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었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
추운 겨울 동안 우리는 운동을 푹 쉬었다. 축구하는 날 야외 축구 대신 헬스장에서 체력 단련이라도 같이 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 공감한 회원들과 1월부터 헬스장에 나가보기로 했다. 목표는 1시간 운동! 한두 번 나갔을까……. 같이 축구하는 것보다는 재미가 없어서인지 나 조차도 약속한 시간에 나가기가 망설여졌다.
간간이 안부를 묻는 여러 번의 시간과 헬스장에 가네 못가네의 카톡들 속에 우리는 연말 송년회와 연초 신년회를 하며 친목을 도모했다. 맞아! 우리는 축구동호회였지! 축구를 열심히 한 것도 그렇지만 우리는 동호회였어. 이 기회에 친목을 도모합시다!! 보다 편안한 친목 도모와 술자리를 위해 회원님들의 집에서 놀았다. 송년회와 신년회에 선뜻 집을 오픈해 주셨던 미자언니와 효운언니께 무한 감사를. 이제는 그때보다 회원이 많이 늘어서 집 오픈이 쉽지 않다. 그럴 땐 어디에서? 우리의 사랑방 치킨집에서. 하하. 함께 즐기는 왁자지껄 우리들이 참 좋다.
2월 중순이 되자 날이 풀리고 있었다. 모두가 바라고 있었던 듯 날이 따뜻해지자 이제는 운동을 하냐는 카톡들을 보내기 시작했고, 혼자 나가기는 어려워도 같이 나가면 그래도 멱살 잡혀 끌려서라도 갈 수 있는 법이니 운동을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즈음 회장님께서 양평여성축구단에서 주최하는 안전기원제에 초대받았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오. 안전기원제라니. 마을 활동을 하며 여러 종류의 행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지만 굉장히 생소한 말이었다. 아무리 아마추어라지만 축구선수단인 만큼 1년 동안 축구를 하며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길 기원한다는 행사라니. 겨울잠을 자던 우리가 슬슬 기지개를 켜려고 꼼지락대던 때라 참가인원을 모집하는 것도 오랜만에 만나서 같이 축구를 하는 것도 왠지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그 무렵 무지개 임원진은 우리 축구단의 공식 창단식도 준비하고 있었다. 알음알음 모여 운동도 하고 훈련도 했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비공식적인 축구동호회였다. 회원들도 이 정도 모였으면 됐다. 창단식을 하며 우리도 공식적인 절차를 밟은 어엿한 여성축구단이 되어야겠다며 추진했다. 식순을 정하고 초대할 내빈 명단을 구성하고 창단을 기념하는 공식 소개 영상을 만들고 축하 케이크와 음식도 준비하고, 축하 공연 댄스팀도 섭외했다. 창단식에서 회원을 한 명 한 명 소개하기보다는 소개 영상을 상영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우리는 각자가 모두 주연이었기 때문에 풀메이크업으로 제일 예쁘게 제일 날씨 좋은 날 우리가 사랑하는 축구장에서 즐겁게 촬영했다. 공식 소개 영상은 은혜가 촬영과 편집에 영혼을 갈아 넣어 엄청난 고퀄리티 영상을 완성해 창단식에서 상영했고 우리 축구단 유튜브 채널에도 올려두었다. 쫌 멋졌다. 후후후.
게다가 더 뜻밖의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강상에서의 축구는 긴 겨울 동안 모두 멈춤이었기 때문에 회원들은 축구에 대해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구단주님과 회장님께서 감독을 새로 모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우리 축구단만의 감독님이?? 어떤 분이 오실지 어떻게 우리에게 축구를 알려주실지 상상도 안되고 그랬는데 그래도 엄청 기대했다. 곁다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오로지 우리를 위한 감독님이라니!! 회장님께서 기쁜 소식을 전해주시기만을 기다렸던 시간이었다.
봄, 안전기원제와 창단식
3월이다. 공식적으로 겨울은 끝이 났다. 우리는 다시 축구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스텝은 안전기원제. 양평여성축구단의 공식 초청으로 우리 축구단뿐만 아니라 양평에서 축구하고 있는 여러 여성축구단이 참여한 행사였다. 이름마저 생소한 행사에 축구한다고 나름 유니폼도 착용하고 갔건만 긴긴 겨울을 웅크리다가 오랜만에 뛰어서 그런지 조금 뛰었는데도 목에서 정말 피맛이 났다.
그래도 나름 축구인이라 최선을 다해 뛰었고 큰 실수도 하지 않았지만 크게 잘하지도 않은 채 안전기원제 기념 친선경기를 마쳤다. 이때 우리는 축구단끼리 대결하지 않고 섞어서 찼는데 참 좋았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을 기원하며 올 한 해 즐거운 축구를 다짐하는 첫 행사부터 진다면 벌써 재미가 없는데? 져도 괜찮고 이기면 기분 좋은 그런 경기를 오랜만에 뛰었다.
그날 양평 곳곳에서 많은 사진 기록을 남기는 최종민대표님께서 촬영을 나오셨던 터라 나와 우리 축구단 회원님들 사진 몇 장을 전해주셨는데, 이럴 수가. 정말 충격 그 자체의 사진이었다. 지금은 축구장에서 경기한다고 하면 절대 안경을 안 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단 안경을 쓰고 있었다. 달리기 하는 내 다리는 너무나 뻣뻣했고 허리는 꼿꼿했다. 공을 처음 차보는 것 같은 실루엣으로 인상만 팍팍 쓰고 있다. 목에서 피맛이 나도록 열나게 뛰었건만.. 사진에 찍힌 나의 모습은 그저 웃길 뿐.. 그래 이제 다시 몸을 좀 만들어 보자!!
무지개WFC의 창단식은 3월 10일이었다. 창단식을 하기 딱 좋았던 날. 원래 우리가 훈련하던 날짜와 시간이라 모이는 것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내빈으로 초청할 분들과 창단식 현수막, 축하 케이크, 식순, 음식들, 같이 볼 자료들, 축하공연 등을 준비하느라 다들 눈코뜰 새 없이 바빴다. 그 와중에 케이크는 맞춰놓고 찾으러 가는 걸 깜빡해서 회원님 남편분께 바쁘게 양평읍 케이크 가게로 케이크 픽업을 부탁드리기까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던 시간이었다.
창단식 때 참석한 무지개 회원은 15명. 지난여름 7명의 어른과 6명의 아이들로 충분한 즐거움을 느꼈던 때와 비교하면 2배 이상 그새 정말 많이 늘었다. 워낙 서로에 대해 촘촘하게 알고 있는 농촌 지역이라 어려움을 느낄 때도 많지만 그렇기 때문에 같이 축구하고 싶은 마음을 알 수 있는 것도 많다고 생각했다. 각자가 느끼는 일상 속의 어려움을 같이 하는 축구를 통해 극복하고 서로 어울리며 즐겁게 살아보자고 제안하기가 딱 좋았다. 평소 서로의 욕구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던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서로의 연결고리로 이렇게 만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또 그런 점이 축구를 그만두게 되거나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서로의 관계가 어려워지고 왠지 서먹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조심스럽고 고민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창단식이 진행되며 내빈들께서 응원의 한마디를 하던 때 그 자리에 참석하셨던 양평군축구협회 회장님께서 마이크를 잡으며 급작스럽게 ‘무지개WFC감독님’을 소개했다. 사실 창단식이 시작될 때부터 저기 있는 저 젊은 남자는 누구인가. 감독님인가. 감독을 맡기로 한 건가.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눈짓으로 입모양으로 맞냐며 맞냐며 반신반의하면서도 기대하고 있었다. 구단주님도 회장님도 얘기가 잘 되고 있다고, 창단식에도 오라고 연락했다고 하셔서 맞나 하고 있었는데 양평축구협회 회장님께서 자락을 아주 잘 깔아주셨던 것 같다. 그저 감사할 뿐. 왜냐면 창단식에서 감독이라며 소개했는데 어떻게 무를 것이여? 빼박이다 빼박. 캬캬캬.(그런 줄 알았는데 감독님은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참석한 거라고 감독님과의 인터뷰 때 알려주셨다.)
창단식의 단체사진에서 감독님은 우리와 어느 정도의 어색한 거리를 두고 있다. 쪼로록 서있는 우리 무리의 옆으로 한 발자국 정도의 거리에 감독님이 서있다. 당연했을 거지만 요즘의 단체사진을 보면 그 거리감이 많이 가까워졌다는 걸 느껴 매우 뿌듯하다. 우리가 축구에 매우 진심이라는 걸 감독님도 아셨기 때문일 테니까.
다음 편 예고
무지개가 떴다 7. 우리 감독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