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이 명화를 그린 영화가 있습니다.
2003년에 개봉하고, 스칼렛 요한슨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화가 베르메르의 작품을 소재로 한 소설을 영화한 것입니다.
소설과 영화는 베르메르의 삶을 그린 전기이자 역사이면서 동시에 바로크 시대의 분위기와 복식 그리고 그 당시의 하녀계급을 보여줍니다.
사실 바로크 복식이라고 하면 화려하면서 풍부한 색채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이 영화는 바로크 시대의 서민 복식을 볼 수 있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특히 배경이 네덜란드라는 점에서 그 당시 검소한 청교도 풍의 바로크 복식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1665년 네덜란드 델프트입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네덜란드는 도시의 시민계층을 중심으로 상업과 산업이 번성했습니다. 그래서 이때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그림을 투자의 대상이자 신분의 상징으로 삼기도 했고, 화가에게 재정적 후원을 하는 고객이기도 했습니다.
이를 일명 ‘시민적 바로크’라고 합니다. 영화에서도 이러한 인물이 등장하고, 베르메르의 재정적 후원자이기도 합니다. 당시 이들에 의해 이루어진 미술은 이전의 귀족미술과는 다른 새로운 미술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 장르는 바로 일상 속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입 니다.
베르메르 역시 현실 속의 일상을 묘사했습니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역시 베르베르가에서 일하던 하녀 그리트의 모습입니다. 하녀는 당시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에 많이 등장하였는데 이는 네덜란드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그림 속 소녀의 시선입니다.
예술작품에서 하녀라는 신분은 주로 계급과 섹슈얼리티를 중심 주제로 합니다. 하녀들은 남성의 관음적 시선에 의해 성적 대상으로 묘사되곤 하였습니다. 영화에서도 이러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림 속에서 하녀라는 대상은 주체가 되기보다 응시 대상인 객체로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는 감상자와 시선을 마주합니다.
즉 수동적인 시선이 아닌 평등한 시선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를 반영하듯 영화에서도 그리트는 역할과 계급질서에 도전하는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영화 속의 인물들은 소설가와 감독의 상상력이 더해져 허구와 실화를 넘나듭니다. 이는 베르메르에 대해 잘 알려진 바가 많이 없고, 작품 수가 많지 않아 허구적인 상상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 복식은 시대의 거울로서 당대의 사회상을 잘 보여줍니다. 근검과 절약을 바탕으로 검소하고 소박하며 실용적인 면을 중시했던 당시 네덜란드 시민들은 같은 시기 전 유럽을 휩쓸었던 화려한 바로크 양식대신 간편한 의복을 추구했습니다.
힙을 크게 부풀리던 버팀대가 축소되고, 스커트 역시 짧아져 기능적으로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상의 소매는 부풀림이 줄어들고, 상체도 활동하기 편하도록 변화되었습니다. 의복의 모든 부분이 가볍고 편안해졌습니다. 또 러프 칼라가 사라지고 폴링 칼라인 플랫칼라를 착용하였고, 네크라인이 넓게 파인 데콜테 형식으로 변화했습니다.
이러한 의복은 이후 세계 패션의 흐름을 주도하였는데 이는 이 시기 네덜란드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정점에 있었기 때문에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화의 주체가 귀족이 아닌 시민에 있던 네덜란드의 사상이 생활지침이 되어 허영과 사치를 혐오하고 절약을 미덕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또한 이 시기 여성복식은 어두운 색으로 컬러가 많지 않았고, 레이스와 칼라 또는 커프스를 강조하였습니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는 귀족풍보다는 시민풍, 호화로움보다는 합리성과 실용성을 강조하는 네덜란드의 바로크 복식을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서민풍의 바로크 복식뿐 아니라 한 예술가의 삶 그리고 네덜란드 당시의 하녀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https://youtu.be/by6OjpkxOJc?si=TD973HoqGhSuBp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