. 평소 훈련 때처럼 7시에 모였으니 충분히 몸 풀고 워밍업 했고 속성 훈련을 한 번 더 받았다. 평범한 친선 경기가 아니라 무려 리벤지 매치의 날이었기 때문에 모두 아이들을 데려왔고, 우리를 응원하는 남편들도 발걸음 했다. 상대팀 또한 남편들과 아이들도 함께라 운동장이 시끌벅적 왁자지껄이었다. 게다가 나뿐만 아니라 소문을 내고 다닌 회원님들이 또 있었던 것 같다. 면장님과 면사무소 직원들, 축구 경기를 보러 온 동네 축구인들까지. 오호, 이건 너무 부담스러운데~

워밍업과 숨 트이기, 몸싸움 훈련


사실 이 날은 아침에 출근하기 전부터 심장이 두근댔었는데 하루 종일 두근거려서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던 날이었다. 잘하고 싶었으니까 그만큼 더 떨렸다. 그런데 그렇게 하루 종일 덜덜 떨고 긴장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경기를 보러 온 저녁 시간엔 오히려 긴장감이 덜해졌다. 이제 막상 눈앞에 경기가 닥쳤으니 긴장할 새도 없다고 느꼈다. 나는 이번에 출전하면 걷지도 않고 미친 듯이 달려 다니면서 미친 듯이 경기할 거다!라고 다짐했다.


드디어 경기 시작! 나는 15분씩 4 쿼터로 진행된 경기에서 1,2,4 쿼터에 출전했다. 풀타임은 아니었지만 윙으로, 포워드로 출전하며 은혜와 패스를 주고받으며 몇 번의 슈팅을 하고 몇 번의 도움을 기록할 뻔했다. 수비가 달려들면 공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했고(잘 뺏기긴 했지만) 골키퍼로부터 공중볼이 오면 피하거나 움츠러들지 않고 내 공으로 만들려고 발을 갖다 댔다. 그 와중에 감독님 목소리는 어찌나 잘 들리는지. “태희! 가야지 가야지!”, “몸싸움해야지 왜 안 해!” “더 붙어 붙어!” 등등 내가 뭘 해야 하는지 경기장 안과 밖을 넘나들며 목청껏 알려주셨다. 가야지 가야지 하시면 가고 몸싸움해야지 해야지 하시면 몸싸움을 하고 더 붙어 붙어하시면 더 붙고. 감독님 목청이 터질 수밖에 없는 대목.


이 날 우리는 3:0으로 승리해 지난번 패배에 대한 원수를 갚아주었다.(원수를 갚기까지?ㅎㅎ) 와우 대박!! 3:0이라니. 무려 3골이 폭발하며 우리는 너무 행복하게 축구 경기를 했다. 열심히 해야겠다, 잘해야겠다 다짐은 했지만 모두 함께 한 팀플레이와 감독님의 코칭 하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하나라도 더 하려고 했던 것 덕분에 이런 승리를 만끽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감독님께서 이번 승리의 80퍼센트 이상은 하신 것 같다. 처음 훈련했던 그때부터 4개월밖에 안 지났는데 공 차는 게 많이 익숙해졌고 어떻게든 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 있게 나뿐만 아니라 회원들의 외적, 내적 성장을 이끌어주셨구나 생각했다. 이 날 경기를 이기고 감독님은 우리에게 이기는 습관을 갖자고 하셨다.


'이기는 습관'이 그때 당시 들으면서는 이해가 갔지만 다시 떠올려보니 영 무슨 뜻이었는지 기억이 안나는 거다. 그래서 감독님께 다시 한번 물어봤다. 무슨 뜻이 담긴 말이냐고. 감독님은 이길 수 있는 방법들을 습관처럼 내 몸에 각인시켜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 때 써야 할 기술을 실수하지 않고 해낼 수 있는 무의식적인 반응이 나올 정도의 습관화를 말씀하셨다고 한다. 아하. 그건 결국은 무의식적으로 배운 게 딱딱 나올 수 있을 정도로 훈련과 연습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셨군. 좋았어. 이기는 습관으로 가자!! 그리고 몇 개월 만에 뒤풀이 겸 회식을 거하게 하였고, 승리에 취해 나는 생맥주 트라우마도 극복할 만큼 행복하게 먹고 마셨다.


리턴 매치 2


양서팀과의 경기 후 바로 1주일 뒤 아주 뜨거운 여름 오전, 또 하나의 리턴 매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최수종의 연예인축구단 일레븐과의 리턴 매치였다. 토요일 오전! 다 같이 운동장에서 만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전날부터 설레었다. 그때 당시 나는 ‘내일은 출근이 아니라 축구라서 행복하다. 오늘 저녁 금요일 훈련도 했는데 내일 또 축구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 시간을 기다렸는데 아뿔싸. 엄청 더운 여름날의 오전이었던 것이다. 주로 깜깜한 어둠 속에서 축구를 해왔던 나는 여름의 햇볕 더위가 얼마나 뜨거운지를 잠시 망각했던 것 같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뜨거운 여름의 햇과 달궈질 대로 달궈진 운동장의 인조잔디는 발바닥이 타버릴 것 같아 가만히 서있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발을 동동거리게 했다.


우리의 훈련 루틴대로 러닝과 스트레칭으로 오늘의 리턴 매치를 야심 차게 시작… 하려고 했는데 달궈지는 머리와 발을 디디기 힘들 정도로 뜨거운 운동장의 열기를 발바닥으로 느끼고 오늘 만만치 않구나 싶었다. 그래도 겨우 스트레칭을 마치고 목에 둘렀던 스포츠타월에 얼음을 몇 개 넣어 머리 위에 올려 묶어본다. 임시방편일 뿐이었지만.


경기는 우리 무지개WFC, 일레븐 연예인축구단, 양사랑FC 세 팀이 참여했는데 우리는 일레븐 연예인축구단과만 경기했다. 지난번 경기 이후 7개월 동안 인원이 많이 늘은 데다 우리에겐 감독님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11대 11로 일레븐과 맞섰다. 운동장 위에서 달릴 때의 그 발바닥 지지는 듯한 뜨거움과 탈 것 같은 정수리의 느낌이 다시 떠오른다. 우리야 뭐 그냥 그렇게 골도 많이 먹혔지만 감독님은 오직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한 골을 기록하고 그 뜨거운 운동장에 대자로 드러누워버리고 말았다. 감독님이 골을 만들어낸 그 영상은 정말 너무 멋졌다. 역시 감독님은 우리의 연예인~ 최수종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감독님만 있으면 돼~~~~


이 날은 마침 감독님의 생일이기도 했다. 그동안 갑자기 생일을 물어볼 기회도 없고 그래서 몰랐는데 경기하러 가는 아침 은혜한테 전화가 왔다. “언니 오늘 감독님 생일인가 봐!” 확인해 보니 카톡엔 안 뜨는데 생일인 것 같은 사진이 있네? 바로 회장님께 전화. 회장님께서 급하게 던킨도너츠에 다녀오시기로 했다. 선물은 못 드려도 우리 마음은 드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경기를 마치고 깜짝 서프라이즈, 도넛으로 케이크를 만들고 생일 고깔을 씌워드리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우리와 함께한 감독님의 첫 생일 파티! 연예인 축구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온 마음을 담아 함께 축하했다. 앞으로도 매년 축하할게요~ 매년 축하할 수 있게 우리와 함께 해요 감독님~~~ 우리 축구단의 연예인 박감독님께 꾸준히 질척거릴 예정.


다음 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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