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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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변 쑥 캐는 날
자인 / 이 종식
우리 동네에도 봄이 왔다.
오늘은 마을의 아이들이 저마다 작은 광주리를 하나씩 들고 강변 둑으로 나섰다.
연로하신 할머니와 부모님께 쑥절편을 해드릴 생각에,
영선 언니의 지휘 아래 숙희, 영호, 경숙 넷이 함께 길을 떠났다.
아침을 먹고 둑에 나가 부지런히 쑥을 뜯었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손이 바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손목시계를 보니 벌써 정오, 점심시간이다.
각자 가져온 바구니를 앞에 놓고 살펴본다.
큰언니 영선은 한 소쿠리를 가득 채웠다.
욕심 많은 숙희도 거의 한 소쿠리를 채웠다.
사내아이 영호는 강물에 돌을 던지며 물수제비 뜨는 놀이에 빠져 있었고,
누나들과 동생들에게 장난을 치느라 소쿠리는 텅 비었다.
막내 경숙이는 옷에 흙이 묻을까 조심하며 쑥을 뜯느라 겨우 반 소쿠리를 채웠다.
큰언니가 가져온 쑥이면 절편을 두 되쯤 만들 수 있을 것 같고,
둘째 숙희 것도 한 되쯤은 나올 듯하다.
개구쟁이 영호와 새침한 경숙이는 둘이 합쳐야 겨우 한 되가 될까 말까.
그래도 사내대장부라며 영호는 동생 경숙에게 자기 것을 내어준다.
화창한 봄날, 마을의 아이들이 강변 둑에서 쑥을 캐왔다.
그들을 반기는 부모님들, 벌써 쑥절편의 향긋한 맛을 상상하며 기분이 들뜬다.
“어서들 오너라, 애썼다.”
반가운 목소리가 마당 가득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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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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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인 이종식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삶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일상의 소소한 경험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의 글은 거창한 사유나 복잡한 구조를 따르기보다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을 담백하게 풀어내어 독자가 자연스럽게 공감하도록 만든다. 특히 유년 시절의 추억과 공동체적 삶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인간 본연의 순수함과 따뜻한 연대의 정신을 강조한다.
'낙동강변 쑥 캐는 날'에서도 그의 이러한 가치철학이 잘 드러난다. 이 글은 단순한 일상의 기록이 아니라, 봄날의 생기와 가족 간의 정을 담아낸 서정적인 작품이다.
쑥을 캐는 아이들의 모습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놀이와 협동의 과정이며, 궁극적으로는 가족과 함께 나누는 기쁨으로 귀결된다. 이 과정에서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형상화하고, 경쟁과 배려가 공존하는 인간관계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그의 미의식은 이러한 일상의 순간을 아름답게 포착하는 능력에서 빛난다. 특별한 미사여구 없이도 소박한 삶의 한 장면을 감각적으로 전달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일깨운다. 작품 속에서 자연과 인간은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계절의 변화 속에서 삶의 깊이가 더해진다. 또한, 아이들의 놀이와 어른들의 기대, 따뜻한 환영의 순간을 통해 정서적 리듬을 형성하며, 글이 지닌 서정성을 더욱 부각한다.
이종식 작가는 단순한 회고적 글쓰기를 넘어, 삶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과거가 단순한 추억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태도와 철학으로 확장된다. 이는 우리가 잊고 지낸 순수한 감정을 되찾게 하고,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발견하는 법을 일깨운다.
요컨대, 이종식 작가의 작품 세계는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삶의 미학을 추구하며, 인간적인 따뜻함과 자연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그려낸다. 그의 글이 오래도록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삶의 철학과 미의식이 감상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