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직업일기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세상의 이치랄까? 이런 세상의 이치를 새삼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하면서 더욱더 뼛속까지 깊이 깨닫고 있는 나는 현직 외국항공사승무원이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그 다른 어떤 직업들보다도 장점과 단점이 매우 뚜렷하다. 그래서 그렇게 어렵게 승무원이 된 후, 모든 승무원들이 이 명확한 장단점으로 인해서 그 다음 인생의 챕터를 어떻게 써 내려가야하는지, 과연 그만 두고나서 내 스스로가 이 직업이 주는 장점들과 비행을 그리워하지는 않을 지를, 몇 개월은 좋을 지라도 그 이후에 펼쳐질 새로운 미래에 대해 두렵고 후회하지는 않을 지를 짬이 차고나면 매 순간마다 걱정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고.
승무원이 주는 장점은 무엇이 있을까? 여러분들도 다 알겠다만, 현직으로서 좀 더 자세하게 정리해보자면..
첫째. 해외를 밥 먹듯이 간다. 그것도 남들은 몇 백만원을 투자하고 몇 개월 전에 계획해서 떠나는 여행이 일상이다. 그러니 내가 밥 먹고 내가 소비하고 싶은 것에만 돈을 투자하면 그만!
둘째.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다양한 국적의 승객들, 동료들. 이들과 함께 일하고 얼굴을 부대끼다보니 내 경험의 레벨과 폭이 깊어지고 넓어지면서 생각도 많이 우물 안의 개구리에서 벗어나게된다.
셋째. 비행이 끝나면 끝. 일을 굳이 내 오프데이와 다음 비행에 끌고 올 필요가 없다. 새롭게 떠나는 비행은 그 날만 참고 버티면 끝이다. 날 괴롭히고 빡치게 만든 승객과 크루도 그 비행만 참으면 다시는 볼 일이 거의 없다. 휴식 시간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휴식으로 즐길 수 있다.
넷째. 기타 다른 사무직이나 일에 비해서 일하는 시간이 적다. 지금까지 한 달에 많이 비행해봐야 120여시간이었다. 이것도 크루들 사이에서는 어마어마한 시간이고, 평균 많이 비행해봐야 한 90-100시간여정도이다. 호텔과 미술관에서 근무했을 당시를 생각해보면, 하루에 9시간을 근무한다고 가정하면
9 (하루 근무시간) X 5 = 45시간 (일주일 총 근무시간) X 4 (한 달) = 180 시간이다.
그러니 승무원으로 근무하는 시간은 정말 작은 것이다. 작은 것에 비해서 버는 돈이 초봉치고는 높으니까 괜찮은 직업임에는 맞다.
다섯 째. 한 달에 비행하는 시간도 적은데, 서비스가 끝나면 여유가 넘치는 시간이 많다. 서비스가 끝나면 승객들이 따로 뭔가를 요청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여유있는 시간을 보낸다. 화장실 청소를 한다거나 기타 다른 일들을 하는데 이게 강도가 그렇게 높지가 않다. 서비스가 끝나면 끝. 응급상황이나 큰 위급상황은 일어날 일이 드물기때문에 이를 제외하고는 어쩌면... 여유가 넘친다.
여섯 째. 노는 것도 돈을 번다. 해외에 나가서 지내는 체류기간에도 승무원들은 돈을 번다. 식사비용 (Meal Allowance)도 그냥 놀면서 버는 것이다. 내가 해외에 나가서 엄청 비싼 음식을 매번 세 끼 챙겨먹는 것도 아니니, 내가 쓰는 돈보다 더 버는 것이다. 그리고 장비행으로 가게되면 크루들 역시 법으로 쉬는 시간이 정해져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자면서 돈 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서비스직에서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최고봉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초봉이 높다는 것이다.
일곱번 째. 다른 직업보다 오프데이가 많다. 앞서 네번째 장점 이유에 언급했듯, 승무원들의 한 달 근무시간은 그렇게 높지가 않다. 그렇기에 오프데이도 많은데, 그럴 때 본인을 위한 시간을 갖기가 참 좋다는 것이다. 오프데이에 친구들이랑 시간 맞춰서 스케줄을 변경해서 근처 국가로 여행을 가는 크루들도 많고, 나처럼 블로그에 일기를 쓰는 사람들도 많다. 공부하는 크루들도 많고. 그러니 본인을 위한 시간을 갖기에는 참 좋다.
여덟번 째. 스케줄은 온전히 내꺼. 남들 눈치 볼 필요없이 내가 받은 스케줄은 내가 관리하게 된다. 호텔에서 근무했을 당시에도 스케줄 근무였으나, 내가 일이 생기거나 했을 때 이미 정해진 스케줄을 바꾸기란 참 어려웠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눈에 뻔하게 피해가 가는 것이 보이니 맘도 참 불편했고. 근데 승무원의 스케줄이란 원하는 크루들끼리 맘만 맞으면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본인들의 자유의지로 바꾸는 것이니 상호간의 다음 스케줄 시간과도 맞는다면 돈 워리. 회사에서 내 스케줄을 준 이상 이는 내 것이 되므로 타인 눈치보면서 바꿀 필요가 전혀 없다.
이렇게가 내가 여러분들께 간단하면서도 굵직하게 언급할 수 있는 승무원의 장점이다. 물론 더 깊게 파헤쳐보자면 더 많겠다만 내가 느끼는 것들만 전달해주고 싶었다.
정리하고보니, 승무원의 장점이라하면 "업무의 자율성과 자유가 타 직업보다는 높다는 것 + 해외여행이라는 특수한 환경" 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