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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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스님의 무소유 유언은
시인 백영호
장례식은 하지 마라
수의도 짜지 마라
평상시 무명옷 그대로 입혀라
관은 짜지 마라
강원도 오두막의 대나무 평상 위에
내 몸을 다비해라
사리도 찾지 마라
그리고
남은 한 줌의 재는
그 오두막 뜨락 꽃 밑에 뿌려라.
길상사 거소에서
2010.3.11. 입적
세수 78세 유언으로
법정스님 열반 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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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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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이 백영호 시인의 손에 닿는 순간 모두 시가 된다. 이 '무소유 스님의 무소유 유언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시는 무소유의 철학을 몸소 실천한 법정 스님의 마지막 유지를 담담한 어조로 전달하며, 시인의 미의식과 삶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이 시는 법정 스님의 삶과 죽음을 통해 ‘무소유’의 가치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장례를 치르지 않고, 화려한 수의를 입히지 않으며, 사리를 찾지도 않는다는 유언은 생전에 지향한 가치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일관됨을 보여준다. 이러한 태도는 백영호 시인의 시적 미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는 자연과 삶의 본질을 관조하며, 불필요한 장식 없이 맑고 담백한 언어로 진실을 표현한다. 이 시에서도 군더더기 없는 표현과 담백한 어조가 법정 스님의 삶의 철학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
법정 스님의 유언은 단순한 죽음의 과정이 아니라, 자연으로 회귀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강원도 오두막의 대나무 평상 위에 내 몸을 다비해라"는 구절에서 자연 속에서 소멸하는 몸의 운명을 암시하며, "남은 한 줌의 재는 그 오두막 뜨락 꽃 밑에 뿌려라"는 마치 자연의 순환 과정처럼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백영호 시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자연 친화적 미의식과 연결된다. 그는 자연을 인간 삶의 본질적 공간으로 바라보며, 거기서 얻는 깨달음을 시로 승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 시 또한 법정 스님의 마지막 길을 자연 속에서 완성하는 장면을 통해 백영호 시인의 시적 감각을 보여준다.
백영호 시인은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문체를 구사한다. "길상사 거소에서 2010.3.11. 입적"과 같은 서술은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채 기록의 형태로 표현되지만, 이로 인해 더욱 큰 울림을 준다. 담담한 어조 속에 담긴 깊은 애도와 경외심은 시인의 미학적 태도를 보여주며, 과장 없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백영호 시인의 미적 가치관과 맞닿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법정 스님의 삶은 무소유를 실천하는 과정이었으며, 그의 죽음 또한 그 철학을 실현하는 순간이었다. 시인은 이 과정을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오히려 더욱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불교적 무소유 철학과 자연 속에서의 안식을 통해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는 이 시의 태도는, 백영호 시인이 일관되게 지향하는 ‘본질을 꿰뚫는 시선’과 조응한다.
이 시는 법정 스님의 마지막 유언을 통해 무소유의 철학이 삶과 죽음에 걸쳐 완성됨을 보여주며, 백영호 시인의 가치관과 미적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절제된 어조, 간결한 표현 속에서도 법정 스님의 생애와 죽음이 지닌 깊은 의미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며, 죽음마저도 삶의 연장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관조적 시선이 돋보인다. 불필요한 장식 없이 본질을 꿰뚫는 이 시는 백영호 시인의 시적 미학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