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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가벼움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Feb 15. 2025








                         무소유의 가벼움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있던 덕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손에 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툭 한 마디 던졌다.

"하아… 삼촌, 내 이거 잃어버리면 안 되는데. 요즘은 이게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단 말예요."

옆에서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던 외삼촌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에이, 그런 걸 가지고 뭘 그리 쩔쩔 매노. 옛날엔 그런 거 없어도 잘 살았다. 니가 그렇게 목매는 거 보이 한심하다 아이가."

덕수는 억울하다는 듯 스마트폰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반박했다.

"삼촌, 요즘 세상은 그런 게 아니에요. 이게 없으면 연락도 못 하고, 길도 못 찾고, 심지어 밥값도 못 내요. 다 핸드폰 하나로 해결하는 시대라니까요."

외삼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편리한 거야 인정한다. 근데 말이다, 니 그거 잃어버리면 어쩔 건데?"

덕수는 스마트폰을 꽉 쥐고 대답했다.

"잃어버리면… 큰일 나죠! 사진도 다 날아가고, 연락처도 사라지고, 돈도 없고… 아이고,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외삼촌은 그런 덕수를 보며 말했다.

"바로 그거다. 니가 그 물건을 가진 게 아니고, 그 물건이 니를 지배하고 있는 거라. 편리하다고 가져다 놨는데, 결국 니가 그거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거 아이가?"

덕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건 좀… 하지만 다들 이렇게 사는데요?"

외삼촌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다들 바쁘고, 정신 없고, 허둥대며 사는 거다. 옛날 우리 할아버지 보이, 가진 거라곤 밭뙈기 몇 평, 헌 옷 몇 벌, 손때 묻은 연장 몇 개뿐이었어도, 사는 게 넉넉했다. 왜 그랬겠노?"

덕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글쎄요… 시대가 달랐잖아요?"

외삼촌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마음이 넉넉해서 그렇다. 가진 게 적으니까 집착도 없고, 잃어버릴 것도 없고, 더 가지려는 욕심도 없고. 니 지금 핸드폰 하나 없어질까 봐 전전긍긍하지만, 우리 할아버진 논 한 마지기 잃어도 그냥 '에이, 올해 농사 더 잘 지으면 되지' 하고 웃고 넘겼다."

덕수는 조용히 외삼촌의 말을 곱씹었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요즘은 그렇게 살기 어렵잖아요. 다들 경쟁해야 하고, 뒤처지면 안 되고… 삼촌은 너무 태평하신 거예요."

외삼촌은 빙그레 웃으며 되물었다.

"그래, 경쟁하지. 근데 경쟁해서 이긴 사람은 어찌 되노?"

덕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더 많이 갖고, 더 편하게 살겠죠?"

외삼촌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참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돈 많고 좋은 차 타고 다니고, 큰 집 사는 사람들 보이, 진짜 편하게 사는 것 같나? 맨날 일에 치이고, 재산 지킬라꼬 머리 싸매고, 몸도 마음도 편할 날이 없다. 가진 게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신경 쓸 것도 많아진다."

덕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근데 삼촌, 꼭 다 내려놔야 해요? 필요한 건 가져야 되는 거잖아요."

외삼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다. 필요한 건 있어야지. 근데 '필요한 것'이 어딘지 아는 게 중요하다. 정말 써야 할 건 가져야 하는데, 그냥 남들이 다 가지니까 나도 가져야 된다는 생각, 그게 문제라. 니가 가진 것 중에, 없어도 되는 게 뭔지 한 번 생각해 봐라."

덕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용히 말했다.

"글쎄… 옷이야 많긴 한데, 다 입진 않네요. 책도 쌓여 있는데 안 읽은 게 더 많고…"

외삼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사람은 뭔가를 갖는 순간부터 그걸 지키려고 애를 쓰게 된다. 옷 많으면 옷장 자리 차지하고, 책 많으면 먼지만 쌓이고, 차 많으면 주차 걱정해야 되고, 땅 많으면 세금에 골치 썩고. 이래저래 '소유'란 게 꼭 이로운 것만은 아니라."

덕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외삼촌을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 삼촌도 이 마을에서 땅도 있고, 집도 있잖아요. 그럼 삼촌도 똑같이 소유에 얽매인 거 아니에요?"

외삼촌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다. 그래서 나도 되도록 덜 가지려고 한다. 농사짓고, 필요한 만큼만 먹고, 여유 있으면 이웃이랑 나누고. 이 땅도 내 거라 생각 안 한다. 그냥 내가 잠시 맡아서 쓰는 거다."

덕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근데 그게 참 어렵네요, 삼촌. 이 세상은 그냥 그렇게 살기가 힘든 구조인 것 같아요."

외삼촌은 웃으며 말했다.

"어렵긴 하지. 근데 그게 사는 재미기도 하다. 다들 더 가지려 바쁜데, 나는 덜 가지려 애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더 가벼워진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안 하드나?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데, 뭐 그리 욕심을 부리겠노."

덕수는 스마트폰을 바라보다가, 문득 별거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삼촌 말 들으니까, 갑자기 이거 별거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외삼촌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야지! 근데 너 그거 진짜 잃어버리면 안 되겠지? 한동안 연락도 안 될 거 아이가."

덕수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그래도 뭐, 진짜 없어지면… 삼촌네 와서 며칠 지내야겠어요. 아무것도 없는 삶이 어떤 건지 한 번 경험해 보게요."

외삼촌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지!"

느티나무 아래로 저녁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덕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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