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청운 정덕현 시인의 '능소화'를 청람 평하다

정덕현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22. 2024











                          능소화



                                 시인  靑雲 丁德鉉




장마철 비 구름에 하늘을 본다
제 몸 가누지 못해
설 곳 기댈  곳 가리지 않고
까치발 띄어 놓고
먼산만 바라보는 기다림

사랑의 꿈속의 연정을 이루지 못한
애절한 그리움으로 시들어진
소화의 전설 속에 이름을 남긴
풀이슬에 장삼을 적신 호의선사
향기를 풍긴다

오직 기다리기만 할 뿐
달려가지 못한 애절한 사랑으로
이루지 못한 설음
한 뼘이라도 더 높은 담 너머로
내다보는 꽃 능소화

장마 속 늦게 피어난 나팔꽃
기다림의 울음소리
하늘 높이 불어대는 나팔소리도
애절한 죽음으로
낙숫물처럼 떨어지는 꽃잎
능소화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운 정덕현 시인은 삶 속에서 경험한 감정과 사유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독창적인 시적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서적 깊이와 자연의 현상이 서로 맞닿아 있음을 강조하며, 특히 기다림과 애절함을 주제로 하는 시에서 그의 내면세계가 드러난다. 정덕현 시인은 한평생을 자연 속에서 감정을 관조하며 시적 영감을 얻었고, 그 결과물로서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이번 시 '능소화'는 이러한 그의 시적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는 삶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과 그리움을 능소화라는 꽃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애절한 감정을 자연에 투영하고 있다.

 “장마철 비 구름에 하늘을 본다”는
시적 화자가 비 내리는 하늘을 응시하며 시작된다. 장마철이라는 시간적 배경은 정서적으로 답답함과 애수를 불러일으키며, 화자가 무언가를 갈구하지만 이루지 못하는 상태를 나타낸다. 하늘은 높은 이상이나 꿈, 그리고 초월적인 존재를 상징하는데, 이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시인은 이러한 장면을 통해 인간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과 그 속에서의 무력함을 묘사하고 있다.

“제 몸 가누지 못해 / 설 곳 기댈 곳 가리지 않고”라는 구절은
주체적이지 못한 존재 상태를 형상화한다. 비에 젖어 무거워진 구름이나 능소화의 모습을 통해 화자는 자신 또한 삶 속에서 안정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주변에 의존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이는 인간의 나약함과 연약함을 보여주며, 또한 그 나약함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암시한다.

 “까치발 띄어놓고 / 먼산만 바라보는 기다림”은
간절함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까치발’은 불안정한 자세를 암시하며, 사랑이나 소망을 이루기 위해 발돋움하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다. 먼산을 바라본다는 것은 현재 이루지 못한 목표나 사랑에 대한 갈망을 나타내며, 능소화가 높은 담을 넘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이어지는 “사랑의 꿈속의 연정을 이루지 못한 / 애절한 그리움으로 시들어진”이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사랑의 비극성을 강조하고 있다. 꿈속의 사랑, 즉 이루지 못한 사랑은 시들어버린 꽃처럼 사라져 가며, 시적 화자는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상처와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여기서 능소화는 상징적으로 이루지 못한 사랑의 표상이 되어 독자에게 깊은 감정적 울림을 준다.

 “소화의 전설 속에 이름을 남긴 / 풀이슬에 장삼을 적신 호의선사 / 향기를 풍긴다”는
전설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적 화자의 애절함을 표현하고 있다. 전설 속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이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호의선사의 모습과 연결시키며, 그들의 사랑이 비록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그 향기는 여전히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 단순히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오직 기다리기만 할 뿐 / 달려가지 못한 애절한 사랑으로”는
사랑의 본질을 기다림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사랑은 능동적 행위가 아닌 수동적 기다림이며, 그로 인해 이루지 못한 설움이 더해진다. 달려가지 못했다는 표현은 적극적인 시도가 없었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순응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현실에 순응하면서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사랑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를 나타낸다.

“한 뼘이라도 더 높은 담 너머로 / 내다보는 꽃 능소화”는
능소화라는 꽃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극대화한다. 담 너머를 바라본다는 것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상상 속에서라도 이루고자 하는 화자의 열망을 반영한다. 이 구절은 능소화가 현실의 제약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높은 담을 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순간을 담고 있으며, 그 속에서 인간 존재의 비극성을 암시한다.

“장마 속 늦게 피어난 나팔꽃 / 기다림의 울음소리”는
시간적으로도 늦은 시기에 피어난 꽃을 통해 인간의 후회와 미련을 나타내고 있다. 장마라는 부정적인 환경 속에서 피어난 나팔꽃은 그 자체로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의지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그 기다림이 이루어지지 못한 슬픔을 표현한다. 나팔 소리가 울리지만, 그 소리는 애절한 울음으로 변하며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암시한다.

“하늘 높이 불어대는 나팔소리도 / 애절한 죽음으로 / 낙숫물처럼 떨어지는 꽃잎 / 능소화”는
시의 절정으로, 사랑과 삶의 끝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나팔 소리가 하늘 높이 울리지만, 그것은 결국 죽음과 같은 결말을 맞이한다. 이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결국은 자연의 섭리와 운명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다. 꽃잎이 낙수물처럼 떨어진다는 표현은 죽음의 이미지를 강조하며, 능소화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이 시에서 능소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고통과 사랑의 비극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이미지로 사용된다. 시인은 능소화의 애절함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재조명하며, 인간이 현실 속에서 겪는 다양한 감정들을 자연의 이미지와 연결시켜 섬세하게 그려낸다.






ㅡ 청람

작가의 이전글 밤하늘의 별빛이 내 마음 속에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