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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Feb 06. 2024

무지개가 떴다 8

회원 모집 두렵지 않아


회원 모집 두렵지 않아


주장을 거쳐 지금은 감독이 된 은혜는 나와 같이 거의 초창기 멤버였기 때문에 회원 모집에 대해 같은 열정을 품고 있었다. 나와 은혜는 마을 활동뿐만 아니라 각자 아이들의 초등학교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만나는 사람이 많은 편이긴 했다. 특히 3월에는 각 학교에서 열리는 학부모총회를 비롯한 여러 가지 행사로 학부모님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조금 더 생긴다.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회원 모집 전단지를 만들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업로드는 물론이고 ‘찌라시’처럼 출력해서 만나는 엄마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던 것.

우리의 소중한 '전단지'

그렇게 은혜는 (그때는 몰랐지만) 우리 팀의 귀중한 골키퍼 자원이 된 산하 영입했다. 축구를 하다 보니 포지션에 대한 고민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주 2회의 훈련 때마다 미니 게임을 하는데 아이들과 섞어서 해도 우리끼리 해도 항상 고민이 되었던 것은 누가 골키퍼를 하냐는 것이었다. 골키퍼는 자고로 공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공이 오는 것에 대한 반사신경도 갖춰야 하는데 나는 일단 공이 나에게 날아오는 게 무섭고 반사신경도 느린 편이라 너무 어려웠다. 미니 게임을 할 때 항상 ‘누가 골키퍼 볼까?’를 비롯해 공격이나 미드필더, 수비 등 포지션 정하기를 안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아직 자기만의 포지션을 갖기에는 축구 실력이 워낙 미천하였기 때문이다. 허벅지가 올라와서 혹은 발목이나 무릎이 아파서 뛰기 어려운 회원이 골키퍼를 맡기도 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낳기도 했다. 왜인지는 당연하다. 골키퍼 멀뚱하니 서있다가 공이 오면 대충 쳐내고 차내고 그런 포지션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움직임 때문에 아픈 곳에 오히려 더 무리가 갈 수도 있다는 걸 잘 몰랐다.


지금까지도 우리 팀 단연 최고의 골키퍼는 바로 택순언니이다. 수년간의 배드민턴으로 단련된 동체시력과 체력, 날아오는 공을 무서워하지 않는 담대함, 일단 하프라인 넘어까지 공을 보낼 수 있는 킥력까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우리의 골키퍼 자원. 문제는 우리가 작년 가을 두 팀으로 나뉘어 경기를 나갈 때였다. 골키퍼가 두 팀에 소속될 수는 없기 때문인데 택순언니가 들어간 팀은 골키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택순언니 없는 팀은? 그때부터 막막한 것이다.


택순언니도 언니대로 고민이 있었는데 사실 골키퍼는 공이 올 때 바짝 집중하고 필드를 뛸 수 없는 운명인지라 운동이 되지가 않는다는 것에 대해 가끔 말씀하셨다.(우리는 대안이 없어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긴 했다. 이 부분에 대해 감독님은 골키퍼가 경기에 집중하며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던 중 구단주님께서 산하를 점찍으셨다는 이야기를 어느 날 회장님께서 전해주셨다. 그냥 되게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서. “구단주님은 산하가 골키퍼 하면 잘할 것 같다고 하시던데?”라고. 그동안 훈련할 때나 경기할 때나 서로의 스타일을 보아온 게 있던 터라 다들 완전 동의했다. 무지개에서 ‘기린’이라 불리는 3인방 중 가장 큰 키와 다년간 여러 종목의 운동으로 단련된 선수 피지컬, 공을 무서워하지 않는 담대함마저 가진 그녀는 다음 훈련 때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너가 해야지’라고 하던데.” 이 말속에서 골키퍼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 같은 마음을 느꼈다. 하하 드디어 골키퍼 걱정 끝이다!


여하튼 나와 은혜는 둘 다 내향형 인간인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각자의 생활 반경 속에서 ‘축구 같이 하실래요?’를 외치고 다녔고, 그렇게 한 명 두 명 들어오기 시작한 회원님들과 회원님들의 다단계 정신으로 문어발식 회원 확장을 하게 되어 오늘의 25명 회원에 이르게 된 것이다.

회원모집 현수막 맞춤 기념 단체 사진

두 번째 겨울을 지나고 있는 2024년 1월에도 무지개의 회원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작년 너무 추웠던 첫 번째 겨울과 비교해 보면 1년 만에 큰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춥다고 눈 온다고 훈련을 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비결은 바로 실내연습장이다. 우리 동네 스포츠 인프라는 첫 편에서 이미 언급했던 바와 같이 양평군 관내에서도 손안에 꼽힐 정도로 탄탄하게 갖춰져 있는데 얼마 전 비와 바람과 눈보라를 막을 수 있는 실내 연습장까지 조성되었다.


물론 메인 사용팀은 따로 있다. 중학생 야구로 유명한 야구부 학생들의 실내연습장이었는데 지나다니며 슬쩍슬쩍 내부를 보니 이게 딱 우리가 겨울에 훈련할 수 있을만하겠는 거다. 작년엔 못 했지만 올 해에는 기필코 겨울에도 훈련해 보자며 여름부터 다 같이 의기투합하여 겨울 훈련을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임원진을 비롯해 회원님들이 지역 내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여러 관계자분들을 만나며 사부작 노력하였고, 끝내 겨울 동안 우리가 훈련하는 날, 연습장의 사용 승낙을 받아낸 것이다.(이 과정에서 고생 많이 해주신 면장님과 중학교 교장선생님, 큰 힘 실어주신 마을 이장님, 큰 결단을 내려주신 야구부 감독님께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요~!)


그래서 우리는 결국 눈을 치우지 않아도 얼음에 미끄러지지 않아도 겨울 축구를 할 수 있게 되어 여전히 꾸준하게 열혈 축구 중이다. 꾸준히 축구를 하고 있기에 회원 모집에도 잠시 멈춤이 없다.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도 한 번 보러 오라고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축구를 하며 생긴 여성들끼리의 끈끈한 동지애가 밖에서도 보이는지 요즘도 입단 문의가 오는데 항상 그래왔듯 '구경 한 번 와요. 수, 금 저녁 7시에 시작이고 그냥 한 번 보러 오세요. 너무 재밌다니깐요.' 멘트를 날린다.

2024년 1월 현재, 실내연습장에서 날씨 걱정 없이 쉬지 않고 꾸준히 훈련합니다.



2023년 첫 연습 경기의 쓰디쓴 패배


감독님과 훈련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독님께서 단톡방에 공지를 올리셨다. 4월 28일 양서면 여성축구팀과 연습 경기를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지 이후 우리의 대화 내용은? 첫 번째, 정강이 보호대 공구하자. 두 번째, 우리의 상징색인 노란색 스포츠 머리띠 공구하자. 우리는 정강이 보호대조차 없는 회원들이 많았던 초보 중 초보 축구 동호인이었다. 여하튼 감독님의 공지 중 준비물은 유니폼, 축구 양말, 정강이 보호대, 풋살화 네 가지였는데 이번 기회에 정강이 보호대를 비롯한 여러 용품들을 같이 공구하며 몇 안 되는 축구 필수품을 갖추어나가는 우리였다.(축구의 또 다른 매력, 시작할 때부터 많은 준비물들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문턱 낮은 스포츠라는 것이다!!)


연습 경기가 잡히고 두 번의 훈련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긴장했고 감독님은 뭔지 모를 속성 수업으로 우리의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경기 준비!

경기 때에는 1:0으로 졌다. 경기에 진 것도 아쉽긴 했지만 나 스스로 정말 아쉬웠던 점은 많은 시간을 선수로 뛰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내 기량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 당연했겠지만 내심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이번 연습 경기는 나에겐 너무 쓰라렸다. 그동안 배워온 여러 가지 기술들을 경기에서 사용해 보려면 일단 출전을 해야 할 것인데 경기장 밖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할 수밖에 없었으니. 나는 그날 결심했다. 무지개의 에이스가 되겠다고. 


아. 그날의 영상이 보고 싶다. 우리의 첫 연습 경기 영상은 어디로 갔을까? 그때그때의 사진이나 영상은 훗날 귀중한 자료로 남게 된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는 단톡방도 귀중한 자료다. 이 글을 쓰며 다시 뒤져본 카톡방에서는 자기 전까지 계속 영상을 보며 열받았다는 수정이의 톡이 있는데 대체 어디에 영상이 있는 건지. 우리의 모든 자료가 들어있는 밴드를 뒤지고 또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다. 엉엉. 아 보고 싶어.


(이 글을 쓴 이후 수정이에게 물어봤다. 그때 봤다는 영상이 어디 있는지 아냐고. 밴드에 단톡방에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고. 그날의 경기 영상은 채코치님의 이전 핸드폰에 들어있었고 곧 없어질 운명이었다. 다행히도 극적으로 영상과 사진들을 구출해 내어 밴드에 잘 올려두었다. 이렇게 우리의 기록이 하나 추가되었다.)

우리의 첫 친선 경기, 우리의 첫 화이팅!


다음 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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