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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Feb 10. 2024

무지개가 떴다 10

축구의 매력을 느껴버렸다

우중 축구의 매력


어느덧 여름이다. 점점 더워지는 것을 저녁마다 몸소 체감하며 여름이 오는구나, 땀을 많이 흘리니까 살이 많이 빠지겠구나 저마다의 기대감 속에 뜨거운 여름이 성큼 다가와있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우리는 열심히 훈련했고 재미있게 경기했지만 어느새 긴긴 장마가 시작되어 자꾸 우리가 훈련하는 수요일과 금요일마다 비가 오는 것이다. 매번 고민이 되었다. 양평에 이사를 해오고 나서 차만 타면 어디든 입구 앞에 주차가 가능하니 우산을 안 들고 다닌다고 쳐도 비를 맞으면서 밖에서 운동을 한다?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그랬기에 감독님이 안 오시는 훈련날은 몇 번 정도 축구를 쉬었다. 감독님이 오시는 날은? 우리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운동장으로.. 폭우가 내려도 축구 경기는 열리는데 많이 오는 것도 아닌 이 정도 비로 훈련을 취소한다는 것은 감독님 사전에는 없는 것이었다.


우중 축구에 도전할 수 있게 한 일등 공신에는 남편도 있었다. “비 올 때 하는 축구가 얼마나 재밌는지 아냐”라고 비 오는 날 나가기를 망설이며 '그렇게까지 해야 돼?'라고 되묻는 나에게 왜 망설이냐며 진짜 재밌으니까 고민하지 말고 축구하고 오라는 말을 여러 날 했다. 머리부터 다 젖을 텐데, 혹시라도 빗물을 머금은 운동장 인조잔디에 미끄러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쩐다 별의별 걱정을 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던 게 나는 미끄러져서 다칠 정도의 강도로 운동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하. 작년 가을 갖가지 부상 때문에 설렁설렁 뛰며 ‘저는 가늘게 오래 할 거예요.’라는 말을 무한 반복하며 필드 위를 걷는 듯 뛰는 듯했던 나였지. 이른바 걷뛰. 이런 나의 고민도 그렇지만 비가 오는 게 축구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며 물음표 백개 띄운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감독님 덕분에 용기를 내서 운동장에 나가보았다.


날은 더웠지만 얼굴에 와서 부딪히는 빗방울들은 차가웠는데, 평소처럼 워밍업, 스트레칭, 기초 훈련을 하다 보니 빗방울들은 오히려 더운 날의 열기를 가시게 했다. 쏟아지는 폭우를 맞으며 훈련과 경기를 했을 때, 우리는 심지어 해방감까지 느끼고 말았다. 두 팔 벌려 운동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리고는 정말 재미있다 너무너무 재미있다 와 진짜 재밌다는 말을 무한 반복하며 우중 축구의 매력을 찐으로 알아버렸다. 올해 여름의 우중 축구가 기대되기까지 할 정도로!

쏟아지는 비도 우리의 훈련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의 열정에 불을 지핀 리프팅 연습


나는 사실 몸치일 거라는 걸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안전기원제 때의 그 뛰는 듯 걷던 사진 속의 모습이나 영상으로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받았던 것은 내가 그래도 우리 축구단의 에이스일 거라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때문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몸치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 후부터는 매주 볼 수 있는 흔한 헛발질과 허둥지둥하는 내가 그래도 기특하게 느껴졌다. 잘하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에이스로 거듭나고 싶은 마음마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잘하고 싶어서 공구할 때 구입했던 축구공을 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되게 거창한 연습을 집에서 혼자 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선택한 스스로의 훈련은 바로 공 리프팅이다. 얼마 전 감독님과의 훈련 때 리프팅에 대해 배우기도 했고 뭐니 뭐니 해도 공을 온몸으로 자유자재로 다루는 게 축구선수 아니던가?! 그래서 리프팅을 열심히 해 보기로 결심했다.


집에서 풋살화를 신다니. 너무나 생소한 느낌이라 혼자서 왠지 쭈뼛거리며 리프팅 연습을 처음 하기 시작했다. 감독님한테 배운 대로 바닥에 바운스 한 번 섞어가며 발등을 펴고 엄지발가락을 신발 밑창에 닿게 구부리는 느낌으로 툭, 툭. 어느 날은 리프팅하고 잡고 리프팅하고 잡고의 반복. 무더운 어느 토요일 저녁 시작된 나의 리프팅은 매일 저녁의 루틴이 되었다. 부랴부랴 퇴근해서 저녁을 아이들과 함께 먹고 리프팅 연습을 하며 소화시키는 이었다.


노년층의 주민들이 많이 사는 전원주택 단지에서 들리는 생소한 공놀이 소리에 지나가던 주민분들은 아들이 공 차는 줄 알았더니 엄마가 차네? 라며 신기하게 혹은 흥미롭게 바라보며 지나갔다. 조용한 마을에 안 어울리는 공 튀기는 소리를 매일 저녁마다 내는 게 약간은 옆집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층간 소음은 아니지 않은가! 몇 시간씩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나 스스로는 내가 쫌 대견했다. 축구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열심히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스스로 연습하다니. 그래서 영상도 남겨두었다. 얼마나 성장했는지 나중에 아주 나중에 엄청 잘하게 되면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감독님께서 알려주신 각종 꿀팁과 매일의 연습 덕분에 진짜로 리프팅 실력이 향상되는 게 눈에 보였다. 바운스 한 번 시키고 리프팅하고 바운스 시키고 리프팅하고 어제는 5개를 했다면 오늘은 10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며칠 후에는 땅에 바운스를 하지 않고 연속으로 양발 리프팅 3개를 성공, 그러다 5개, 어느 날은 10개까지. 스스로 놀라가며 성장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리프팅의 시간을 보냈다.  

기록을 남기려고 인스타 스토리에 열심히 업로드!


리프팅을 처음 배우고서 한 달의 기간 동안 연습한 만큼 성장하는 나를 보면서 나는 난생처음 몸으로 하는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는데, 혹시 내가 몸치가 아니라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경험이 없었기에 아직 못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이러한 근거 있는 자신감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진짜 이대로 열심히 하면 몸치 탈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희망을 느꼈다. 그리고 너무 잘하고 싶다!라는 욕심도 생겼고.


이러한 즐거움을 혼자만 느낄 수는 없었다. 다들 각자의 집에서 편히 쉬고 있는 회원님들에게 약간의 자극이라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짤막하게 촬영한 리프팅 연습 영상을 단톡방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어느 회원은 내 영상을 보고 풋살화를 신었고 어느 회원은 그렇지 않았지만 적어도 나의 축구에 대한 열정에 불이 지펴졌다는 것은 모두 느꼈을 것 같다. 나의 열정의 불씨를 우리 회원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리프팅 훈련 꿀팁

리프팅은 내 발에 공의 감각을 익히는 중요한 훈련이다. 리프팅이 처음이라면 발등으로 한 번 차고 잡고, 한 번 차고 잡는 것을 반복하며 연습한다. 왼발 100개, 오른발 100개씩 쉬운 발만 하지 않고 양쪽 발 모두 훈련한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싶으면 땅에 바운스를 하며 시도해 본다. 땅에 튕기고 올라가는 타이밍에 맞춰 발등에 정확히 갖다 대보려고 노력한다. 이때 발등과 땅바닥이 평행하도록 발목을 고정시키고 풋살화 운동화끈 부분에 공을 맞출 수 있도록 한다. 이때 무릎을 살짝살짝 굽혀 반동을 준다. 그러면 소리가 탕! 탕! 하고 아주 예쁜 공 튕기는 소리가 난다. 땅에 바운스 하는 방법도 연습해 봤다면? 그렇다면 이제는 연속 리프팅이다. 주 발로 하는 게 훨씬 쉬운데 오른발 사용이 쉬웠던 나는 오른발로 연습하면서 왼발을 간간이 섞어주었다. 최대기록 15개인 내가 이렇게 리프팅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쓰는 게 웃기긴 하지만 감독님께서는 '연습만이 살길이다!'라고 하셨다. 그렇다. 더 연습을 해야 한다. 열심히.



훈련 일지


나의 열정을 불태운 두 번째 계기는 훈련 일지 작성이다. 훈련 일지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우리 팀이 어떻게 훈련했는지에 대해 기록하는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다. 기록을 하지 않으니 남는 게 없는 것 같고, 감독님께 분명히 배운 내용인데 다음 주 다시 만나면 얼굴에 물음표를 띄운 채 해맑은 표정을 짓는 우리였기 때문이다. 하. 감독님께 죄송스러워 어째.


여름이 시작되던 어느 날 역할을 나누었고 그중 훈련일지는 사진과 동영상 촬영과 같은 카테고리로 묶이게 되었다. 처음 우리가 썼던 훈련일지를 보면 훈련 내용을 꼼꼼히 작성하고 배운 내용을 검색해서 추가적으로 설명까지 첨부되어 있을 정도로 소중한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때는 9월 15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일대일 레슨 받는 것처럼 감독님께 리턴 패스를 배우고 집으로 돌아온 날. 너무 감사했고 너무 행복했던 그 시간 까먹을까 봐 처음으로 나만의 훈련일지를 손으로 쓰기 시작했다.

나의 훈련일지가 시작된 날


처음 썼던 일지는 매우 구구절절하다. 발바닥을 그리고, 발 등을 그리고, 문장으로 설명하는 식이다. 그다음부터는 그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동그라미로 그리고 화살표도 추가해 가며 그래도 부족하면 아래 설명을 썼다.

왼쪽 이미지는 나의 첫 훈련 일지. 오른쪽 이미지는 4번째만에 완성한 단체 원투패스 일지이다.


훈련일지를 써보며 직접 경험한 가장 좋은 것은 백지상태의 해맑은 얼굴로 감독님과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열심히 훈련하고 다음 주에 다시 만났을 때 다시 처음처럼 배우면 지난주에 우리가 배웠던 시간은 뭐였을까?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감독님 참 많이 힘 빠졌을 텐데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래서 더는 그것을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었다. 또 막상 써보니 기억이 조금은 더 나기도 하고.


또 좋은 점은 이따가 훈련 끝나고 집에 가서 일지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훈련에 더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30분, 1시간만 지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몇 번 겪고 나니 집중해서 기억하고 까먹지 않도록 되뇌며 귀가했고, 심지어는 땀을 흠뻑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까먹을까 봐 씻지도 못하고 훈련일지부터 썼다.


이 과정에서 내가 배운 내용을 자꾸 반복해서 생각하려고 노력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여기서 이렇게 패스하고 내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그다음은 어떻게 이어지게 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며 내 안에 새겨지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크고 작은 경기를 할 때 배운 내용을 바로 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래도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훈련 일지 작성 꿀팁

1. 부담감 내려놓기

처음부터 훈련 일지를 잘 쓸 수는 없다. 지금도 잘 쓰는 건 아니지만 처음 일지를 쓸 때를 생각해 보면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누가 검사하는 것도 아닌데 한 글자를 쓰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어차피 나만 보면 되는 거니까 처음엔 그림을 그리던 글을 쓰던 본인이 편한 스타일대로 생각나는 대로 써보자. 틀리면 지우고 다시 쓰면 되지 않은가.


2. 훈련 때 집중하기

우리 팀의 경우 주 2회, 2시간씩의 훈련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끼리 훈련하는 수요일의 경우 주로 복습을 위주로 훈련하고 있어서 일지에 대한 부담감이 훨씬 덜하지만 감독님과 훈련하는 금요일의 경우 새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때문에 집중해서 기억하는 게 필요하다. 감독님이 알려주는 방법들과 과정들을 몸으로 익히면서 머리로 기억하기 위해 애써보자. 어렵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알려주는 내용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면 집으로 돌아와 일지를 펼쳐 새하얀 종이를 마주할 때 생각나는 게 훨씬 많을 것이다.


3. 기호 활용하기

훈련 일지를 처음 쓸 때는 그 내용 자체를 문장으로 구구절절하게 썼었다. 그러다 콘, 마커, 이동, 패스, 드리블 등을 말보다는 기호로 표시하는 게 훨씬 간결하게 표현하기 쉽다는 것을 감독님으로부터 배우게 되었다. 기호들을 이해하면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눈으로 따라가 보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4. 느낀 점, 생각할 점 써보기

그동안은 훈련 일지를 작성하면서 느낀 점이나 생각할 점을 쓰지 않았다. 배운 내용과 프로그램의 과정을 주로 썼었는데, 다시 훈련 일지를 들춰보았을 때 그날 어땠는지 어떻게 느꼈는지도 궁금했다. 뭐가 어려웠는지 어떤 걸 쉽게 해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래서 훈련일지의 말미에 이번 훈련에 참여했을 때 느꼈던 내 느낌과 감정, 생각했던 것을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것까지 쓰니 정말 '일기'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내가 축구를 하고 있는 일기를 쓰는 거니까 훗날 지금의 내가 어땠는지 떠올려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 같다.


다음 편 예고

무지개가 떴다 11. 리턴 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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