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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Jul 27. 2023

2023년 7월 14일 식도락 음식일기

별이 쏟아져 내리는 한여름밤에 수제비 먹는 풍경

어릴 적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밀농사를 지었었다. 가을이 되어서야 벼를 수확하여 쌀을 얻을 수 있기에 여름동안 먹을 양식으로 밀과 보리는 요긴한 쌀 대체양식이었다.                                                                                                                                 

 밀을 타작해서 윗마을에 사는 친구네 방앗간에 가서 밀가루도 빻고, 국수도 만들어 와서 여름 내내 먹었다.

빻아 온 밀가루로 엄마는 맛있는 술빵을 쪄서 대소쿠리에 담고 삼베 보자기를 덮어 시원한 곳에 걸어두고 밭일을 나가셨다. 큰 콩이 박혀있는 삼각형의 노란 큰 술빵은 가게가 없었던 시골의 우리들에게는 요긴한 간식이었다. 큰 콩이 맛있어서 콩만 쏙쏙 빼먹기도 했다.


엄마는 동네에서도 솜씨 좋고 야무지기로 소문이 났었다. 우리 집의 시래깃국과 다른 집의 소고깃국 중 선택해서 먹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엄마의 시래깃국을 택한다고 할 정도이다. 또 그 당시에 친척집의 결혼잔치상을 차리는데 늘 엄마가 모든 것을 진두지휘 해서 멋진 상을 차려 냈고 그럴 때마다 친척 어르신들은 엄마의 솜씨를 칭찬하셨다. 


여름이 되면 우리는 일찌감치 마당에 큰 멍석을 깔고 그 가운데  상을 펴고 밭일을 마치고 올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는 늦을 때에는 약간의 해가 진 뒤에 오셨는데 오시자 마자 바로 마당 한편에 벽돌로 만들어 놓은 화구에 백솥을 걸고 수제비를 끓일 준비를 하셨다. 아버지는 조금 떨어진 곳에다 약간 마른풀로 더미를 쌓아 모깃불을 놓을 준비를 하셨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유일한 문명인 라디오를 켜고 노래도 듣고 연속극도 들으면서 재잘대며 맛있는 수제비를 기다렸다.


구수한 수제비 국물이 코를 자극하고 하늘에는 별이 총총 빛나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세련된 목소리들, 그리고 매캐한 연기를 마시면서도 우리는 깔깔거리며 여름밤의 만찬을 즐길 준비를 했다.


엄마는 수제비를 뜯을 때 맨 나중에는 우리 딸들의 수만큼  수제비를 크게 만들어서 각자의 그릇 위에 한 개씩 올려 주셨다. 이름하여 수제비 떡이다. 수제비 떡은 남은 수제비 반죽을 손바닥만 하게 만든 수제비다. 크기만 다를 뿐 일반 수제비와 똑같은 맛인데도 그 시절 우리에게는 특별했다. 누구의 것이 더 큰지 비교하면서 작으면 괜히 징징거렸지만 엄마의 '다음에 더 큰 것 해 줄게'라는 말에 바로 먹는 것에 집중했다. 


엄마의 수제비는 얇고 정말 부드러워서 그냥 입에서 목구멍으로 바로 넘어갔다. 

큰 멸치 몇 마리 넣고 다시물을 뽑고 거기에 감자, 대파 숭숭, 갓  따 온 호박, 그리고 국간장이 전부인 것 같았는데 정말 맛있었다. 분쇄기가 없던 시절, 항아리 뚜껑에 말린 홍고추와 마늘, 물을 조금 넣어 몽돌을 굴려 만든 양념으로 국물을 자박하게 담근 열무김치가 반찬으로는 전부였지만 지금도 떠올리면 혀 끝에 침이 고인다. 적당히 나는 밀가루 냄새도 그렇고.

 

 시골에서는 대문을 열어놓고 지내거나 아예 대문이 없는 집이 많았기에 이런 풍경은 동네를 걸어 다니다

보면 다른 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요즘 장마철이라 날씨가 무덥다. 

50여 년이 지난 오늘 나는 엄마가 가족들을 위해 끓여주신 수제비와 그날을 추억하며 수제비를 끓일 준비에 재료를 준비하는 손놀림이 재빠르다.

오늘 우리 집 수제비는 '단호박 수제비'다.


<단호박 수제비 만들기>

1. 단호박 1/4개, 소금 1작은술, 물 한 컵(종이컵) 넣고 믹서기에 넣어 갈아준다. 단호박은 삶은 것, 생 것 다 사용 가능하다. 생으로 사용할 때에는 더 곱게 갈아주면 된다.

2. 밀가루(수제비용) 400g에 1을 조금씩 넣어가며 반죽을 하다가 손에 많이 붙지 않을 정도가 되면 10분 정도 더 치대 준다. 너무 되지 않으면 된다




1. 다 된 반죽을 비닐백에 넣어 냉장고에서 2시간 이상 두었다 사용하면 된다.

2. 단호박을 갈아 넣은 수제비 반죽은 색감에서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1. 집에서 준비할 수 있는 야채들을 활용하면 된다.

2. 오늘 준비한 야채는 애호박, 당근, 자색양파, 감자 등은 좋아하는 재료는 많이 넣고, 싫어하는 재료는 적게 넣어도 된다. 마늘 5톨, 대파 1대를 준비해 둔다.

3. 냄비에 야채 육수(멸치, 다시마, 표고버섯, 무, 대파잎, 양파를 넣고 끓임) 2000ml, 준비한 야채, 국간장을 넣고 물이 끓으면 반죽을 얇게 펴서 떼어 넣으면 된다. 


1. 수제비를 다 뜬 후 준비해 둔 생콩가루, 생들깨가루를 2 큰술씩, 대파, 찧은 마늘을 넣고 수제비가 위로 떠오르면 단호박 수제비가 완성된 것이다.

2. 간의 세기는 입맛대로 가감을 하면 된다.




1. 오늘 나도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준 수제비 떡을 만들어 그릇 위에 담아 주었다. 


식구들의 반응 '와! 이게 뭐야?' '수제비 떡이야'








장소도 다르고 함께 먹던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자매들도 멀리 떨어져 지내기에 풍경은 다르지만,

지금도 기억해 낼 수 있는 그 맛을 떠올리며 오늘은 나의 가족들을 위해 수제비를 끓여 함께 먹으면서

내가 경험했던 아름다운 한여름밤의 풍경을 전해 주었다. 


늘 피드백으로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딸은 오늘도 표정과 목소리로 엄마의 추억에 상상을 더하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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