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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뜨케 헤어져요 ㅡ남북 재상봉 부부를 보며

안혜초 시인과 문학 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20. 2024









                어뜨케 헤어져요
          - 남북 재상봉 부부를 보며



                                   시인 안혜초




얼마나 보고 싶던 그 얼굴인가
얼마나 듣고 싶던 그 음성인가

50여 년간의 기다림에 지치고 지쳐
50여 년간의 그리움에 지치고 지쳐

이미 하이얗게 재가 되어버린
가슴속의 불씨이긴 하드래도

이미 까아맣게 숯이 되어버린
가슴속의 꽃씨이긴 하드래도    

이제 가면 다시 또 만나볼 수 없을지도
모를 내 평생 단 하나 여보인데

이제 가면 다시 또 만나볼 수 없을지도
모를 내 평생 단 하나 여보인데

단 한 번의 피울음을 쏟아내기 위해
지상에 태어난 가시나무 새이련 듯

- 정말 어뜨케 헤어져요
- 정말 어뜨케 헤어져요

할 수 있는 말이란 오직 단 한마디
하늘도 땅도 피멍 든 가슴이 되어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인 안혜초는 남북 이산가족 문제를 깊이 공감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작가이다.
이 시 '어뜨케 헤어져요'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주제로, 오랜 기다림과 이별의 순간을 절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시인은 단순한 개인적 감정을 넘어, 분단된 민족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이산가족이 겪는 상실과 절망을 절절하게 그려낸다.
이 시의 배경에는 작가의 깊은 인간애와 분단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희망이 깔려 있다.

 "얼마나 보고 싶던 그 얼굴인가 / 얼마나 듣고 싶던 그 음성인가"

첫 두 구절은 오랜 시간 동안 이별했던 가족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여기서 "얼굴"과 "음성"은 단순한 시각적, 청각적 요소가 아니라, 상실된 인간적 연결을 상징한다. 이산가족은 오랜 시간 동안 상상 속에서만 그리워했던 존재를 실제로 다시 마주할 때, 그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에 빠진다. '얼마나'라는 반복은 그 기다림의 길이를 강조하며, 그리움이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깊어져 갔음을 나타낸다.

 "50여 년간의 기다림에 지치고 지쳐 / 50여 년간의 그리움에 지치고 지쳐"

이 구절에서는 시간의 무게가 강조된다. 50년이라는 긴 시간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삶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길고 고통스럽다. '지치고 지쳐'라는 반복적인 표현을 통해, 시간의 경과로 인한 피로와 체념이 강조된다. 이 기다림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고통과 그리움이 쌓여 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시간은 이들에게 있어 희망의 원천이 아니라, 절망의 무게를 더해주는 잔인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미 하이얗게 재가 되어버린 / 가슴속의 불씨이긴 하드래도"

이 부분에서는 이산가족의 마음이 '재'로 비유된다. '불씨'는 희망이나 사랑, 그리움의 상징으로, 이산가족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미약한 감정이다. 그러나 그 불씨는 이미 '재'가 되어버린 상태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열정과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처럼 시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 가는 감정의 변화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미 까아맣게 숯이 되어버린 / 가슴속의 꽃씨이긴 하드래도"

앞선 구절과 대칭을 이루며, '숯'과 '꽃씨'의 대비가 등장한다. 꽃씨는 생명과 재생의 상징이지만, 그것이 '숯'이 되어버렸다는 것은 더 이상 피어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는 이산가족의 재회가 더 이상 과거의 생생한 감정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시사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상처와 상실감이 깊이 새겨져 있어, 그 감정은 다시 피어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이제 가면 다시 또 만나볼 수 없을지도 / 모를 내 평생 단 하나 여보인데"

여기서는 이별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내 평생 단 하나 여보'라는 표현은 그들의 재회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나타낸다. 하지만 이 소중한 재회가 다시는 이루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은, 그들에게 더욱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재회의 기쁨이 순간적이라면, 이별의 고통은 영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산가족의 슬픔이 배가된다.

 "단 한 번의 피울음을 쏟아내기 위해 / 지상에 태어난 가시나무 새이련 듯"

이 구절은 이산가족의 고통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피울음'이라는 단어는 그들의 깊은 슬픔과 고통을 상징하며, 마치 가시나무 새처럼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한 번의 울음으로 그 모든 감정을 쏟아내려는 비유가 사용된다. 이 울음은 단순한 눈물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아픔을 의미하며, 이들은 그 고통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정말 어뜨케 헤어져요 / 정말 어뜨케 헤어져요"

이 반복되는 절규는 재회의 순간이 끝나고 다시 헤어져야만 하는 현실의 잔혹함을 드러낸다. 시인은 이산가족의 심정이 이 구절에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별은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고통이며, 다시 마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이 구절은 더욱 처절하게 다가온다.

 "할 수 있는 말이란 오직 단 한마디 / 하늘도 땅도 피멍 든 가슴이 되어"

마지막 구절에서는 이별의 고통이 하늘과 땅을 덮는 것처럼 거대하게 표현된다. 이산가족의 개인적인 고통이 민족의 고통으로 확장되며, 하늘과 땅 모두가 이 슬픔을 공유하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피멍 든 가슴'이라는 표현은 고통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강조하며, 이는 단순히 육체적 아픔이 아니라, 영혼 깊숙한 곳에서 비롯된 상처임을 보여준다.

안혜초의 '어뜨케 헤어져요'는 이산가족의 오랜 기다림과 재회의 기쁨, 그리고 다시 닥쳐오는 이별의 슬픔을 매우 절절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시는 남북 분단의 현실을 개인의 감정에 투영하여,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과 상실감을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단순히 이산가족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감정을 민족 전체의 고통으로 확장하며, 분단의 현실이 초래한 비극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또한, 시적 표현을 통해 상징적 이미지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독자가 이산가족의 감정을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끈다. 불씨와 꽃씨, 가시나무 새와 같은 이미지들은 인간의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을 모두 아우르는 상징으로 작용하며, 이 시의 감정적 깊이를 더해준다.

요컨대, '어뜨케 헤어져요'는 이산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분단된 민족의 아픔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그 절절한 감정과 이미지의 중요성이 돋보이는 시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처와 그리움을 통해, 분단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넘어서는 인간의 고통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다.





안혜초 시인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북쪽에 계시던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한평생을 살아오신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녀입니다. 며칠 전 우연히 시인님의 시 ‘어뜨케 헤어져요’를 접하게 되었고, 이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동안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시인님의 시를 읽는 순간, 마치 문이 열린 듯 쏟아져 나왔습니다.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시를 읽으며 저는 부모님께서 늘 말씀하시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북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만날 수 없다는 절망, 그리고 혹시라도 다시 만나게 될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 속에서 부모님은 평생을 보내셨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남북이 갈라지면서 사랑하는 부모님, 형제, 자매를 남겨두고 오셨습니다. 그들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평생 그리움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가셨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소식이 있을 때마다, 혹시나 부모님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그 소식은 항상 누군가의 이야기일 뿐, 부모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부모님은 그렇게 그리움만을 품은 채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시인님의 시를 읽으며 부모님이 경험하셨을 그 절절한 감정들을 비로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던 그 얼굴인가’라는 시구에서, 부모님께서 북에 남겨두고 오셨던 그 가족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을 것입니다. 몇십 년 동안 그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오직 기억 속의 모습으로만 간직하고 살아오신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가끔 식사를 하시다가도 그 옛날 형제들과 함께 나누던 음식을 떠올리시며 눈물을 흘리곤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그 슬픔을 다 헤아리지는 못하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요.

‘50여 년간의 기다림에 지치고 지쳐’라는 시구에서는 부모님의 긴 세월 동안의 지친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남겨진 가족들을 기다리셨습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 속에서 희망보다는 오히려 체념과 절망이 더 커져갔습니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고, 그리움은 날로 커져가지만 시간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조차 가족들의 모습을 희미하게 만들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시간이 지날수록 형제들의 얼굴이 기억에서 점점 흐릿해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부모님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이미 하이얗게 재가 되어버린 가슴속의 불씨이긴 하드래도’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부모님께서 마음속 깊이 간직하셨던 그리움과 희망이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소멸해 가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부모님은 분단 초기에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재회가 어려워질수록 그 희망은 차츰 사라져 갔습니다. 결국 그 불씨는 희미해졌고, 다시는 피어날 수 없는 재로 변해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졌고, 그저 시간이 모든 것을 앗아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가면 다시 또 만나볼 수 없을지도 모를 내 평생 단 하나 여보인데’라는 구절에서는 부모님이 마지막까지 품으셨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매일같이 북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셨고,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떠올리셨습니다. 하지만 이 생이 끝나기 전에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셨습니다. 그들에게는 만남이 기적과 같았고, 이별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부모님이 떠나시기 전, 저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 중 하나가 “그리워서라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아쉬움은 고스란히 저희 자녀에게 전해졌습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반복되는 ‘정말 어뜨케 헤어져요’라는 절규는 부모님이 느꼈던 절망과 비슷했습니다. 부모님은 마음속으로 수없이 질문하셨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질 수 있느냐고, 어떻게 다시는 만나지 못할 운명이 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이 시는 단순한 글이 아니라, 부모님의 목소리와 같았습니다. 시인님의 시를 통해 저는 부모님의 마음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 그들과 같은 슬픔을 겪고 있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더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시인님, ‘어뜨케 헤어져요’라는 시를 통해 부모님의 삶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던 저는 비록 그리움의 무게가 크지만, 그리움을 나눌 수 있는 위로를 얻었습니다. 시인님의 시는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산가족에게도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이 시가 그들에게 자신이 홀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같은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들 또한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라 믿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 이루지 못한 그 소망을 대신해, 저는 앞으로도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전하려고 합니다. 부모님의 그리움을 품고 살아온 삶이 헛되지 않도록, 시인님의 시와 같은 작품들이 우리 사회에 더 많이 알려지길 바랍니다. 이 글을 통해 시인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당신의 시는 우리에게 단순한 문학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되어주었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인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해주는 작품을 써주실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을 담아,  
한 이산가족의 자녀가





안혜초 시인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현대문학 3회 추천완료.

세계여기자작가한국지부 부회장 역임
한국PEN자문위원, 한국현대시협 지도위원

*시집 :귤ㆍ레먼ㆍ탱자, 달 속의 뼈, 쓸쓸함 한 줌,

푸르름 한 줌 살아있는 것들에는 등 8권 한영대역시집 중국어역시집
윤동주문학상,

PEN문학상

영랑문학상 대상

기독교문학상 대상
문학 21상 대상

이화를 빛낸 상

한국문학예술상 대상 등 다수 수상.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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