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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Feb 04. 2024

무지개가 떴다 7

우리 감독님

우리 감독님


창단식에서의 첫 대면 이후 무지개WFC 감독님이 된 우리 감독님과 3월 15일 첫 훈련을 했다. 감독님은 무려 27세. 무지개 회원들 중 막내보다도 몇 살이나 어린(젊은?) 감독님은 저녁 2시간 이상의 시간을 우리와의 훈련에 써주셨다. 그것도 자원봉사로. 구단주님과 회장님께서는 다 그렇게 얘기가 돼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셨지만 매주 1회,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이동시간까지 더하면 적어도 3시간 이상을 내어주셨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무슨 생각이셨을지 어떤 결심이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주 훈련을 나오셨고, 훈련을 하면서 지켜야 할 루틴도 만들어주셨고, 그날그날의 프로그램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익힐 수 있도록 알려주셨고, 경기가 있을 때는 경기장에서 목청껏 지도해 주셨다. (무슨 생각이셨을지 어떤 마음이었을지 아래 감독님과의 인터뷰에서 자세하게, 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3월 15일 첫 훈련을 마치고 감독님은 단톡방에 이렇게 당부했다.

감독님과의 첫 훈련 기념 단체사진

“고생 많으셨습니다!! 축구가 업이 아니시기 때문에 첫째도 부상 조심 둘째도 부상 조심입니다^^ 재미가 주가 되기보다는 진지함 속에서 축구로 인한 재미를 찾으신다면 집중도 돼서 부상 위험이 낮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 새롭게 하는 거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복기하시면서 다음번에 하실 때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야 하루에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어서 목표에 한발 더 빨리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다음 운동 때 뵙겠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감독님의 마음과 의지와 목표가 다 들어있는 메시지였다. 부상을 조심하되 ‘오늘 하루 공 재밌게 찼다’는 것 보다 훈련에 진지하게 임함으로써 축구 자체의 재미를 느끼는 것,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이번 주 배운 내용을 복기해서 까먹지 말고 다음 주에 다시 만나길 바라는 것, 열심히 성장해서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자는 말씀이었다. 그때는 카톡을 읽으면서도 무슨 뜻이 담겨있는지 몰랐다는 걸 이제야 느낀다. 그냥 첫 훈련이 끝나서 인사말씀 하시는 줄 알았다. 감독님은 진지하셨는데.


그 후로도 아마 인내의 시간을 보내지 않으셨을까 싶다. 뭐를 알려주면 첫 번째 일단 잘 못 알아듣고, 두 번째 이해한 대로 몸이 따라주지를 않고, 세 번째 다음 주에 다시 만나면 홀딱 까먹고 백지상태가 되어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뭔가 열심히 배우려고는 했을 테지만 지금같이 축구에 대해 불타오르는 마음가짐은 아직 없었던 터라 배웠던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는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축구를 뭔가 체계적으로 배운다는 것 자체가 좋았고, 배우면서 성장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조금 더 잘해지는 것 같은 기분(!)도 느껴져서 그저 재미있었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열정의 우리 감독님

박태환감독님은 2023년 3월 15일 무지개와의 첫 훈련 이후로 새로운 형태의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해온 감독님은 뚝딱거리는 몸으로 열정을 불태우는 다 큰 어른들에게 축구를 어떻게 알려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이해를 못 하더라도 몸으로는 되는데, 어른들은 이해를 해도 몸으로 안 되는 유형이었기 때문. '누구누구 어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했었으나 점점 어머니가 아닌 여성들이 입단하며 뭐라 불러야 할지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된 감독님은 오늘도 지개 안에서 함께 성장하는 중. 감독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여성축구단의 감독을 제안받았을 때 어떠셨나요?

A. 축구 선수 생활을 하다 은퇴를 하고 개군에서 축구 교실을 운영하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처음 제안을 받고 3주 이상 고민을 했는데 단기간에 축구 교실을 준비하다 보니 여성 축구단과 동시에 해낼 여력이 있을까 싶어서였어요. 그런데 '골 때리는 그녀들'을 봤을 때 축구를 배운 적 없는 여성들이 축구를 시작하 감독에게 배운 그대로, 감독의 말대로 축구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저런 상황에서 이렇게 가르칠 것 같은데.'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엔 그런 욕심이 들었기 때문에 하겠다고 했죠.


Q. 감독을 수락하고 훈련을 시작해 보니 어떠셨나요?

A. 훈련을 몇 번 하면서 'TV에서 보던 여성축구랑은 많이 다르구나.'생각이 들었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져서 처음에는 매너리즘이 좀 왔어요. 훈련 분위기 자체도 뭔가를 배운다는 것보다는 같이 즐기기만 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고 훈련 프로그램을 하고 다음 주에 다시 만나면 다시 또 어려워하시고 했기 때문에 고민이 많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가능성이 안 보이는 것 같았고 이제라도 무를까, 고민을 되게 많이 했었죠.


Q. 무지개를 시작한 초반, 고민과 어려움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어떻게 지금까지 오게 되었나요?

A. 어느 날 구단주님께서 그러셨어요. "어머님들은 기본기가 없고 기초 훈련도 안 되어있는 상태인데 박감독은 중고등학생이 할만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 이 말을 듣고 난 후 머리가 띵했어요. 저는 '이 정도면 이해하고 할 만한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서 답답함을 느꼈던 거였거든요. 그 이후로 일상생활 속에서도 그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뭐부터 가르쳐야 되지, 뭐부터 가르쳐야 되지. 생각이 좀 많았죠. 처음 그 얘기를 듣고 나서 그다음 주 좀 쉬운 걸 해봤어요. 쉽고 재미를 느낄만한 것들을 위주로 하다가 회원분들이 모두 함께하는 경기를 하려면 패스가 먼저 되야겠구나 싶어서 패스의 처음부터 훈련하기 시작했죠.


Q.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지금 무지개 회원들이 훈련할 때 어떤 느낌이신가요?

A. 어머님들이 처음에는 어땠는지 어떻게 했는지 기억은 정확하게 안 나지만 지금 훈련하는 모습들 보면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게 보여서 막 뿌듯해요. 최근 들어오신 회원님들 보면 그때부터 훈련했던 어머님들도 그랬었지라는 생각도 들고 반 정도는 완성시켜 놓은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늘었다고 생각합니다.


Q. 무지개 감독을 맡고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있을까요?

A. 훈련을 오면 각자 해내야 할 훈련 루틴을 만들어 드린 것입니다. 어머님들께서 처음에는 훈련 시간인 7시에 맞춰서 오시는 분이 몇 분 안 계시기도 했지만 시간에 맞춰서 오셨더라도 벤치에 앉아 담소를 많이 나누시더라고요. 아이들처럼 7시 땡 하고 바로 시작할 수 없었던 것이 처음에는 이해가 좀 안 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몇 번의 기회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머님들께서도 일상생활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운동장에 도착해서는 각자 러닝하고 스트레칭하고 패스 연습까지 하는 규칙을 만들게 된 거죠. 단체에 규칙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것도 재밌다고 생각해요.


Q. 축구를 지도할 때 감독님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A.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자.'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배우면서 실수할 때 큰 소리도 많이 듣고 맞기도 해서 실수하는 걸 무서워하게 되고 싫어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 운동했었거든요. 어머님들이 실수 안 해도 될 데에서 실수하시면 뭐라고 할 때도 있긴 하지만 이거 실수할 수도 있고 다시 해보면 된다라는 얘기를 할 때가 많아요. 지도자를 하게 되면서 처음부터 갖고 있던 제 신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처음부터 자원봉사로 무지개를 지도하고 계신데.. 괜찮으신 건가요?

A. 처음에 저는 그냥 자원봉사라고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나갔었어요. 그냥 와서 어머니 친구분들 가르쳐드린다고 생각하고 훈련하고 끝나면 가고. 그냥 그랬었어요. 사실 2시간 훈련에 왕복 이동시간까지 있지만 2시간 이상의 시간을 쓰고 있다고 느껴지지가 않기도 했어요. 아직 축구를 많이 좋아하기도 하고요. 기회적인 부분에서 생각해 보면 남자들은 이렇게 저렇게 많이들 만나서 조축도 하고 다양하게 축구를 하는데 여성분들 생각해 보면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 거죠. 여성분들이 이렇게 모여서 축구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돈을 얼마라도 받고 싶지가 않았어요. 받기가 싫더라고요. 또 하다 보니 이기면 안 되는 경기인데 어떻게 이긴 거지 싶었을 정도로 뜻밖의 즐거움도 많았고, 새로운 일들이 생기는 게 재밌기도 해서 양평에 있는 한은 무지개를 계속하지 않을까요?


Q. 무지개WFC를 추천하고 싶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사실 무지개에서 같이 축구하고 싶다고 연락이 가끔 오긴 하는데요. '다른 여성 축구단은 잘 몰라도 무지개는 항상 분위기가 좋고 열심히 하시고 열정 하나는 진짜 최고야.'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너도 와서 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열정일 거야.'라는 얘기도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얘기한다면 '우리 준우승하고 3위도 했는데 4강전도 우리끼리 했어.' 이런 재밌었던 이야기로 무지개를 추천하고 싶어요.


Q. 앞으로 무지개와 어떤 축구를 하고 싶으신가요?

A. 우리는 오직 즐기기 위해서 모인 동호회가 아니기 때문에 축구라는 주제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축구는 결국 이겨야 재미있으니까 이기는 축구를 함께 하고 싶어요. 축구도 기승전결이 있는 스포츠인데 첫째, 축구는 이겨야 하는 스포츠이고 둘째, 이기기 위해서 우리는 평소에 기본기와 패스 등을 단계적으로 훈련하고 그다음에 전술 훈련까지 알려드리는 과정을 거치며 결국에는 이기고 싶어요. 그래야 재미있으니까. 그래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훈련하고 열정을 가미시키면 더 빨리 늘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제가 처음 왔을 때 말씀드렸던 목표에 더 빨리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최우선은 다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양평에 있는 한 무지개를 계속하지 않을까 하는 감독님의 말에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활짝 열렸다. 첫 정기 총회에서 앞으로도 감독님과 함께 훈련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해 보자는 안건이 있었을 정도로 감독님과의 훈련이 소중한 우리였기 때문이다. 감독님과 함께 훈련해 온 시간 동안 많은 성장을 해왔기에 앞으로 더욱 발전할 우리가 기대되기도 하고. 게다가 요즘은 우리 축구단에 회원으로 입단하고 싶으신가 싶을 정도로 무지개에 스며든 것 같은 감독님의 모습에 입단 신청서를 슬쩍 드려볼까? 생각도 해본다. 하하. 열심히 할 테니 우리가 함께 달성해 낼 그 목표를 향하여 앞으로도 함께해 주세요, 감독님!


다음 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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