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처음 시작하며 운동도 참 오랜만에 시작했던 나는 당연하게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평소의 내 일상에 운동이란 없었기에 축구를 통해 시도하는 모든 동작은 내 몸에 너무 생소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달리면 앞쪽 허벅지가 바로 올라왔다. 슛이라도 한답시고 다리에 힘을 빡 주면 바로 앞벅지가 빡 올라왔다. 코디네이션이라고 부르던 스텝 훈련에서는 왜인지 몰라도 발목이 꺾이기도 했고, 그렇게 격렬하지도 않았을 텐데 작은 게임을 하다 넘어지면 서럽게시리 손목까지 아팠다.
허벅지가 올라오면 근육통 크림을 바르며 마사지를 했고, 발목이 삐끗했을 땐 미루지 않고 바로 다음 날 정형외과나 한의원으로 향했다. 내 몸의 아픔에 이렇게까지 민감했을 때가 지금껏 있었을까? 이제 막 재미를 붙여가던 시절 혹시라도 몸이 아파서 운동을 못 할까 봐 미리 보살피고 미리 마사지하는 일들은 어찌 보면 지금까지 당연히 내게 있었던 몸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언젠가 누군가가 그랬다. 내 몸은 항상 나에게 당연하게 아무렇지 않게 존재하지만 감기라도 걸렸다 치면, 하다못해 손톱 옆에 작은 거스러미라도 생겼다 치면 내 몸이 여기 있다고 내 몸은 여기 계속 있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 존재를 깨닫게 된다고. 맞는 말이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넘겼던 운동 안 하던 그 시절과는 다르게 이제는 너무나도 큰 공감이 되는 말이 되었다. 건강한 게 최고라는 말은 진부한 말이지만 건강한 내 몸이 너무 필요해졌기 때문에 때로는 속도를 조절하고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훈련을 소화하고 혹시라도 아플 때면 휴식을 취하며 무리하지 않거나 바로 조치를 취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부상에 대한 염려는 축구를 못 하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크기 때문이었는데 축구를 시작했던 첫가을,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설렁설렁 뛰었다. 전속력으로 물론 달릴 수 있고 공을 더 세게 찰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려고 시도만 했다 하면 앞벅지가 올라올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어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 하루 바짝 하고 몇 번의 훈련을 쉬는 것보다는 내 몸을 최대한 아끼며 훈련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봄이 되고 앞벅지 부상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게 되자 '태희 많이 늘었어!'라는 피드백을 가끔 듣게 되었다. 내 마음은 작년이나 비슷한데 확실히 스포츠인의 몸이 되어가는 건가 싶어 참 행복했고 기뻤다.
첫 친선경기
강상에서의 훈련이 겨울을 맞이하여 잠정 휴강에 들어갔지만 우리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장님께서 친선경기 일정을 알려주셨다. 연예인축구단이 온다고?!! 최수종의 축구단????!! 와.. 축구했더니 이런 일도 다 생기는구나. 당일 참석이 가능했던 9명의 무지개WFC회원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운동장으로 향했다. 9명밖에 되지도 않을뿐더러 실력은 또 어떠했으랴. 연예인축구단과 우리 축구단의 매치는 결코 가능한 일은 아니었던지라 우리는 구경과 응원을 하다가 축구단에 섞여 들어가 같이 차기로 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풀코트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오프사이드도 없이 우리를 최전방에 위치시켜 주었다. 누구에게서 어떤 지령(?)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골대 앞에 서 있으라고 했다. 기술은 물론 체력도 없었던 나는 시키는 대로 골대 앞에 서있… 지만은 않고 그래도 공의 흐름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정도의 움직임을 선보였다. ‘아니 그런데 내가 그래도 명색이 여성축구단인데 이렇게 골대 앞에 멀뚱히 서서 공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내 자존심 상 그건 안 되겠어.’라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내려갈라치면 “아줌마 올라가! 올라가라고!”라는 비수 같은 아줌마 소리를 내리꽂는 어떤 청년의 외침을 들으며 쭈글거리며 골대 앞으로 가기를 여러 번. 갑자기 나에게 공이 왔다! 골대 왼쪽 앞에 서서 ‘대기’하던 내 앞으로 공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는 골~~~~~~을 넣고 말았던 것이다. 축구를 시작하고 넣은 나의 첫 골은 이렇게 기록되었다. 남정네들 틈바구니에서 골대 앞에 서서 대기하며 아줌마 소리(물론 맞는 말)를 들어가며 오프사이드 따윈 개나 줘버린 변종 축구에서 나의 축구인생 첫 골을 넣었다.
골을 넣고 기쁜 마음에 두 팔 벌려 운동장을 뛰며 기쁨을 만끽했지만 그래도 뿌듯함이나 성취감보다는 사랑하는 축구장에서 아줌마 소리나 들었다는 불쾌감이 아직도 마음 한 켠에는 남았다. 쳇, 지가 젊은 남자면 다야? 지도 아저씨면서~ 그래도 좋은 경험 감사했습니다. 꾸벅. 다음 기회에 또 봬요.
최수종님 축구 진짜 잘하더라.
추웠던 우리의 첫겨울
가을을 보내며 주 2회 축구에 익숙해지던 우리는 날씨가 점점 추워짐을 느끼고 있었다. 충분히 몸을 푼다는 게 뭔지도 몰랐기에 몸에서 열기를 내기가 힘들었고, 훈련 시간 내내 뛰어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금세 식어버렸다. 이렇게 추운 날에 이 고생을 하며 축구까지 해야 하나? 절정에 달하는 추위도 아니었는데 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축구경력이 있던 동네 오빠가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우리 동네에 실내풋살장 좀 지어달라고 하려고.’ 힘을 보태달라고까지 말을 했던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나는 코웃음을 치며 무슨 저 넓은 운동장 있는데 저기서 차면 되지 뭔 실내를 또 짓냐. 그럴 땅 있으면 애들 놀게 놀이터나 지어달라고 해라. 등등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던 말들을 또 한 번 쉽게 했던 기억이 났다.
뭐 내가 했던 말이니까 애써 이해해 보자면 당연하기도 하다. 그때는 공을 차 본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운동조차도 하지를 않아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때이니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아쉬울 뿐이다. 왜 우리에게는 실내풋살장이 없는 것인가! 쾌적한 환경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추우나 더우나 축구를 하고 싶다! 추위에 덜덜 떨고 싶지는 않지만 축구는 하고 싶다. 눈 쌓인 운동장에 눈을 치우면서까지는 아니지만 축구는 하고 싶다. 비는 맞기 싫지만 축구는 하고 싶다. 이런 마음? 아무튼 이런 마음으로 겨울 동안 잠시의 휴식기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지면서 실내풋살장에 대한 아쉬움으로 괜히 입맛만 쩝쩝 다시던 추운 겨울.
인원이 많다고 어느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대단한 지원을 받을 거라는 기대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는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많은 회원을 보유한 여성축구단으로서 여러 가지 대회에서 꾸준히 성적을 거두면 우리 목소리가 조금은 더 크게 들리지 않을까? 작은 기대와 함께 2023년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