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참 고마운 우리의 조력자들은 바로 가족이다. 우리는 가족들로부터 응원받고 있는 축구인들이었던 것이다. 가족축구단이라는 이름을 고민할 만큼 우리는 항상 아이들과 남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왔다. 강상에서 운동할 때에는 축구장 밖에 있는 의자인지 테이블인지 모를 곳에 사 오거나 싸 온 저녁밥을 대충 얹어두고 앉기도 그렇고 서기도 쫌 그런 상태로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해결했다. 저녁을 후루룩 챙겨 먹고 나면 엄마들의 운동이 시작되기에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운동장의 한쪽에서 공을 차며 놀거나 다른 도구들로 놀거나 훈련에 참여하거나 가끔은 경기도 같이 했다.
거의 항상 축구장에 함께 나왔던 수정이의 남편(현 채코치님)은 우리가 훈련받는 동안 운동장에 나온 아이들을 맡아주었다. 그 공간에 어른이 한 명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결 안심이 된 상태로 훈련에 전념할 수 있었는데 그랬기 때문에 축구를 배운다는 것에 몰입도가 훨씬 높아지지 않았나 싶다. 항상 든든함과 감사함을 느꼈다. 수정이 남편은 그때부터 본인의 축구단 활동보다 무지개에서 더 많은 활약을 보이며 지난 송년회 때 공식적으로 채코치님이 되었다. 채코치님은 우리가 경기할 때 항상 수정이에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로 목소리를 드높이곤 했는데, 그의 눈에는 수정이만 보였다. 우리는 안중에도 없었는지 아니면 아직은 서먹해서 우리한테까지 뭐라고 하기가 좀 그랬는지는 몰라도? 채코치님이 함께 했던 크고 작은 게임들에서 그는 항상 수정이를 향해 사랑의(?) 잔소리를 했고 때로 수정이가 자책골이라도 넣었다 하면 입꼬리가 귀에 걸려 어찌나 갈궈대던지. 채코치님 덕분에 정말 웃기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가끔은 수정이를 '마음이 안 상하나?'싶을 정도로 심하게 놀릴 때도 있는데 강한 정신력 덕분인지 깊은 사랑 덕분인지 쿨한 성격이라 그런지 수정이는 항상 괜찮았다.
아이들은 항상 운동장에서 우리와 함께 해주었다. 때로는 즈이들끼리 어울리고, 때로는 엄마들 훈련하는 데에 와서 기웃거리기도 하고 같이 훈련을 받거나 칭얼거리기도 하면서. 2023년부터는 우리 훈련의 일부분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미니 경기를 포함시켰다. (아이들은 항상 우리와 축구를 하고 싶어 했기에 수요일 훈련 후 미니 게임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끼리 하고 싶어 핑계라도 댈라치면 어찌나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유를 따져 묻던지.) 비록 아이들의 더 많이 뛰고 싶은 마음을 전격 수용할 수 없는 짧은 시간에 작은 규모이지만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우리를 재끼려고 하고 이기려고 노력하고 축구를 같이 즐겼다.(아이들의 발전 속도는 정말 따라잡을 수가 없다. 기량이 확 발전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를 마음껏 재끼는 지금, 아이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엄청 부럽다.)
경기 할 때는 우리나 아이들이나 완전 진심이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아이들은 즈이들끼리 어울리고 때로는 우리를 응원하는 댄스 공연도 해주곤 한다.
사실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엄마가 가니까 같이 가는 거고, 너한테도 좋고, 재미도 있고, 집에 심심하게 있느니 같이 나가서 바람도 쐬고 놀기도 하고 얼마나 좋아? 그런데 2023년 12월, 무지개의 첫 번째 송년회에서 산하가 감사 편지를 낭독할 때 마음이 쿵 하고 울렸다.
“엄마들을 잘 기다려줘서, 응원해 줘서, 같이 축구해 줘서 고마워요.”
무지개 주니어들과 가족분들에게 전하는 이 감사의 말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동안 아주 든든한 지원군들이 뒤에서 단단히 버티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신나고 즐겁고 재미있게 축구를 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언니들
내 인생의 축구 얘기를 하면서 우리 축구단의 언니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축구단은 중학생~60대 이상 모든 여성 대 환영! 을 외치며 열혈 회원 모집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 또한 우리 언니들 덕분이다.
지난여름 축구단에 처음 들어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차고 찍은 사진엔 60대 영옥언니, 50대의 회장님과 란희언니, 미자인니, 택순언니가 있다. 언니들은 나보다 훨씬 먼저 공차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공과 골, 축구에 대한 열망이 30대인 나보다 훨씬 컸다. 체력마저도. 조금만 뛰어도 헥헥거리는 나보다 훨씬 오래 뛰셨고, 공이 본인 쪽으로 올라치면 무조건 슛을 때렸고,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아 60대 영옥언니와 몸싸움을 하다 튕겨나가기까지 했다. 게다가 택순언니의 롱킥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하이레벨이다. 하하.
무지개의 축구 생활이 안정적이게 될 수 있었던 건 언니들의 역할 덕분이다.
운동할 때는 그래도 돼~라며 먼저 마음을 내어주신 언니들 덕분에 지금껏 60대의 우리 엄마뻘임에도 불구하고 ‘언니!’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언니들도 언니 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으시면 좋겠는 바람이다. 언니들 덕분에 나의 축구 인생에 대해서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축구를 시작할 때 살이라도 빼자는 게 목표였던지라 축구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지 않았었는데, 언니들을 보며 나도 60대까지 축구하고 싶어졌다. 그래도 60대는 조금 멀긴 하니까 몇 년쯤 뒤에 “저 축구 n연차예요.”라는 인사와 그에 걸맞은 축구 실력을 선보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또 하나의 꿈은 여성 시니어팀을 꾸려서 60대까지 축구하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양평에는 현재 내가 아는 팀만 6개 여성축구단이 축구를 하고 있다. 그에 비해서 남자축구는? 아마 두 손으로 꼽지 못할 만큼의 각종 연령대별, 지역별 축구팀이 있다. 나도 축구를 하다 보면 금방 40대 후반, 50대가 될 텐데 20대, 30대 젊은이들과 뛰어야 될 텐데 그러면 번번이 벤치로 밀려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가 뛸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벌써 벤치 신세인 나를 걱정한다. 그러다가 남자들의 축구를 보며 깨달았던 것. 나중에 우리 여성 축구단들도 연령별로도 나눠서 뛰어도 재밌겠다! 실력이야 당연히 같을 수야 없겠지만 연령대라도 비슷하다면 얼추 엇비슷한 환경에서 같이 뛸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곧 벤치로 밀려날까 걱정하는 나의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정말 인정한다. 우리 동네 여성 축구인들끼리 즐겁고 재밌게 60대까지 같이 축구할 수 있다면 진짜 좋겠다.
갑자기 나에게 축구를 하자는 제안을 하셨던 회장님은 그 해 초부터 축구단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축구를 할 생각을 하게 되신 걸까? 게다가 내가 지금껏 봐온 초창기 팀 운영의 온갖 어려움들에 당당히 맞서며 지금까지 회원들이 축구만을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23년 무지개의 첫 송년회에서 회장님께 '들장미소녀 캔디 상'을 수여했다. 그녀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정신으로 축구단을 운영하기 위한 각종 현안들을 해결해 왔다. 아래는 무지개WFC를 이끌고 있는 이기술 회장님의 이야기다.
축구는 2021년 4~5명의 인원으로 시작했어요. 현수막도 매달고 지역 축구단 회원의 아내들과 함께 차기도 했고요. 7~8명까지 인원이 늘었었는데 회원이 한 명 들어오면 한 명이 나가고 한 명이 들어오면 한 명이 또 나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꽤 오랜 시간 정체기였던 시간들이 있었죠. 이 때는 운동장을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인원이 적어 사용 신청도 받아주지 않아 다른 축구단과 운동 일자가 겹치기도 하고 조명탑 켜는 것도 어려워 해지기 전까지만 운동하고 헤어지기까지 했으니까요. 당시 면장님이나 이장협의회장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등 정말 많은 애씀이 있었어요. 초창기부터 같이 했던 영옥언니와 란희언니가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주면서 자리 잡기 시작했던 기억이 나요. 란희언니는 가게에 오는 손님들을 비롯해 누구에게나 축구를 제안했고, 태희와 은혜가 들어오고 젊은 층들의 입단이 이어지게 되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젊은 친구들은 아이들을 챙기느라 운동을 하러 나오기가 어렵기도 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운동을 나올 수 있게 했어요. 우리는 아이들과 같이 축구를 하며 함께 성장해 왔답니다.
비가 온 뒤 땅이 굳고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찬란하게 탄생한 무지개WFC는 제가 여성 축구를 시작하면서 눈물겨웠거나 화가 나거나 서글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온갖 감정을 경험하게 했는데요. 그 노력과 애씀이 지금의 무지개WFC가 될 수 있는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을 거라 생각해요. 그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그 조차도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각양각색의 모습 그대로 찬란히 아름답게 무지개답게 함께 축구하며 멋진 무지개WFC를 만들어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