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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과 개구리

김왕식









우물과 개구리





청람





무더운 여름날, 시골 마을 정자에선 두 노인이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매미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이고, 더워 죽겠다. 옛날에는 이 정도는 시원한 편이었는데, 요즘은 해마다 더 더워지는 것 같네." 만석이 부채를 힘차게 흔들며 말했다.

칠복이 멀리 마을 우물을 가리켰다. "야, 저기 우물 아직 있나? 니하고 나하고 어릴 적에 목 말라가 물 퍼 마시던 거."

"있긴 한데, 물맛이 영 아니다. 사람들이 안 찾아가니께 관리도 안 하고, 쓰레기만 던져 놓았더라."

칠복은 혀를 찼다. "참말이가? 옛날에는 그 우물이 우리 마을 생명줄이었는데, 이젠 아무도 신경 안 쓴다 말이가?"

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요새는 수돗물 틀면 그냥 나오니까, 우물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거라. 필요 없으면 내팽개치는 거 아이가."

칠복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거 사람도 마찬가지 아냐? 급할 때는 찾아와서 사정사정하다가, 필요 없으면 아는 척도 안 하고."

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러고 보면 개구리도 똑같다. 올챙이 적 생각은 하나도 못 하고 땅 위에서 폴짝폴짝 뛰어댕기잖아."

칠복이 웃으며 맞장구쳤다. "맞다, 맞다. 사람도 똑같다니까. 예전에 어렵고 힘들 때 도와줬던 사람 다 잊어뿌리고, 나중에 또 힘들어지면 그때서야 찾아와서 아는 척한다 아이가."

만석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뻔뻔스럽게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데!' 하고 말이지. 근데 정작 필요할 땐 손 하나 까딱 안 하더라."

칠복이 고개를 저었다. "에이그, 그런 놈들은 포도 알맹이 빼먹듯이 할짝할짝 다 먹고 나면 씨는 뱉어버리는 거랑 똑같다니까."

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맞다! 우산도 마찬가지라. 비 올 때만 쓰고, 해 뜨면 바로 접어 던져버리제."

칠복이 한숨을 쉬었다. "근데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진짜 위기 오면 어쩌나?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지."

만석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내가 예전에 친했던 친구 하나 있었는데, 한때 잘 나간다꼬 내를 등 돌려뿌고, 자기 좋을 대로만 하더라. 근데 세월이 흘러서, 자기도 어려워지니까 내한테 연락하더라니까?"

칠복이 흥미로운 듯 물었다. "그래서 니는 어떻게 했는데?"

만석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안 받았다."

칠복이 박장대소했다. "허허, 그래야지. 평소에라도 인연을 잘 관리해 놨어야지, 필요할 때만 찾아오면 누가 좋아하겠노?"

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께, 만남은 소중해야 한다, 이 말이다. 사람도 한 번 맺은 인연을 깨끗이 갈고닦아야 하는 기라."

칠복이 저 멀리 우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맞다. 우물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목 안 마르다고 돌 던져서 막히게 만들면, 나중에 진짜 목마를 때는 퍼먹을 물이 없는 거라."

만석이 부채를 접으며 말했다. "우물도, 사람도, 필요할 때만 찾으면 결국 남는 게 없는 기라."

칠복이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 "그러니께, 지금부터라도 우리 서로 잘 챙기고 살자. 안카나, 우리도 이제 나이 들었는데, 나중에 서로 필요할 때 힘이 돼줘야지."

만석이 힘주어 말했다. "당연하지. 우리 둘이야말로 끝까지 서로 도와줘야 한다 아이가."

칠복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라제! 아무리 개구리라 해도, 올챙이 적을 너무 까맣게 잊어뿌리면 안 되지."

두 노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지는 해가 그들의 주름진 얼굴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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