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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Feb 08. 2024

무지개가 떴다 9

동호회란 무엇인가

동호회


나는 지금까지 ‘동호회’를 해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마을 활동을 한다고 여러 가지 모임을 만들긴 했지만 굉장히 공익적이고 공공적인 느낌의 독서모임이라던지 환경 동아리 등의 모임이었는데 ‘축구동호회’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여느 모임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축구동호회 목적 엄청 순수하게 뚜렷했다. '축구를 잘하고 싶다' 그리고 '같이 재밌게 해보고 싶다'이 두 가지로 모든 설명을 끝낼 수 있을 정도로 색깔이 분명했다. 하나의 주제 아래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만큼 신경 써야 할 것들 많은 것 같다.(~~ 하는 것 같다.라는 문장의 말미는 평소 좋아하지 않은 문장의 맺음이지만 오로지 나의 생각이고 가늠이기 때문에 이 말로 문장을 맺을 수밖에 없다.) 회원님들의 몸 상태, 기분 상태, 동호회의 규칙, 훈련 일정이나 시간과 같은 서로의 약속, 가끔의 회식과 친목 도모, 회원 간의 소통과 관계 맺음, 임원진들의 축구단 체계 구축 등 어떤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이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규칙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시급한 일은 훈련에 필요한 여러 가지 역할 나누기였다. 항상 저녁때 운동을 하기 때문에 축구장 조명을 켜야 하고, 팀을 나눠서 경기한 후 땀에 젖은 조끼를 세탁해와야 하고, 20개 이상의 공과 훈련 도구들을 챙겨야 하고, 필요한 물품의 공구도 진행하고, 매 훈련마다 출석체크도 하는 등 훈련 한 번에도 여러 가지 역할이 필요했다.


모든 회원들을 3팀으로 나누어 필요한 역할을 적절하게 나누고 그 역할을 한 달씩 맡을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은 거의 모든 역할을 란희언니가 도맡아서 해오셨는데 공 가방 챙기기(초기에는 공주머니를 매번 가져갔다가 가져와야 하는 엄청 고된 일이었다. 공을 보관할 곳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조명 켜고 끄기 등 훈련할 때 제일 중요한 역할들이었다. 제가 하겠다고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그 당시에는 그럴 생각도 하지 못한 게 아직도 죄송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챙기셨다. 출석률도 탑을 달릴 정도로 축구에 진심인 란희언니도 이런 동호회는 처음이었다. 운동을 좋아하긴 하지만 동호회에 소속돼서 운동하는 건 처음이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는 란희언니는 우리 ‘젊은이’들을 항상 이쁘게 봐주셨지만 경기장에서는 절대 봐주지 않는 열혈 축구인!


언니와 무지개WFC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언니는 항상 이렇게 이쁘게 말씀하신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축구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 우리 항상 재미있게 축구해요. 무지개 화이팅!!”

경기 때 터트리는 란희언니의 골, 볼에 대한 집념과 공격본능, 젊은이들보다 더 앞장서는 체력과 볼 컨트롤 능력까지 언니를 볼 때마다 놀라움과 경외심을 감출 수 없는 1인으로 나도 언니 나이 때까지 언니처럼 축구하고 싶다고 다시 한번 다짐할 수밖에 없다.



찾아가는 배달강좌


봄이 지나가며 축구단 회원이 급속하게 늘기 시작했다. 5월에만 4명의 회원이 들어온 것. 우리도 이제 곧 11:11 풀코트 경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신입 회원을 맞이했다. 6월부터는 우리의 미니게임들 중에 터진 골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골인데 기념하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그런데 골이라는 게 공격 쪽에서 활약하는 회원들을 위주로 나올 수밖에 없어서 오히려 신경 쓰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구단주님의 ‘굳이 왜 그걸 세고 있어?’라는 말씀을 들은 이후로. 그 후로 급 반성모드, 더 이상 골 기록을 하지 않고 있다. 축구란 나 혼자 잘나서 하는 운동이 아니라 경기를 뛰는 모든 사람이 함께 집중하고 결과를 만들어가야 하는 단체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축구와 동호회 생활을 시작한 나는 아직도 배울 게 너무 많다 이거다.


6월이 되자 우리는 20명이 되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탈퇴한 회원도 있고, 잠시 휴식을 갖는 회원도 있었지만 새로운 회원이 들어오면서 12~18명씩 훈련에 참여하였다. 인원이 유동적이었던 만큼 훈련을 이끌기가 만만치 않았다. 감독님은 항상 담담하게 훈련을 준비하고 훈련을 이끌고 마무리까지 함께 하셨지만 새로운 회원도 계속 들어오고 나부터도 뭔가 정신없이 바빴기에 감독님께는 항상 마음 깊은 감사함과 죄송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양평군 평생학습센터에는 ‘찾아가는 배달강좌’라는 지원 사업이 있는데 각 지역의 학습 모임에 강사비를 지원해 줌으로써 우리 동네에서 모임의 구성원들끼리 스스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감독님께서 자원봉사로 우리의 훈련을 이끌어주실 때부터 배달강좌는 꼭 신청해 보자고 임원진들은 얘기하곤 했는데 드디어 7월, '찾아가는 배달강좌'를 지원받는 학습모임으로 선정되어 정말 적은 금액이지만 감독님의 열정에 적은 강사비로나마 화답할 수 있었다.


강사비를 지원받는 것뿐만 아니라 좋은 점은 또 있었다. 강의 계획에 따라 강의를 진행했다는 것을 증빙해야 했다는 점과 회원들의 출석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배달강좌의 시작 전 감독님은 총 12회 차의 강의 계획서를 구성했고, 우리는 매번 강의 때마다 열심히 훈련 사진과 단체 사진, 훈련일지를 남겼다. 또 12회의 수업 중 2회 이상 결석하는 학습자가 있게 되면 다음번 학습 모임 선정 시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최대한 출석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자료들이 위로 올라가 버리는 단톡방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처음부터 존재했던 ‘밴드’의 활용이 높아지기 시작했다는 점은 지금까지도 매우 감사한 일이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 기억이 맞나 체크가 필요한데 밴드는 사진과 영상 자료의 저장 창고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달강좌를 통해 우리의 훈련이 탄력을 받아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훈련하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두고 되도록이면 지각과 결석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각자 기울이게 되었고, 틈틈이 남긴 단체사진 외에도 훈련 사진과 영상, 감독님의 훈련 프로그램을 영상으로 남겨두고 있다. 이러한 노력과 기록들로 무지개는 오늘도 성장하고 있다.

우리 참 열심히 모이고 열심히 배웠다



여성축구 동호회 운영의 모든 것


1. 단체의 구성과 운영

여성 축구단을 시작하고 보니 아주 잘 꾸려가야 하는 단체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임원진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문의가 있기도 하고, 나 조차도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단체의 모습을 갖추기는 쉽지 않지만 하나하나씩 우리 축구단의 색깔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1) 정관

단체 운영의 기본이 되는 게 정관이다. 정관에는 축구단의 목적, 회원의 권리와 의무, 임원진의 구성과 운영, 총회 등의 회의, 상벌조항, 회계 및 물품 관리, 경조사, 기타 사항 등 단체를 운영함에 있어서 꼭 필요한 내용이 들어있다. 단체 운영의 기본 중의 기본으로 추후 다양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동호회의 특성상 최대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관을 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관은 임원진 회의를 통해 초안을 작성하고 총회에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확정한 후 회원에게 공표한다.


2) 총회

회원들이 매주 2회씩 모여 훈련하지만 정기적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지는 않았었다. 1년에 1회 총회를 개최하고 정관을 통해 월례회의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2023년 12월 무지개WFC의 첫 정기총회는 개회 선언, 성원 보고, 국민의례, 회장 인사말, 회계 결산 보고, 총회 안건 의결, 차기 연도 운영 계획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총회 안건은 정관 심의, 재정 및 의견 수렴, 임원 선출, 차기 연도 운영에 관한 건, 기타 건의 사항으로 사전에 회원들에게 공지하였다. 이번 총회가 첫 회이기 때문에 총회에서 선출하기 전의 임원진은 임시 임원진으로 하고 총회를 거쳐 초대 임원진이 구성되었다.

무지개WFC 첫 정기 총회

2. 회원 관리

5,000여 명의 작은 지역 사회인 우리 동네에서 무려 25명의 여성들이 축구를 하기 위해 모였다니. 정말 소중한 한 명 한 명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얼떨결에 거의 초창기 멤버가 되어 회원님들이 입단하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축구를 그만두시는 것도 봐오게 되었는데, 새로 들어오실 때는 그렇게 좋고 반가울 수가 없는 반면 축구를 그만두는 회원님을 볼 때면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오는 것도 사실이다.


일상의 삶과 축구 간에 경계를 두면서도 회원 간의 친목 도모와 개인별 기량의 향상으로 축구 안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을 통해 즐거운 동호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생일을 챙기고(거창하게는 아닐지라도) 좋은 건수가 있는 날 함께 모여 술 한잔 기울이고 즐거운 축구대결 같은 깜짝 이벤트를 통해 흥미를 유발하고 신입 회원이 들어오면 말 한마디라도 더 걸려고 노력하는 등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회원님들과의 인연을 오래 이어가고 싶다. (그리고 내 축구 실력이 많이 늘어서 신입 회원들에게 말 한마디와 함께 훈련에 있어서 기초적인 부분을 알려줄 수 있는 그런 축구 n년차 실력을 가지고 싶다.)


3. 역할 분담

강사님을 모시고 배우고 돌아가고 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배우고 성장하고 싶은 스스로의 욕구로 인해 모이는 동호회이기 때문에 많은 역할을 스스로 맡아야 한다. 우리는 주로 저녁때 운동하기 때문에 해가 지고 나면 운동장 조명을 켜야 하고 축구공을 옮겨야 하고 출석 관리나 훈련 일지 쓰기, 사진과 동영상 촬영, 공동구매, 훈련 후 쓰레기 정리까지 해야 할 역할이 정말 많다. 출석률이 좋은 회원들과 그렇지 않은 회원들을 적절히 나누어 너무 한 사람만 역할을 떠맡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우리 동호회를 위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동기부여도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기대도 하게 된다. 우리도 3개 조로 나누어 역할 분담을 하게 된 이후 훈련이 더욱 원활하고 유기적으로 운영되어 가고 있다.


4. 제일 중요한 것

사람이 한 두 명이 모이는 것도 아니고 20명이 넘는 인원이 하나의 동호회에 모였다. 서로 생각이 다를 것은 물론이고 셀 수 없는 말들 사이에 오해가 생길 여지도 많은 이곳.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과 우리 축구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매주 2회씩의 훈련 외에도 번개 축구나 나들이 등 특별한 이벤트도 포함한다면 주 3,4회를 같은 목적으로 만나게 될 수 있다. 수많은 말들과 수많은 행동들이 우리의 시간을 채워갈 텐데 그 안에서 때로는 서운하고 때로는 미안하고 때로는 야속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대방을 이해해보려 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관계를 소중하게 지키려고 함께 노력해야겠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어느 정도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축구단과 서로 간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함께 이겨내 정말 멋진 여성축구 동호회를 꾸려나가고 싶다.


다음 편 예고

무지개가 떴다 10. 축구의 매력을 느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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