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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의 눈동자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Mar 09. 2025








                작은 새의 눈동자



                           장화백




커튼의 틈새로 들어온
희미한 여명의 빛은
허공을 가로질러
사물에 닿는다.
작은 새가 잠든
이 시간은
아직 적막하기만 하다.
양면성을 지닌
다가올 시간을
예단하고
상상하는 것은
더 이상
기대에 찬
가슴 뛰는 일이 아닌
연못에 가라앉은
지난 계절의 마른 잎새의
희망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물에 잠긴 잎새가 지닌 유일한 가능성은 순환고리에 기대어
부토 속에서 자라나는
빛나는 생명력일 것이다.
모두가 외면한
대지의 모퉁이 틈새에서
자라나서
하늘을 향해 오르는
희망찬 생명력을
바라보는 관찰은,
작은 위안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충만한 에너지가
된다.
여전히
작은 새의 노래가 그립기만 한 날이다.
이제
비상을 멈추고
따뜻한 둥지 안에 내려앉아서
투명하고 깊게
빛나는
작은 새의
검은 눈동자안에
머물고 싶은 시간이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장화백의 마지막 단상 속 빛과 순환의 철학






장화백의 시 '작은 새의 눈동자'는 삶의 마지막 길목에서 남긴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희미한 여명의 빛이 사물에 닿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시는 암투병을 하며 버겁게 삶을 살아가는 장 화백의 섬세한 시선을 반영한다. 생과 사를 가르는 경계선 위에서, 그는 다가올 시간을 예단하지만 더 이상 기대에 찬 설렘으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이는 죽음을 앞둔 자의 덤덤한 체념이자, 동시에 남겨진 삶에 대한 정직한 성찰이다.

가장 인상적인 표현은 “연못에 가라앉은 지난 계절의 마른 잎새”이다. 낙엽이 물에 잠긴다는 것은 소멸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분해되어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영양분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화백은 자신의 죽음이 순환의 일부이며, 그것이 새로운 생명력으로 이어지리라는 깨달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부토 속에서 자라나는 빛나는 생명력”이라는 구절은, 그가 예술을 통해 남긴 가치가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싹을 틔울 것임을 암시한다.

장화백의 작품은 늘 대지와 빛, 그리고 자연의 조화를 탐구해 왔다. 그는 캔버스 위에서 색과 형상을 통해 생명의 순환을 그려내며, 사물의 이면을 통찰하는 독창적인 미학을 구축해 왔다. 이 시에서도 그는 여전히 관찰자로서 자연의 섭리를 바라본다. “모두가 외면한 대지의 모퉁이 틈새” 에서 자라나는 생명을 바라보는 행위는, 생의 끝에서도 여전히 창작자로서의 시선을 잃지 않는 그만의 철학을 보여준다.

시의 후반부에서 그는 더 이상 비상을 꿈꾸지 않는다. “이제 비상을 멈추고 따뜻한 둥지 안에 내려앉아서”라는 구절은 긴 노정을 마무리하며 평온한 안식처를 찾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그는 외로움 속에서도 자연의 질서를 따르며, 마지막까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마주한다.

장화백의 이 시는 단순한 죽음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지속성과 순환에 대한 철학적 깨달음이며, 예술가로서의 마지막 언어다. 그는 절망 대신 희망을 말하고, 소멸이 아닌 변화를 노래한다. 그의 예술과 삶은 결국 사라짐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력으로 남을 것이다.







사랑하는 장화백에게





장화백,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부디 조금이라도 따스한 온기가 가슴에 스며들길 바란다.

어느덧 우리는 오랜 세월을 함께 걸어왔다. 서로의 삶을 지켜보며 기쁨도 나누고, 때로는 고통도 함께 나누며 살아왔다. 언제부터였을까? 서로의 존재가 당연하게 느껴질 만큼 깊이 스며들어, 말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된 것은.

 이제는 나의 마음이 너무 아프다.
너무도 오랫동안 곁에 있어 준 네가 아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이 현실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자네의 아픔을 대신 짊어질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러고 싶다.

장화백, 부디 포기하지 마라.
삶이 우리에게 어떤 고난을 안겨주든, 아직은 함께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겠니? 자네와 나는 함께할 날들이 너무도 소중하고, 우리는 여전히 해야 할 이야기가 많다. 자네의 그림 속에 담긴 빛과 색처럼, 자네의 삶도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줄 수 있다. 그러니 부디 살아내자.

나는 요즘 기도하는 시간이 더욱 길어졌다.
어떤 날은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또 어떤 날은 네가 좋아했던 풍경을 떠올리며 두 손을 모은다. "장화백을 지켜주소서. 그가 삶을 놓지 않도록, 그가 다시 붓을 잡고 웃을 수 있도록, 우리 함께한 날들이 끝나지 않도록, 부디 그를 살려주소서."라는 기도를 매일, 매 순간 올린다.

장화백, 네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네가 남긴 작품 하나하나가, 네가 지나온 세월이, 그리고 네가 베풀어온 따뜻한 마음들이 이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자네는 그 누구보다도 빛나는 사람이야. 그러니 부디, 더 오래 머물러 줘.

우리는 함께 더 많은 날들을 살아야 한다.
봄이 오면 꽃구경도 가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닷가에서 자네의 스케치를 지켜보고 싶다. 가을이면 단풍 아래에서 차를 마시며 지난날을 이야기하고, 겨울에는 창가에 앉아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삶의 깊은 이야기를 나누자. 그렇게 자네와 함께할 모든 계절을 다시 꿈꾼다.

장화백, 자네와 약속해 줄 수 있겠니?
끝까지 생을 놓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힘을 내보겠다고, 그리고 우리의 우정을 오래도록 간직하며 남은 날들을 함께 살아가자고. 나는 끝까지 자네의 곁에서 너를 응원할 것이다. 자네의 손을 잡고, 네가 다시 일어서기를 기다릴 것이다.

나는 믿는다. 자네는 이겨낼 거야.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견뎌왔듯이, 이번에도 반드시 극복할 거야. 그러니 제발, 내 기도가 자네에게 닿기를, 자네의 가슴속에 다시 생의 불꽃이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사랑하는 장화백, 자네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청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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