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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19. 2024

겨울의 노래

김왕식








                           겨울의 노래






신새벽, 교외를 달리는 완행열차의 차창이 서리로 뒤덮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얼어붙은 대지와 희미하게 드리운 어둠이 어우러져 마치 멈춘 시간 속을 가로지르는 듯했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지만, 그 안에서 숨을 고르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따스한 생명의 흔적을 간직한 채 묵묵히 서 있었다.

그들은 방한복을 두르고 있었다. 비록 낡은 옷이지만, 노동의 현장을 감당하기 위해 입은 그들의 방어막이었다. 한 노동자는 입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숙였다.

달삼이다. 그의 손에는 괭이가 들려 있었고, 흙을 파헤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드럼통 난로에서 피어오르는 장작불이 새벽의 어둠을 서서히 몰아내고 있었다. 그 불빛은 환한 온기를 전하기보다는 노동의 무게를 더욱 선명히 드러내는 듯했다.

난로 주위에 모인 이들의 얼굴에는 붉은 기운이 스며 있었다. 그 붉음은 따스함의 증표가 아니었다. 그것은 중풍으로 쓰러진 노부모를 생각하며 떠오르는 책임감의 무게였고,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자식들을 떠올릴 때 스치는 불안의 흔적이었다. 그런 표정들은 한숨 속에서 살아가야 할 하루의 길이를 말없이 드러냈다.

그 와중에도 몇몇은 담배를 입에 물고 연기를 뿜어냈다. 애꿎은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퍼져 나가는 모습은 그들의 묵직한 삶의 무게를 시각화하는 듯했다. 담배 연기는 연신 한숨과 뒤섞여 떠오르며, 잠시나마 위로를 갈구하듯 어딘가를 향해 흩어졌다.

이들은 멈추지 않는다. 차디찬 새벽 공기 속에서도 삶의 무게를 지탱하며, 가슴 한편에 희미한 불씨를 품고 있었다. 그 불씨는 사라질 듯 미약했지만, 어쩌면 언젠가 새벽을 밀어내고 아침을 불러올 희망의 불꽃일지도 모른다. 겨울은 그들의 삶을 얼어붙게 하지만, 그 얼음 속에도 묵묵히 피어오르는 생명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1994, 2, 16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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