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비행일기
이전에도 언급했었지만, 국내항공사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외항사는 팀 비행이 아니다. 매번 비행마다 함께 일하는 크루들이 바뀐다. 그래서 매 븨핑의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지만, 이렇게 크루가 바뀌는 비행의 재밌는 점 중의 하나가 뭐냐고 묻는다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번 만났던 크루를 다시 만나서 함께 비행을 가는 것이다. 아, 만약에 그 크루가 별로였다면 당연히 제기랄 shit 이 되겠지말 말이다. 허허...
근데 웃긴 건, 뭐 하루나 이틀 뒤에 다시 만나서 비행을 하면 당연히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서 편하겠지만, 다시 크루를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몇 달이 지나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1. 얼굴은 기억하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나서 크루리스트를 보고 아는 체 하는 경우.
2. 이름은 기억나는데 얼굴이 기억이 안나서 가물가물한 경우... (내가 너 봤었음?)
3. 진심 이름이고 얼굴이고 하나도 기억 안남. 제일 난감한 경우는 상대방은 나를 기억하는데 내가 상대방을 기억을 못하는 경우다.
4. 나는 상대방을 싫어해서 모르는 척 했더니만 상대방은 나를 기억하는 경우 (야, 눈치챙겨 ^^)
이렇게 다양한 상황이 발생되는데, 나의 경우에는 우리 한국인 동기 배치들에 비하면 이전에 함께 비행했던 크루들을 자주 만났다. 지금까지는 굉장히 껄끄러웠던 선임 말레이시아 여자 승무원을 제외하고는 다들 좋았고, 잘 지냈던 크루들이라서 항상 반갑게 인사하고 다가갔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을 공유해보자면, 일단 위에서 언급했던 굉장히 껄끄러웠던 선임 여자 승무원 이야기를 먼저 들려드리려고한다. 내가 왜 별로 안 좋아하냐면, 이 사람이 유일하게 내게 평가 점수를 굉장히 낮게 줬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수습기간에는 랜덤으로 매 비행마다 해당 비행의 상사에게 내 행동, 장점, 단점 등에 대해서 평가를 받게 된다. 너무 낮은 점수를 받게 되면, 나이 엄마같은 존재이신 슈퍼바이저분께서 확인 후에 전화가 오거나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수도 있고, 이 부분이 나의 수습기간의 연장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어이가 없었던 부분은, 해당 상사가 나의 서비스랭귀지, 승객을 대하는 태도, 장점 및 단점 등을 함께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와 함께 일을 했던 선배 여자의 말만 듣고 평가를 주는 거니 참 어이가 없다고 말을 할 수 밖에... 아무튼 나에게 좋지 않은 점수를 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9월 초 였는데, 며칠 전에 이 여자를 다시 만난 푸켓 비행을 했었다. 하아.. 어찌나 비행을 떠나기 전부터 쫄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하는 법. 일단 모른 척하고 비행에 들어갔는데, 비행기 탑승 전에 그녀가 나에게 우리 함께 비행했었지? 라고 말하면서 말을 건넸다. 아뿔싸. 기억력하나는 좋구먼. 억지로 하하 웃으면서 맞다고 말하면서 웃으면서 최대한 아부를 떠는 작전을 펼쳤었다. 그때 너가 준 피드백 정말 고마워. ^^ (1도 안 고마움ㅋ) 너가 준 내용 하나하나 읽어보고 다음 비행부터 적용하고 행동하려고 많이 노력했었어. 정말 그 이후로는 비행도 많이 편해지고 자신감도 얻었어. 정마 고마웠다고 다시 만나면 말하고 싶었어. 도와주고 피드백줘서 고마워 :) (응~아니야) 라면서 열심히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그녀는 그렇냐면서 이것저것 나에게 또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그녀는 전직 특정 비행기 기종의 트레이너였다고한다. 그래서 그렇게 깐깐한 평가를 줬던거고. 아무튼 푸켓에서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에서, 최대한 웃으면서 비행했었는데 그걸 보고 그녀가 다른 크루에게 "와, 봐봐. 내가 준 피드백을 잘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착한 크루네. 아주 좋아" 라면서 웃으면서 크게 칭찬해줬었다. 하하.. 고맙다 아줌마.. 그러면서 속으로 나는 계속 이번에도 평가를 또 받으려나.. 제발 받지 말아라 라면서 긴장하며 일했었다. 다행히 이번 비행에서는 평가는 받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확실히 저번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잘했다고 칭찬해줬었다. 그러면 된 것이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제발 제발 우리는 다시 안 만났으면 좋겠어 아줌마.
나머지 한 크루는 남자 크루였었다. 그와 함께 호주 비행을 갔었는데, 대뜸 그가 나에게 "야, 너 나 기억안나?" 라는 것이다. 그래서 에? 너? 왜? 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니까 그가 말했다. "너, 첫 실습비행 인천 갔었잖아. 그때 나랑 같이 갔었잖아. 기억 안나니? 나는 너 이름이랑 얼굴이랑 다 기억하는데 너무하네?" 라고 말하는 것이다. ㅋㅋㅋㅋ 순간 식은땀이 났었다. 정말 기억이 하.나.도 안났었으니까. 그래서 "아 정말? 미안해.. 기억해줘서 고마워 근데 나 너 기억 하나도 안 나. 가끔 나는 어제 내가 점심으로 뭐 먹었는지 기억도 못해." 라고 말하니까 둘다 머쓱해서 웃었다. 그러자 그는 괜찮다며, 원래 실습비행은 긴장해서 기억이 하나도 안난다면서 말했었다. 젠장... 그러고는 비행이 끝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에게서 왓츠앱으로 문자가 하나 왔었다.
정확하게 그가 나와 첫 만남을 가졌었던 비행의 포지션이랑 어떤 비행이었는지 적어서 보여준 내용이었다. 정성이다 정말.. 아무튼 그랬구나 하면서 너와 다시 만나서 반가웠고 다음에는 절대 너 이름이랑 얼굴 안 잊어버리겠다고 말한 뒤 바이바이했다.
이렇게 팀이 아니라 크루가 매번 바뀌게 되면, 이런 에피소드는 다들 겪게 된다. 그리고 참 재밌다. 가끔 회사 사무실에 각자 다른 비행을 가기 위해서 도착했다가 만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는 이름은 서로 기억이 안나고 얼굴은 기억이 나니까 굉장히 해맑게 헤이 디어, 혹은 헤이 라고 하면서 말 건네면서 어디가냐고 물어보고 safe flight 하라고 인사건넨다. 그러고는 브리핑룸으로 얼른 들어간다. 그러고는 내가 쟤를 어디서 봤더라.. 하면서 속으로 곰곰히 생각하게된다. 이런게 바로 매번 크루가 바뀌는 회사 비행의 재밌는 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아, 물론 전제는 좋은 크루들을 만나면
그렇기에 내가 어디서 언제고 다시 만날 지 모르는 것이 인연이고 이 일의 특성이기에 나는 언제나 조심하게 행동하고 모든 크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한다. 내가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면, 그들도 내게는 좋은 사람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만날 수많은 인연들에게 있어서도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내가 되도록 해야지 :)