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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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내방
시인 심광일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시고
아빠는 회사로 병원으로,
동생은 이 모집에 맡겨져
눈물이 난다.
갑자기, 나 혼자
고 작았던 내 방이
사막처럼 넓어지고,
나는 콩알만큼 작아졌다.
어둡다, 그리고 무섭다.
전깃불을 켰는데도 어둡다.
밖으로 나가 아빠를 기다린다.
아직도 해는 머리 위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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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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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일 시인은 80세의 노구를 지닌 채 여전히 소년의 마음을 간직한 원로작가이다. 그의 삶은 동시와 동요, 나아가 시를 통해 순수성을 지켜온 노정이었다. 그는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을 토해낸 것'이다.
그는 한평생 어린이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순수한 정신을 유지해 왔다. 그의 삶과 작품은 미진微塵도 가까이하지 않고, ‘영롱한 이슬만 먹고 산 사람’처럼 맑고 투명한 감성의 결정체이다.
그렇기에 그의 시는 꾸밈없고 가식이 없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투명한 감정을 길어 올린다.
그는 마치 ‘무지개를 따러 다니는 작은 소년, 어린 왕자’와 같은 어른 어린이다. 그에게 시는 언어로 조탁된 구조물이 아니라, 보석함 속 옥구슬처럼 자연스럽게 빛나는 존재다.
'빈집 내방'은 한 아이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단순하면서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이 시가 지닌 미의식은 ‘순수함’과 ‘투명한 감각’에 있다. 그는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그 감정을 날것 그대로 전달한다.
시의 첫 연은 아이의 현실적 상황을 그린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시고
아빠는 회사로 병원으로,
동생은 이 모집에 맡겨져
눈물이 난다."
이 구절에서 화자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토로하기보다는 상황을 열거함으로써 독자로 자연스럽게 외로움을 체감하도록 한다. ‘눈물이 난다’는 말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아이의 솔직한 반응이다.
둘째 연은 내면의 변화를 담아낸다.
"갑자기, 나 혼자
고 작았던 내 방이
사막처럼 넓어지고,
나는 콩알만큼 작아졌다."
‘사막처럼 넓어지고’와 ‘콩알만큼 작아졌다’는 대비적 이미지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공간이 넓어졌다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고립을 뜻하며, 자신이 작아졌다는 것은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다. 이 부분에서 시인은 어린아이가 느끼는 두려움을 시각적 이미지로 환기한다.
셋째 연은 공간의 심리적 분위기를 표현한다.
" 어둡다, 그리고 무섭다.
전깃불을 켰는데도 어둡다."
여기에서 ‘전깃불을 켰는데도 어둡다’는 문장이 주는 감각적 효과가 두드러진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어둠이 아니라, 내면의 불안과 고립감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빛이 있음에도 어둡다는 감각은 어린아이의 불안이 단순한 외로움을 넘어선 깊은 공포로 확장됨을 시사한다.
마지막 연은 희망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 밖으로 나가 아빠를 기다린다.
아직도 해는 머리 위에 있는데.."
화자는 어둠에서 벗어나려 밖으로 나가 아빠를 기다린다. 그러나 해가 머리 위에 있음에도 여전히 기다림의 감정이 남아 있다. 이 구절은 아이의 마음속에 깃든 공허함과 불안을 더욱 강조한다.
심광일 시인의 '빈집 내방'은 유년기의 상실감과 두려움을 섬세하게 그려낸 시이다. 그는 복잡한 비유나 장황한 설명 없이, 아이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그의 시적 언어는 순수하고 명료하며, 불필요한 수사를 배제한 채 본질적인 감정을 투명하게 전달한다.
이 작품이 지닌 미의식은 ‘순수함’과 ‘직관적 감각’에 있다. 시인은 설명하지 않고 느끼게 한다. ‘사막처럼 넓어진 방’과 ‘콩알만큼 작아진 나’라는 대조적인 이미지는 한 아이가 느끼는 심리적 변화를 강렬하게 시각화한다. 또한 ‘전깃불을 켰는데도 어둡다’는 표현을 통해 불안이 환경적 요소만이 아니라 내면적 감각임을 부각한다.
요컨대, 심광일 시인은 평생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며, 그 결을 시 속에 그대로 담아왔다. 그의 시는 기교를 넘어선 진정성 그 자체이며, 어린 시절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진다.
'빈집 내방'은 이러한 그의 시적 세계를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로, 유년의 기억을 간직한 모든 이들에게 공감과 울림을 준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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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일 시인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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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너무 늦게 글을 쓰는 것은 아닌가, 나 같은 늙은이가 감히 한 시인의 맑은 마음 앞에서 무엇을 덧붙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시인의 시를 읽고, 저는 오랜만에 가슴이 먹먹해졌고,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펜을 듭니다.
저는 한때 글을 쓰던 사람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문학이 제 삶의 전부였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이 사명이었습니다. 한때는 저도 문장을 다듬고, 삶을 기록하며, 세상을 향해 작은 목소리를 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글이 점점 무거워지고, 한 줄을 적는 데도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이미 늙었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삼켜 버렸습니다.
퇴직한 뒤 저는 글을 쓰는 일이 줄어들었고, 대신 하루하루를 지팡이에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맞추려는 의지도 희미해졌습니다. 젊은 날에는 세상을 품으려 했고,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려 했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내버려 둔 채, 그저 조용히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시인의 시 '빈집 내방'을 읽었습니다.
작은 방에 홀로 남겨진 아이의 고독, 낯선 공포, 그 공간을 채우는 적막한 시간이 제 마음을 찔렀습니다. 그 아이는 바로 젊은 날의 저였습니다. 엄마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던 어린 시절의 저였고, 세상에 홀로 던져졌다고 느꼈던 순간의 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노년의 저이기도 합니다.
'사막처럼 넓어진 방'이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숨이 턱 막혔습니다. 그 공간에 남겨진 것은 단순한 고독이 아니라, 점점 작아지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나는 콩알만큼 작아졌다'는 아이의 고백이, 왜 이렇게 가슴을 후벼 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나이 든 제가 늘 느끼던 감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아빠를 기다리며 밖으로 나가는 아이의 모습에서 저는 희미한 희망을 보았습니다. 아이는 무서웠지만, 어둠 속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해는 머리 위에 있다고 했지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저도, 제 방 안에서 혼자 어둠을 키우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전깃불을 켜도 사라지지 않는 어둠, 그것은 결국 제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나도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올해로 80대 중반입니다.
심 시인께서도 80줄이신 것 같은데도 여전히 ‘무지개를 따러 다니는 작은 소년’처럼, 세상을 향해 시를 써 내려가고 계십니다. 저는 나이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살고 있었는데, 시인께서는 오랜 세월을 지나오셨으면서도, 여전히 세상을 맑은 눈으로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저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시인께서는 어떻게 늙어가고 계신가요? 아니, 어쩌면 시인께서는 늙지 않으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순수한 시들을 보석함 속 옥구슬처럼 간직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저는 너무 쉽게 늙어버렸습니다. 시를 쓰지 않는 순간부터, 저는 늙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도 다시 펜을 들어볼까 합니다.
젊은 날에 썼던 그 치기 어린 문장들은 이제 더 이상 쓸 수 없겠지요. 그러나 시인의 시를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시는 거창한 수사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진실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저도, 지금의 저를 담은 글을 다시 써볼까 합니다. 손이 떨리고, 문장이 버겁게 느껴지더라도 말입니다.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이 편지를 쓰는 지금 이 순간, 저의 마음은 오랜만에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시인의 시가 제 마음을 두드려 깨워주었기 때문입니다. 빈집 내방 속의 아이처럼, 저도 다시 빛을 향해 걸어가려 합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아름다운 시를 써 내려가 주십시오.
늦게나마 다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한 늙은이가
깊은 존경을 담아 드립니다.
- 당신의 시를 읽고 희망을 얻은 노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