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의 개성화과정(성공에서 삶의 의미)을 잘 극복해야 노년기가 행복하다
A 선배와 C 선배는 70~80세여서 노년기로 가는 과정에 있는데, A 선배는 기피 대상이고 C 선배는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고 베푸는 삶을 살고 있다.
무엇이 A 선배와 C 선배의 차이를 만들었을까?
갑자기 동창으로부터 A 선배와 식사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A 선배와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고 일방적으로 날짜와 시간을 정해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A 선배 퇴임으로 만든 식사 자리라서 의무감으로 참석했다. 그런데 A 선배는 아직도 본인이 현직에서 사장에 재직 중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식사 시간 내내 본인이 100% 훈시조로 이야기를 하고, 후배들에게는 한마디도 이야기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다른 선배를 비난하고 욕도 했다. 자신이 동문회에 이바지한 최고라는 것이다. 말도 함부로 하고, 후배를 아랫사람 대하듯 하대를 한다. 모임이 짜증 나고 피곤했다. 선배가 떠나고 나서 모임을 주선한 동창에게 다들 한마디 한다. 다시는 이런 자리에 초대하지 말라고 강하게 이야기한다. 나도 다시는 A 선배와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점에서 과장으로 근무할 때 지점장을 하신 C 선배와의 이야기이다.
C 선배가 퇴임한 지 5년 정도 지났는데, 전화가 와서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과 식사하자고 하셨다. 그때 같이 근무했던 직원 여덟 명이 모였다. 특별한 말씀을 하실까 했는데 그냥 현직에 있을 때 고생한 직원에게 밥을 사고 싶다고 하시며, 오늘 밥값은 내가 내겠다고 하신다. C 선배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듣기만 하셨다. 후배들은 다들 현직이라 직장 이야기만 하다가 식사가 끝났다. 그 뒤에 한 번 더 전화가 와서 상가를 하나 샀는데 그 상가가 잘 되어서 돈을 벌었다며 고기를 사신다고 한다. 8명에게 다 연락해서 고기 맛집에 갔는데, 현직에 있는 지점장들이 돈을 내려고 하니 부득불 본인이 내신다고 일찍 카운터에 가서 계산하셨다. 지금은 80세가 넘어섰는데, 가끔 전화가 오면 8명 모두 흔쾌히 참석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지혜로워 질까? 아니다.
지혜로운 노년도 있지만, 많은 경우 오히려 고집이 세어져서 편협하고 자기주장만 강한 노년도 많다.
노년에 고집이 세어지는 이유는 노화로 인해 뇌의 연결망인 시냅스가 줄어들어 사고가 경직되기 쉽다고 한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많아져서 내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육체적인 노화가 진행되면 자존감(자신을 존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마음)이 떨어져서 오히려 자존심이 강해진다.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사람은 인정받지 못하거나 억압된 경험이 쌓여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고집스러운 태도 보인다.
누구나 중년기 위기를 맞는다.
'중년기 위기'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심리학자 엘리엇 자크(Elliott Jaques)이다. 자크는 196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중년기 위기(Midlife Crisis)'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해서 중년기에 겪는 심리적 변화를 설명했다. 그러고 보면 60년 전에도 중년기에 심리적, 정서적 변화와 갈등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년기 위기의 특징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아내, 자녀, 친구, 직장에게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라는 혼란을 겪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지금까지 내 인생은 실패하였다’라며 체념과 실패감에 빠지기도 한다.
어떻게 중년 사춘기를 보내야 할까?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이자 분석심리학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중년기에 누구나 심리적, 정서적으로 위기를 겪으며 이 시기에 개성화 과정을 겪는다고 한다. 즉 인생의 전반기를 태양이 떠오르는 시간, 후반기를 태양이 지는 시간에 비유했다. 전반기는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고 강화하는 시기라면, 후반기는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고 통합하여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는 시기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성화 과정을 주로 퇴직 후에 겪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직장은 단순하게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직장의 지위가 나를 대표하고 자존감을 형성한다. 그래서 평생 직장에 몰입하게 되며, 특별한 취미 활동을 하지 못한다. 빡빡한 근무 일정에 주말에는 사교 골프도 근무의 연장이다. 그런데 퇴직으로 인해서 그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단순하게 경제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으며, 정체성이 흔들리게 된다.
퇴직하고 나서 많이 겪는 현상이 정체성의 혼란과 자존감이 추락이다. 그동안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직장을 떠나야 하고, 경제력이 없어지면 가족에게 홀대받는다는 비참함도 가지게 된다. 모든 것을 혼란스럽다. 그래서 개성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러나 누구나 개성화 과정을 잘 겪는 것은 아니다.
개성화 과정이란 인생 전반기의 성공과 성취의 삶에서 인생 후반기에 의미 중심의 삶으로 바뀌는 것이며, 전반기에는 경제력이 중요했다면 후반기에는 인간관계가 중요한 것으로 변화되는 과정이다.
인생의 전반기에 소중했던 것들이 인생의 후반기에는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돈과 사회적인 지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인생에는 가족과 친구의 따뜻한 관계도 있고. 의미 있는 사회봉사도 있고 다양한 취미 활동도 있다. 직장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이러한 개성화 과정을 잘 극복하면 지혜로운 노년기를 맞이할 수 있다. 지혜롭게 생각하고, 남에게 베풀며 모든 사람이 만나고 싶어 하는 노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개성화 과정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 편협하고 고집 센 노인으로 변모할 수 있다. 친구나 동료뿐 아니라 가족에게서도 손절되어 사회에서 고립된 채 독거노인으로 외롭게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