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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Feb 20. 2024

무지개가 떴다 16

우리 동네 축구단으로 살아남기

양평군민의 날 체육대회


내가 살고 있는 양평은 도시가 아니다 보니 도시에서 살 때와는 사뭇 다른 여러 가지 경험의 기회가 많다. 작년의 일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단연 '양평군민의 날 기념 읍면체육대회'에서 개군면 대표 계주 선수로 선발되었던 일이다. 이번 체육대회에서는 축구, 족구,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 육상, 게이트볼, 파크골프 등 계주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활 체육의 종목들에 읍면 대표 선수들이 출전하여 진행되었다.


나는 그저 축구만 열심히 하고 있었을 뿐인데 계주 선수로 뽑혔다. 내가 계주를? 학창 시절 운동회의 백미 계주에서 항상 응원만 했던 내가? 계주 감독님께는 분명히 어필을 했다. 나는 잘 못 뛰고 빠르지도 않다고. 그래도 축구를 하는 가닥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뛸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것 같다. 30대 중에서 운동한다고 온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는 다른 사람을 못 찾아서인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우리 축구단에서 계주 선수로 무려 4명이 선발되어 개군면을 대표하는 계주 선수가 되었다.


100m를 전속력으로 4명이 달려 총 400m를 뛰는 계주는 20대, 30대, 40대, 50대 이상의 선수 각 한 명이 릴레이로 트랙을 뛰었다. 축구를 할 때는 100m를 전력질주할 일이 없었는데 연습하며 트랙을 달려보니 정말 보통일이 아니었다. 스트레칭 때도 하란 대로 하긴 하는데 영 익숙지가 않았다. 게다가 더 빠른 속도를 위해 스파이크화까지 지급해 주셨는데 이것 또한 난생처음 신는 거다 보니 걷는 것도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맨 처음 100미터를 전력 질주했을 때는 괜찮았는데 두 번째 전력 질주를 하려고 했더니 앞벅지가 올라왔다. 엉엉엉. 나 축구해야 되는데... 집에 돌아와 몇 개월 만에 근육통약을 다시 발랐다. 너무 슬펐다. 어떻게 잠재운 내 앞벅지인데.


그 후로도 이어진 계주 연습에서도 제일 처음에 뛰었던 그 속도로 뛸 수 없었다. 고관절과 앞벅지가 계속 아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후보선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 어쩌다 보니 나는 내 짝 유선이와 20대 대표가 되었는데(둘 다 30대) 유선이는 원래부터 나보다 더 잘 달렸기 때문에 그녀가 주전 선수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나는 가만히 그녀의 뒤에서 응원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두둥. 대망의 체육대회 날이 밝았다. 회사에 내 소중한 연차를 쓰고 들뜬 마음으로 향한 물맑은종합운동장. 기념식에 참석하고 계주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무지개 회원들 몇몇도 함께 그 시간을 즐겼다. 나는 비록 후보선수였지만 계주팀과 함께 스트레칭과 워밍업 등을 함께 했는데 무지개 회원들은 그 와중에 축구공을 갖다가 푸르른 인조잔디 위에서 패스 연습을 하고 있는 것. 저런 열정녀들. 우리의 축구 사랑은 점점 커져가고 있는 것 같다.


열심히 워밍업을 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는 와중 갑자기 감독님이 등장했다! 나야 후보였으니 떨릴 것도 없었지만 우리 축구단 회원의 달리기를 지켜볼 텐데 왠지 긴장되었다. 드디어 여성부 계주의 시간. 20대와 40대 주전 선수가 우리 축구단 회원이었다. 나는 열심히 영상을 찍으며 화이팅을 외쳤다. 50대부터 40대, 30대, 20대의 순서로 달렸는데 마지막 20대 유선이가 달릴 때 우리는 4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3위를 기록해야 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던 터라 게다가 우리와 3위간의 차이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유선이의 승부욕이 발동되었다. 나도 조금만 더 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던 그때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만 것이다. 이때 갑자기 감독님 등장!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이번엔 아바타 달리기다. 그 말을 들었는지 유선이는 벌떡 일어나 다시 끝까지 달렸다. 완주 후 아쉬움에 눈물을 글썽이는 그녀는 터벅터벅 까진 무릎을 치료하러 구급천막으로 향했다. 이런 유선이의 승부욕은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나는 뭐든 대충대충 하는 경향이 있고 쉽게 포기하는 것도 잘해왔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를 보며 없던 나의 승부욕도 생기는 것 같았다. 이런 사람이랑 같이 축구해서 참 좋다.


이번 군민 체육대회의 가장 큰 수확! 정란이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계주 선수로 매번 참가했다는, 엄청 빠르다는 소문과 함께 만난 그녀는 누가 봐도 무지개 안에서 대목이 될 상이었다. 역시나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는지 같이 계주 선수로 선발되었던 소희도 정란이를 영입하려고 열심히 작업했다는 후문이다. 체육대회를 무사히 마치고 결국 정란이는 무지개WFC에 전격 입단! 역시나 에이스가 되어 필드 위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수의 골을 넣는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이번 체육대회에서 아쉬웠던 걸 한 가지 꼽자면 축구 대회가 있었지만 여성 축구 대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축구단만도 6개나 되는데, 꼭 12개 읍면을 다 못 채워도 아쉬운 대로 해봐도 좋았을 텐데. 부디 2년 뒤 다음번 군민의 날 체육대회에는 여성 축구 대회도 꼭 열리길 지금부터 바라본다.


더불어 2024년에 열리는 개군면민의 날이 기대되기도 한다. 이 때는 마을단위로 작은 체육대회가 열리는데 종목 중 '승부차기'가 있다. 각 마을별로 남자 2명, 여자 2명이 순서대로 공을 차고 골키퍼가 되어 막는 방식으로 승자를 가리는 경기. 우리 축구단 회원들이 부디 각자의 마을 대표로 출전해서 승부차기로 진검승부를 가리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 벌써 기대 중이다.



양평군 개군면


우리 축구단은 양평군 개군면에 연고지를 두고 있다. 우리의 축구를 잘해나가고 우리의 축구단을 잘 운영해 나가는 것 못지않게 지역사회 안에서의 인정과 응원과 지원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윈-윈이 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의 다양한 일에 참여하고 우리도 중요한 순간 지역사회의 응원을 받을 수 있도록 협력 관계로 지역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 것은 우리 동네의 축구단으로 살아남기 위해 꼭 해야 할 일들이 아닐 수 없다.


대표적으로는 '양평군 산수유한우축제'나 민족 대명절 추석을 앞둔 개군면 대청소이다. 어느 지역에나 그렇겠지만 우리 동네에도 많은 기관단체들이 있는데 이런 행사를 앞두고는 모여서 결의도 다지고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함께 참여한다. 새벽부터 모여 대청소를 하고 뜨끈한 아침식사까지 함께하고 헤어진다. 아마 봄이 되어 새로 대청소를 하게 된다면 아마 우리는 새벽부터 모여 청소를 하고 아침식사를 먹은 후 축구 번개를 하러 이동하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이미 재밌다.

지역 행사에 참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


우리 축구단에는 개군면민만 있는 건 아니다. 강상면에서도 오고 여주에서도 온다. 그래서 모두의 생활반경이 같은 듯 다르게 아주 넓은데 이번 단락은 옆 동네 초등학교의 이야기이다. 학교 밖 200m 반경 안에 레미콘 공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옆 학교 학부모 회장을 맡고 있던 다정이가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교육환경법 상의 학교 반경 내 금지 업종에 <레미콘 및 콘크리트 제조업>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장이 들어서고 아이들의 등하굣길에 트럭들이 들락거리게 될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청소년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나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긴 했지만 우리 축구단에도 서명지를 가지고 와 우리 모두 서명으로나마 힘을 보탰고 결국은 교육환경법에 <레미콘 및 콘크리트 제조업>을 포함시키는 개정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작은 참여였을지는 몰라도 우리가 힘을 보탤 수 있는 것은 무조건 함께 한다.


우리의 활약상을 알리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대회를 나가면 나갔다 친선 경기를 하면 한다 면장님을 비롯해 축구단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자랑'하는 거다. 자랑할 거리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주제가 계속 나오기 때문에 그 내용이 무궁무진하다. 덕분에 지역의 어른들은 우리가 축구를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거의 다 알고 계신다. 관심이 생기려면 일단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일단 알고 나면 관심이 생기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리라 믿고 오늘도 열심히 인사를 하고 지금 축구단의 현황도 알려본다.


우리가 필요한 것들에 대해 공감도 해주시고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덕분에 많은 응원과 지원도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아마 이 글이 발행될 때쯤이면 우리 축구단만의 라운지가 생겨있을 것이다. 물품을 보관할 곳이 없어 매번 그 무거운 공가방을 짊어지고 다녔던 시절도 있었는데. 어엿한 무지개WFC 라운지에 공을 비롯한 각종 물품들을 정갈하게 정리하고 한 켠에는 우리가 받아온 트로피가 전시되는 상상을 하면 벌써 행복이 차오른다.


이런 우리의 노력과 지역의 관심과 응원으로 올 해의 추운 겨울은 실내연습장에서 주 2회 훈련하고 있다. 겨울 내내 푹 쉬었던 작년과는 사뭇 다른 모습. 훈련이 이어지니 그에 따라 열정도 같이 불타오르는 것 같다. 날이 조금이라도 영상으로 올라가면 무조건 야외 축구장에서 여지없이 훈련을 진행하고 영하의 날씨는 실내연습장에서 훈련. 춥다고 훈련을 쉬는 일은 없다. 오히려 금요일 훈련 후 수요일이 너무 멀다는 말을 하는 회원들이 많아지고 있다. 훈련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우리다.

단체 사진은 우리의 소중한 기록이다.
실내연습장이 있지만 영상의 온도라면 무조건 야외에서 훈련!


다음 편 예고

무지개가 떴다 17. 양평군 여성 풋살 친선 대회 준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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